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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실전 風水|일본인 사야가(沙也可) 장군과 대구 우록리

조선에 충성하고 명당에 묻히다

  •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조선에 충성하고 명당에 묻히다

조선에 충성하고 명당에 묻히다

김충선(사야가)이 안장된 삼정산.

남풍 때때로 불 제 고향 생각하네/ 조상 무덤은 평안한지 일곱 형제는 무사한지/ 구름을 보며 고향 생각하고/ 봄풀을 봐도 고향 생각하는 마음 어느 땐들 없겠는가/ 일가친척은 살아 있을까 아니면 세상을 하직했을까/(…).’

이 시를 쓴 시인의 원래 고향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이 고향이라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일본의 지명과 형제의 이름이 무엇인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인의 일본 이름이 사야가(沙也可)이지만 그것 역시 본명인지 확실하지 않다.

시인의 우리말 이름은 김충선(金忠善·1571~1642)이다. 시인 스스로 지은 이름이 아니라 선조 임금이 김해 김씨라는 본관과 함께 하사한 것이다. 본래의 김해 김씨와 구별하기 위해 ‘우록(友鹿) 김씨’라고도 한다.

우록은 대구 근교에 있는 마을인데 일본인 사야가 장군이 김충선으로 이름을 바꾼 뒤 정착한 곳이다. 대구 시내에서 204(혹은 439)번 시내버스를 타면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종점에 도달한다. 우록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5년 11월 ‘김충선(사야가) 바로 알기 한·일 심포지엄’이 열린 뒤부터였다. 그러나 일본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해마다 이곳 우록리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가 늘어나 지금은 일본어를 구사하는 안내인을 상주시킬 정도다.

임진왜란 때 참전했다 귀화 … 후손 5000여명 전국에 분포



조선에 충성하고 명당에 묻히다

삼정산 세 봉우리의 중심점에 그의 묘가 있다.

사야가는 원래 시인이 아니라 장군이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로 일본군 선봉장으로 조선에 왔다가 침략전쟁을 반대해 조선에 귀화한다. 그 후 조총과 화약 제조기술을 조선에 전수했을 뿐만 아니라 정유재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에서 큰 공을 세워 정이품 벼슬을 받는다. 김충선은 이곳에서 다섯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두고 72세로 죽은 뒤 마을 뒷산에 안장된다. 현재 그의 후손 5000여명이 전국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록리에는 지금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400여년을 지켜온 마을인 셈이다.

우록리와 김충선 묘의 입지를 풍수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나는 김충선의 택지관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혹시나 이를 통해 그가 떠나온 일본의 고향이 어디였는지를 추측해보기 위함이다. 김충선은 죽을 때까지 일본의 고향 이름과 일곱 형님, 그리고 두고 온 2명의 아내에 대해서 함구했다.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김충선의 고향과 후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조총과 화약 제조에 능했다는 점에서 혹시 이 기술이 발달한 ‘와카야마현(和歌山縣)’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추측일 뿐이다(우록리에 거주하는 후손 김재덕 전 교장 선생님 증언). 대개 타국에서 터를 잡을 때 떠나온 고향과 분위기가 유사한 곳에 잡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그 당시 김충선은 조선 조정으로부터 경상도 이곳저곳의 땅을 하사받아 터 잡는 데 여유가 있었다.

우록마을을 지도에서 보면 왼쪽으로 우미산→통점령→주암산→가창면 소재지, 오른쪽으로 우미산→삼성산→병풍산→용지봉→가창면 소재지로 이어지는데 500~800m의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우록마을에서 발원하는 물은 가창면 소재지를 지나 대구시를 관통하는 ‘신천’으로 이어진다. 첩첩 산들은 웅장하면서도 후덕하다. 난리를 피해 보신하기에 좋은 승지(勝地)다. 그런 까닭에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이 마을은 한 번도 전란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무덤 자리는 우록리의 압권(壓卷)이다. 삼정산(三頂山)에 있는데, 삼정산이란 문자 그대로 3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을 말한다. 무덤 자리에서 보면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으나 맞은편에서 보면 3개 봉우리로 연결되는 삼각형의 중심점에 무덤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에 ‘근삼원칠(近三遠七)’이란 말이 있다. ‘터를 볼 때 가까이서 세 번, 멀리서 일곱 번을 보라’는 뜻이다. 멀리서 볼수록 그 아름다움에 찬탄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자리다.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았던 김충선의 이와 같은 택지관을 참고한다면 앞으로 김충선에 대한 한일 간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우록마을을 찾는 한국과 일본인 관광객에게 이런 ‘땅의 이치(地理)’를 알게 한다면, 현재 우록마을 진입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을 막는 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6.02.14 522호 (p94~94)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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