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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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디지털 새 옷을 입다

한강의 기적 일군 제조업 쇠락 … 첨단 업종 73.3% 차지 ‘수출기지로 부활 예고’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1-29 1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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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공단, 디지털 새 옷을 입다

    구로공단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1974년 세워진 공단 여인상 너머로 보이는 첨단 벤처타워가 구로공단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회사 이름보다도 ‘최씨 고집’으로 더 유명한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최회장의 고집도 구로공단의 디지털화 바람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1975년 구로공단에 1700평의 대지를 사들여 공장을 지은 후 25년 넘게 한자리에서 우황청심원만 만들어온 광동제약 자리에는 지금 ‘벽산디지털밸리’라는 지하 3층 지상 12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8월 광동제약은 이 첨단화 공사에 잠시 자리를 내주고 본사를 삼성동으로 옮겼다. “공단의 전체 분위기가 ‘디지털’로 가는데 이런 흐름을 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는 광동제약 민직현 과장의 말은 구로공단에 뿌리를 내렸던 전통 제조업체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수출입국’과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산실로 알려진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 지 2년. 구로공단은 여전히 ‘공사중’이다. 지하철 2호선 대림역과 구로공단역을 연결하는 고가전철과 남부순환로 사이 디지털 1단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입주해 있는 키콕스(KICOX) 벤처타워 앞에 서면 대형 타워크레인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는 초대형 벤처타워 공사현장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림잡아도 10개는 족히 돼 보인다. 산업단지공단 바로 앞쪽 노른자위 땅 코오롱상사 봉제공장이 있던 자리에도 역시 코오롱 디지털타워가 들어서고 있다.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코오롱타워의 경우 노른자위 땅답게 분양공고가 나가자마자 100% 분양됐다”고 전했다.

    70년대 7만명에 달하던 근로자 수는 절반으로

    그러나 단순히 공단 이름을 디지털산업단지로 바꿨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구로공단’이라는 이미지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 이미지를 지우는 데는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지하철역 이름부터가 여전히 구로공단이고, 명절 즈음이면 여공들을 싣고 ‘고향 앞으로’ 귀향버스가 출발하던 가리봉 오거리 역시 그대로다. 가리봉역과 독산역을 연결하는 국철 위를 가로지르는 ‘수출의 다리’ 또한 40년 가까이 매연을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구로공단의 얼개를 구성하는 하드웨어가 대부분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속살’에 해당하는 구로공단 소프트웨어의 변모는 한마디로 눈부시다. 입주 업체 수는 1997년 442개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1279개로 3배 가까이 늘어났고 첨단 업종의 비율도 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뀔 당시인 2000년 말의 52.6%에서 지난해 11월 말 현재 73.3%까지 높아졌다. IT벤처를 중심으로 첨단 업종이 이렇게 늘어났다면 반대로 줄어든 건 사람들이었다. 70년대 섬유 전자 금속가공 등 노동집약적 산업군이 구로공단의 주류를 이룰 당시만 해도 상주 근로자 수는 7만명이나 됐다. 그러나 현재 구로공단 근로자 수는 약 3만7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림동에서 광명시 방향으로 공단을 관통하는 도로가 30여년 전 구로공단 조성 당시나 지금이나 폭 20m의 왕복 4차선도로로 변함이 없는데도 공단이 별 탈 없이 굴러가는 건 그만큼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구로공단의 주도권을 잡은 업체들은 중소 제조형 벤처기업들이다. 스타킹 공장, 내의 공장, 전자부품 공장 등은 지방으로 떠나거나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향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벤처기업들 중에는 디지털로 무장한 구로공단의 미래를 밝혀주는 보증수표들도 있다.

    지방 출신 근로자 줄면서 설날 귀향버스도 사라져

    구로공단, 디지털 새 옷을 입다

    구로공단은 전자·통신 등 벤처 관련 인프라를 갖춘 국가산업단지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휴대폰 충전기와 PDP 조립업체인 이레전자는 97년 구로공단에 입주한 뒤로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중소 전선 가공업체에 불과하던 이레전자의 96년 매출은 20억원 수준. 그러나 97년 구로공단 3단지에 입주하고 난 뒤 사업다각화를 통해 매출은 80억원으로 뛰었고 98년에는 공단 내 모든 입주업체들이 IMF의 여파로 연쇄부도를 당하는 와중에도 유독 이레전자만은 매출이 245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레전자 김상영 경영기획부장은 “취득세나 등록세 감면 혜택 등 다른 공단에 비해 유리한 조건 덕분에 최근 IT 제조업체들의 입주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제 구로공단에서 소음이나 매연을 내는 전통 제조업체들을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레전자가 입주해 있는 한국전자협동조합 맞은편. 한일합섬이 부도로 떠나가버린 자리에는 대륭테크노타운이라는 벤처타워가 들어섰다. 대륭테크노타운은 이미 1차부터 시작해 7차까지 건물 동수를 늘려가고 있다. 이레전자가 위치한 구로공단 3단지에 남아 있는 대형 제조업체는 LG전자 정도다. 이제 구로공단에서 2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전통 제조업체를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산업단지공단 서울지사 이정환 기업지원부장은 “67년 구로공단에 처음 입주한 31개 업체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한두 군데뿐”이라고 말했다.

    태림모피는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모피업계에서 알아주는 업계 선두주자였다. 81년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구로공단의 대표적 업체로 태림모피를 방문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이러한 인지도 덕분에 태림모피는 80년대 중반만 해도 월 100만 달러의 수출고를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통해 올라간 건물 2층 이 회사 사장실 벽에는 ‘보사부 장관 김정례’나 ‘재무부 장관 강경식’ 명의의 빛바랜 표창장들이 걸려 있다. 한때 300명의 근로자들이 일했던 이 회사의 현재 종업원 수는 고작 40명. 모피업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사양길에 접어든 데다 일본 수출길이 끊기면서 매출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로공단, 디지털 새 옷을 입다

    구로공단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귀향버스에 오르는 풍경은 이제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이 길밖에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근 구로공단의 변화가 딴 나라 일처럼 느껴진다”는 태림모피 이재영 실장의 말에서는 디지털단지로 변모하는 구로공단에서 소외된 제조업의 현실이 물씬 배어난다. 취재에 응한 이실장은 오히려 회사가 구로공단 내 제조업의 쇠락을 상징하는 사례로 비칠까봐 걱정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모피업을 창업한 선친의 뒤를 이어 30년 된 공장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그는 “수출입 대행업에도 진출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어 제2의 도약을 이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태림모피가 구로공단에 입주한 것은 75년. 3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인 셈이다. 이 회사 여성 근로자들 중에는 70년대부터 구로공단을 지켜온 50, 60대들도 적지 않다. 지금 같으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70년대 초 구로공단에는 여성 근로자들을 상대로 명예여자예비군이 창설되기도 했다. 근로자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한다는 명분에서였다.

    78년부터 구로공단에서 근무해온 태림모피 이규활 이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구로공단에서 설날 귀향버스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 제조업체들이 사라진 데다 지방 출신 근로자들보다 서울이나 수도권 거주 근로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주들이 귀향버스를 운영하지 않게 된 것. 대신 최근 들어서는 산업단지공단측에서 철도청의 협조를 얻어 귀성 열차표를 일괄 확보한 뒤 근로자들에게 열차표를 판매하는 정도로 편의를 봐주고 있다.

    대형 제조업 떠난 자리엔 벤처타운·아파트형 공장 입주

    구로공단, 디지털 새 옷을 입다

    97년 구로공단에 입주한 뒤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이레전자는 공단 내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벤처기업에 속한다(위쪽). 75년부터 30년 가까이 구로공단을 지켜온 태림모피는 이 지역에 몇 안 남은 제조업체다.

    태림모피 옆에는 다이어리나 수첩 제작업체로 널리 알려진 ㈜양지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터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사복을 만들던 삼성물산 공장이 있던 자리다. 이런 식으로 구로공단에는 대형 제조업체가 떠난 자리를 대형 벤처타운이나 아파트형 공장들이 메워가고 있다.

    특히 아파트형 공장이 구로공단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공단 내 분위기도 크게 바뀌고 있다. 개별 공장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있을 때에는 인근업체들의 사정을 서로간에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한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입주업체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무관심의 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독주택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주거형태의 주류가 되면서 나타나는 이웃간의 단절 현상과 정확히 닮은꼴이다.

    지금까지도 구로공단에는 경영자협의회라는 단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경영자협의회를 구성하던 멤버들이 주로 일선 현장에서 물러나면서 모임은 유명무실해져가고 있다. 구로공단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벤처기업의 젊은 CEO들은 경영자협의회 같은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공들이 사라지면서 공단 내에서 기숙사가 사라진 것도 구로공단의 변화상 가운데 하나다. 미혼여성들은커녕 30대 여성 근로자들조차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 구로공단의 현실이다. 신영스타킹 신연호 사장은 “제조업의 경우에도 생산라인에 있는 근로자들은 모두 40대 중반 이후의 아줌마들뿐”이라며 “이대로 나가다가는 3D업종이 아닌 일반 제조업도 주저앉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로공단이 2년여 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을 바꾸면서 첨단 지식정보 중심의 도시형 산업단지로 방향을 잡기는 했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아파트형 공장들이 이미 13동이나 준공됐고 지금도 11동이 건설중일 정도로 난립하다 보니 최근 들어 교통혼잡과 인프라 부족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또 2단지 주변으로는 아파트형 공장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대형 의류 할인매장들이 들어서 교통혼잡을 부채질하면서 공단 입주업체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구로공단을 관통하는 도로 확장 문제를 놓고 산업단지공단과 지방자치단체측이 티격태격하면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입주업체들에게는 불만이다. 이 관통도로는 아파트형 공장 난립으로 인해 상습 정체구간이 되면서 입주업체들의 민원이 집중 제기되기도 했던 곳. 구로공단 조성 당시와 똑같은 폭의 이 관통도로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서울시의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공단측의 입장과 구로공단은 국가공단이니만큼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서울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디지털산업단지의 과밀화를 부채질하고 있는 현실이다.

    30년 넘게 계속돼온 수출 전초기지의 역할을 내주고 ‘디지털’을 새로운 화두로 대변화의 장정을 시작한 구로공단은 전국적으로 25개나 되는 국가산업단지의 장래와 관련해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로공단이 ‘촌티’를 벗고 디지털화에 성공한다면 이는 국내 최초로 공단 리모델링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 명절을 맞는 ‘디지털 구로공단’은 그래서 여전히 ‘공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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