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치고 난 후 나는 운동도 할 겸 처소를 돌면서 지붕을 살폈다. 지붕에 쌓인 눈이 녹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햇볕을 받는 양에 따라서 눈 녹는 순서가 다른데, 방향으로 얘기하자면 남쪽 지붕이 가장 먼저 녹고, 그 다음 서쪽, 동쪽, 북쪽 순이다. 아침에 뜨는 햇볕을 가장 먼저 쬐는 동쪽이 남쪽 다음으로 빨리 녹을 듯싶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남향집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조건 남향집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집이 들어앉을 곳을 정할 때는 주변의 유무정물(有無情物)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산중 처소는 북향집이다. 집터가 산자락과 개울 사이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앉혀지게 됐다. 물론 아래 절을 내려다볼 수 있게 자리잡았다면 서향집이 되었을 터다. 그러나 나는 천년고찰인 아래 절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것을 삼갔다. 집도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찰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산자락 끝에 북향으로 앉혔다. 물론 일조량만 고려하면 남향으로 잡을 수도 있었지만 산자락과 감히 마주한다는 것도 거북한 일이었다. 집의 앉음새가 자연스럽지 못하면 마음도 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과의 어울림이 중요 … 자연 병들게 해선 안 돼
손님들은 북향인 내 처소를 보고 의아해하지만 나는 주변을 존중해서 그리 지었다고 말한다. 조화란 서로 어울린다는 것이고 더불어 사는 상생(相生)의 인수가 아닌가. 안목이 깊은 법정스님이 불일암 가는 길에 들러 유권해석을 내려주셨다. 아래 절을 내려다보게 앉혔다면 경비초소가 되었을 거라고 농담을 섞어 격려해주신 것이다. 또 풍수를 하는 어떤 사람이 나름대로 진지하게 설명해주고 갔다. 뒷산 자락이 목을 내민 거북이 형상인지라 내 처소는 물을 마시려는 거북이 앞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 처소는 목마른 거북이를 개울물로 안내하는 공덕을 쌓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손님들이 놓고 간 신문을 보면 고층빌딩의 건축허가를 놓고 건설업체와 주민들이 갈등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몇 십 층짜리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섬으로 해서 일조권을 침해받게 될 주민들의 분노와 원성이 큰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고 이권의 논리만 최우선하는 것 같다. 허가를 내준 행정당국의 담당자는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며 변명만 늘어놓는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서류만 보고 도장 찍는 공무원의 말은 놀랍게도 어제나 오늘이나 늘 매한가지다.
며칠 전에는 급한 볼일이 생겨 서울에 다녀왔다. 한나절의 여유가 생겨 예전에 자주 찾아가 위안받곤 했던 관악산을 찾았다. 서울대 정문 쪽에서 올랐는데 관악산 자락은 불과 몇 년 만에 여기저기 망가진 채 숲이 사라지고 있었다. 산자락에 서울대의 신축건물들이 자연을 무시하듯 들어서고 있었다. 이른바 학문의 전당이 만인의 자연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니 학문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둘레를 배려하지 않는 염치없는 세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병들게 된다.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서로 얽혀 있지 않은 것은 없다. 산중에 산다고는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더불어 답답해진 모양이다. 옳으니 그르니 시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 산중 처소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내 처소의 이름은 ‘이불재(耳佛齋)’다.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담은 이름이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 경지를 공자는 이순(耳順)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이상이기도 한 이불은 이순과 동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추녀 끝에서는 낙숫물이 떨어지고 있다. 쌓인 눈이 가장 늦게 녹는 북쪽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다. 낙숫물 소리도 산중에 사는 외로운 사람에게는 멀리서 찾아온 벗처럼 반갑다. 눈이 그친 지 사흘이 지났건만 낙숫물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낙숫물은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나는 눈이 늦게 녹는 북향집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남향집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조건 남향집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집이 들어앉을 곳을 정할 때는 주변의 유무정물(有無情物)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산중 처소는 북향집이다. 집터가 산자락과 개울 사이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앉혀지게 됐다. 물론 아래 절을 내려다볼 수 있게 자리잡았다면 서향집이 되었을 터다. 그러나 나는 천년고찰인 아래 절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것을 삼갔다. 집도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찰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산자락 끝에 북향으로 앉혔다. 물론 일조량만 고려하면 남향으로 잡을 수도 있었지만 산자락과 감히 마주한다는 것도 거북한 일이었다. 집의 앉음새가 자연스럽지 못하면 마음도 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과의 어울림이 중요 … 자연 병들게 해선 안 돼
손님들은 북향인 내 처소를 보고 의아해하지만 나는 주변을 존중해서 그리 지었다고 말한다. 조화란 서로 어울린다는 것이고 더불어 사는 상생(相生)의 인수가 아닌가. 안목이 깊은 법정스님이 불일암 가는 길에 들러 유권해석을 내려주셨다. 아래 절을 내려다보게 앉혔다면 경비초소가 되었을 거라고 농담을 섞어 격려해주신 것이다. 또 풍수를 하는 어떤 사람이 나름대로 진지하게 설명해주고 갔다. 뒷산 자락이 목을 내민 거북이 형상인지라 내 처소는 물을 마시려는 거북이 앞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 처소는 목마른 거북이를 개울물로 안내하는 공덕을 쌓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손님들이 놓고 간 신문을 보면 고층빌딩의 건축허가를 놓고 건설업체와 주민들이 갈등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몇 십 층짜리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섬으로 해서 일조권을 침해받게 될 주민들의 분노와 원성이 큰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고 이권의 논리만 최우선하는 것 같다. 허가를 내준 행정당국의 담당자는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며 변명만 늘어놓는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서류만 보고 도장 찍는 공무원의 말은 놀랍게도 어제나 오늘이나 늘 매한가지다.
며칠 전에는 급한 볼일이 생겨 서울에 다녀왔다. 한나절의 여유가 생겨 예전에 자주 찾아가 위안받곤 했던 관악산을 찾았다. 서울대 정문 쪽에서 올랐는데 관악산 자락은 불과 몇 년 만에 여기저기 망가진 채 숲이 사라지고 있었다. 산자락에 서울대의 신축건물들이 자연을 무시하듯 들어서고 있었다. 이른바 학문의 전당이 만인의 자연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니 학문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둘레를 배려하지 않는 염치없는 세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병들게 된다.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서로 얽혀 있지 않은 것은 없다. 산중에 산다고는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더불어 답답해진 모양이다. 옳으니 그르니 시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 산중 처소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내 처소의 이름은 ‘이불재(耳佛齋)’다.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담은 이름이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 경지를 공자는 이순(耳順)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이상이기도 한 이불은 이순과 동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추녀 끝에서는 낙숫물이 떨어지고 있다. 쌓인 눈이 가장 늦게 녹는 북쪽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다. 낙숫물 소리도 산중에 사는 외로운 사람에게는 멀리서 찾아온 벗처럼 반갑다. 눈이 그친 지 사흘이 지났건만 낙숫물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낙숫물은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나는 눈이 늦게 녹는 북향집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