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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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꼭 해야 할까

  • 김현정 커리어디시젼 대표 hjkim@careerdecision.co.kr

    입력2006-06-14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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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공부 꼭 해야 할까
    한국인의 집단 콤플렉스 중 하나가 ‘영어’다. 영어를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취급을 하고, TV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며 영어 못하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게다가 거대 자본은 당신을 당장 영어 도사로 만들어줄 것처럼 부채질을 해댄다. 하지만 정말 영어를 해야 하는 걸까.

    사실 영어든 다른 무엇이든 잘해서 나쁠 것은 없다. 특히 영어를 잘하면 유리한 점이 많다. 일단 취업 기회가 늘어난다. 외국인을 만난 자리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진땀 흘리지 않아도 된다. 또한 해외여행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다. 많은 회사에서는 승진 시험에 영어를 포함시켜 응시자로 하여금 영어에 대한 압박감을 갖게 한다.

    중견 기업에서 20여 년간 인사 파트 일을 해온 김 부장은 퇴직을 앞두고 헤드헌팅사에 원서를 냈다. 미국계 회사가 한국지사를 세우면서 인사담당 임원을 뽑는 자리였다. 한국 지사장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한 임원을 뽑고자 했다. 쟁쟁한 경력과 학력을 갖춘 사람들 속에서 김 부장은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회사는 김 부장을 선택했다. 이유는 한 가지. 실력이 좋고 경력이 화려한 경쟁자들은 영어로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김 부장은 잦은 해외여행 덕으로 생활영어에 능숙했던 것. 그는 실력보다는 영어 때문에 억대 연봉의 외국인 회사 인사담당 임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영어 공부를 해야 할까? 사실 언어는 다른 직무기술과 달리 잘하는 수준에까지 오르기가 굉장히 어렵다.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도 조기 유학파나 교포들과는 비교하기가 어렵고, 스무 살 넘어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과도 경쟁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 영어 잘하는 20, 30대도 이제는 굉장히 많다. 일상 대화가 가능한 정도만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데, 이는 직장인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어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다. 사실 영어가 크게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영어를 포기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정쩡한 상태로 스트레스만 받으며 돈과 정력을 낭비한다.

    외국계 은행의 소비자 금융 분야에서 잘나가는 장 차장은 영어를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이 은행은 직원 채용 때 영어 인터뷰를 할 뿐만 아니라, 직속 상사가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이었다. 그렇다면 장 차장은 어떻게 채용됐을까? 그녀는 전 사원 중 유일하게 영어 인터뷰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상사와 대화를 할 때면 다른 직원이 나선다. 그녀의 엄청난 실적 앞에 채용 규정에도 예외를 둔 것이다. 그녀는 영어 공부하는 대신 일을 열심히 해서 실적을 쌓았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일에 어정쩡하게 매달리지 않고 대신 잘하는 것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앞으로도 영어 공부할 계획은 없단다.



    영어가 업무에 필요하거나 그런 업무를 하고 싶다면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초라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투자에도 최상급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영어를 포기해도 좋다.

    직장인은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잘해야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영어보다 더 필요하고, 자신이 노력했을 때 더 유용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거기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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