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5

2006.05.16

정겨운 손맛, 왁자지껄 사는 맛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5-10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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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겨운 손맛, 왁자지껄 사는 맛

    기름떡볶이

    지난해 가을부터 종로구 누하동에 사무실을 마련해 일하고 있다. 경복궁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인데, 서울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예스럽다.

    직장인에게 일터의 위치는 집 위치만큼 중요하다. 하루 중 최소 8시간은 지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동네에 사무실을 내기로 한 데에는 지척에 있는 조그만 재래시장이 한몫했다. 평소 재래시장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너무 좋은 사무실 입지 조건이었던 것이다.

    효자동 쪽 큰길에서 누하동 방향으로 길게 난 골목 시장인데, 이름은 통인시장이다. 가게는 100여 개 되는 것 같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장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낡고 허름한 가게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어 골목을 걷다 보면 지방 소도시의 오일장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정겹던 통인시장이 올봄에 확 바뀌었다. ‘아케이드’라는 천장을 달았고 간판도 싹 바꿨다. 종로구청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국비, 시비, 구비를 보태서 재래시장을 개선하는 사업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내 눈에는 이게 ‘개선’인가 싶다.

    기름떡볶이·소머리국밥 등 세월 건너 입맛에 착착



    지방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꼭 재래시장을 둘러본다. 그 지방의 음식이나 사람들의 기호를 가장 짧은 시간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재래시장들이 통인시장처럼 ‘개선’ 사업을 하는 통에 둘러보는 재미를 빼앗기고 있다. 개선 사업을 한 재래시장은 전국 어디를 가나 똑같이 생겼다. 똑같은 아케이드에 똑같은 크기와 색상의 간판들! 사진에서 ‘통인시장’이라는 간판만 가리면 전국의 ‘개선’ 재래시장은 겉모양이 다 같다. 이런 몰상식한 일을 누가 기획하고 진행하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상인과 소비자 모두 편리하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업인 줄은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마다의 개성은 살리면서 개선할 생각은 왜 안 하는지.

    정겨운 손맛, 왁자지껄 사는 맛

    통인시장 입구.

    통인시장 음식 이야기를 하려다 엉뚱한 세설만 늘어놓았다. 각설하고.

    통인시장에는 음식점이 예닐곱 있다. 백반에 국수, 순댓국, 소머리국밥, 감자탕, 김밥 등을 판다. 반년 동안 이 재래시장 골목을 왔다갔다하면서 이 음식 저 음식을 맛보았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통인시장 음식 중 추천할 만한 것을 꼽자면 가장 먼저 떡볶이다. 고춧가루 양념을 한 조그만 가래떡을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서 내놓는데, 이런 떡볶이는 통인시장에서 처음 봤다. 이사 온 지 며칠 안 돼 이 떡볶이를 사다 아이들에게 먹여봤더니 반응이 별로다. 대부분 “느끼하다”는 평가다. 내 입에도 안 맞는데 이상하게 떡볶이 가게는 늘 문전성시다. 주요 고객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가게 할머니는 50년 전부터 이 떡볶이를 팔았단다. 통인시장에서 가장 전통과 개성 있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는 ‘옛날 통인 감자탕’. 그런데 난 이 집에서 감자탕은 안 먹는다. 소머리국밥과 수육이 보통 솜씨를 넘어서 이 음식들에 푹 빠져 지낸다. 개운한 국물에 야들야들 잘 삶긴 머릿고기가 술술 넘어간다. 이를 냄비에 양껏 담아 술안주로도 내는데 소주 안주로는 이만한 게 없다. 수육도 한없이 부드럽다. 잡냄새 없는 깔끔한 고기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입 안에 가득 퍼지며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데, 손님은 거의가 동네 어른들이다.

    ‘옛날 통인 감자탕’은 이제 내 단골집이 돼간다. 점심이건 저녁이건, 편하게 대해도 되는 손님이 오면 꼭 이 집으로 모신다. 지금까지 이 집을 거쳐간 10여 명의 내 손님 중 맛없다고 불평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시장 골목 중간쯤에서 옆으로 난 골목 안에 있다.

    옛 멋은 잃었지만 서울 한복판에 있는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소머리국밥이나 수육에 약주 한잔 걸친 뒤 통인시장 명물 떡볶이 한 봉지 사들고 가는 ‘밤마실’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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