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에 사는 홍삼분 할머니(86)를 대신해 이해옥씨가 이메일로 할머니의 딸 현옥씨(46)을 찾아달라는 신청서를 보낸 것이 2월22일. 시카고 강효흔 탐정과 함께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를 시작한 지 두 달째가 되면서 신청서가 쌓여가는 상황이었다. 강탐정은 이미 착수한 일이 있었지만 86세 홍삼분 할머니의 기다림이 너무도 애절해 이 건부터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두 번의 당첨자가 미군과 결혼한 뒤 연락이 끊긴 가족을 찾는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입양’으로 인한 이별이었다.
입양 보낸 딸 외에 피붙이 한 명 없는 홍할머니는 노량진 교회 교우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할머니의 딸 현옥씨와 비슷한 또래인 이해옥씨(44)가 줄곧 딸 역할을 대신했고, 이번에 ‘주간동아’에 신청서를 낸 것도 이씨였다.
홍할머니의 딸 현옥씨(미국명 조이)에 대해 확인되는 것은 12년 전 연락했던 우체국 사서함 주소뿐이었다. 강탐정은 사서함 주소에 나온 우체국 소재지 인근 동네의 현재 및 과거 거주자 중 현옥씨 양부모와 같은 윌슨(Wilson)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사람을 찾은 결과 30여명이 됐다. 그 중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골라내던 중 생년월일까지 같은 한 사람을 찾아냈고 그 사람이 바로 조이, 현옥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현옥씨는 결혼 후 조이 테이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현옥씨는 이혼했기 때문에 더 이상 조이 테이트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양부모 姓 단서로 수소문
이번에는 조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연도가 같은 사람을 추적했다. 그중 성이 벙커스(Bunkers)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현옥씨의 현재 남편 이름이 더글러스 벙커스라는 것도 확인했다. 부동산 소유자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벙커스씨의 주소를 확인하고 전화국의 협조를 얻어 주소지 전화번호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강탐정의 낭보를 접하고 한국의 홍삼분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하니 할머니의 낡은 전화가 말썽이었다. 소리를 질러도 도무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겨우 “따님을 찾았다”는 말만 전하고 다시 이해옥씨와 접촉,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감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이해옥씨에게 이튿날(3월16일) 오후 2시, 현옥씨가 거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시각으로 오후 9시에 첫 통화를 하기로 했다. 통화 장소는 노량진 교회.
문제는 현옥씨가 30년 가까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인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어 우리말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몇 가지 단어만 기억할 뿐 한국어로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어머니와 딸이 전화연결이 돼도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3월16일 노량진 교회. 일가 친척이 없는 할머니와의 쓸쓸한 만남을 예상했던 기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리신청자 이해옥씨를 비롯해 지복흥-차갑술 목사와 교우들이 첫 통화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할머니를 빙 둘러앉아 있어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 또 통역을 위해 이수원-이호숙 선교사 부부까지 배석했다. 훈훈한 이웃의 정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홍할머니와 딸 현옥씨의 첫 통화.
“보고 싶다. 엄마 이제 많이 늙었다. 네가 한국에 올 수 있니?”
의외로 차분한 할머니는 곧 통역을 맡은 이수원 선교사를 통해 딸이 직장을 갖고 있는지, 3명의 손주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기 시작했다. 현재 호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현옥씨는 “어머니의 주소가 바뀌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졌다”면서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고 오는 일을 지금 남편과 의논 중”이라고 했다. 또 어머니가 먼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지 궁금해하면서 큰손녀 에이미가 한국에 있는 할머니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웃의 축복 속에 이루어진 첫 통화 이후 요즘 홍할머니는 빨리 미국으로 가서 딸과 가족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미국에는 딸과 사위, 3명의 손주가 있다. 홀홀단신이던 할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가족을 되찾은 셈이다.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캠페인은 앞으로도 갈 길이 바쁘다. 혈육보다 소중한 친구를 찾아달라는 사연, 유학한 뒤 소식 없는 형제자매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 자식을 해외로 입양시키고 죄책감에 살다 죽기 전에 보고 싶다는 노부모들, 사연이 쌓여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지만 많은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캠페인을 계속한다.
입양 보낸 딸 외에 피붙이 한 명 없는 홍할머니는 노량진 교회 교우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할머니의 딸 현옥씨와 비슷한 또래인 이해옥씨(44)가 줄곧 딸 역할을 대신했고, 이번에 ‘주간동아’에 신청서를 낸 것도 이씨였다.
홍할머니의 딸 현옥씨(미국명 조이)에 대해 확인되는 것은 12년 전 연락했던 우체국 사서함 주소뿐이었다. 강탐정은 사서함 주소에 나온 우체국 소재지 인근 동네의 현재 및 과거 거주자 중 현옥씨 양부모와 같은 윌슨(Wilson)이라는 성을 사용하는 사람을 찾은 결과 30여명이 됐다. 그 중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골라내던 중 생년월일까지 같은 한 사람을 찾아냈고 그 사람이 바로 조이, 현옥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현옥씨는 결혼 후 조이 테이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현옥씨는 이혼했기 때문에 더 이상 조이 테이트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양부모 姓 단서로 수소문
이번에는 조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연도가 같은 사람을 추적했다. 그중 성이 벙커스(Bunkers)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현옥씨의 현재 남편 이름이 더글러스 벙커스라는 것도 확인했다. 부동산 소유자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벙커스씨의 주소를 확인하고 전화국의 협조를 얻어 주소지 전화번호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강탐정의 낭보를 접하고 한국의 홍삼분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하니 할머니의 낡은 전화가 말썽이었다. 소리를 질러도 도무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겨우 “따님을 찾았다”는 말만 전하고 다시 이해옥씨와 접촉,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감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이해옥씨에게 이튿날(3월16일) 오후 2시, 현옥씨가 거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시각으로 오후 9시에 첫 통화를 하기로 했다. 통화 장소는 노량진 교회.
문제는 현옥씨가 30년 가까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인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어 우리말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몇 가지 단어만 기억할 뿐 한국어로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어머니와 딸이 전화연결이 돼도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3월16일 노량진 교회. 일가 친척이 없는 할머니와의 쓸쓸한 만남을 예상했던 기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리신청자 이해옥씨를 비롯해 지복흥-차갑술 목사와 교우들이 첫 통화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할머니를 빙 둘러앉아 있어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 또 통역을 위해 이수원-이호숙 선교사 부부까지 배석했다. 훈훈한 이웃의 정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홍할머니와 딸 현옥씨의 첫 통화.
“보고 싶다. 엄마 이제 많이 늙었다. 네가 한국에 올 수 있니?”
의외로 차분한 할머니는 곧 통역을 맡은 이수원 선교사를 통해 딸이 직장을 갖고 있는지, 3명의 손주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묻기 시작했다. 현재 호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현옥씨는 “어머니의 주소가 바뀌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졌다”면서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고 오는 일을 지금 남편과 의논 중”이라고 했다. 또 어머니가 먼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지 궁금해하면서 큰손녀 에이미가 한국에 있는 할머니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웃의 축복 속에 이루어진 첫 통화 이후 요즘 홍할머니는 빨리 미국으로 가서 딸과 가족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미국에는 딸과 사위, 3명의 손주가 있다. 홀홀단신이던 할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가족을 되찾은 셈이다.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캠페인은 앞으로도 갈 길이 바쁘다. 혈육보다 소중한 친구를 찾아달라는 사연, 유학한 뒤 소식 없는 형제자매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 자식을 해외로 입양시키고 죄책감에 살다 죽기 전에 보고 싶다는 노부모들, 사연이 쌓여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지만 많은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캠페인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