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위원’이라는 직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일반인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문화재위원. 하지만 문화재위원들은 국가지정문화재의 보호구역지정과 해제, 매장문화재의 발굴 등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린다. 아직 그 중요도에 걸맞은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문화재 분야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4월25일이면 문화재위원들의 임기(2년)가 끝난다. 재위촉을 받지 못하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이번에 위촉되는 문화재위원들은 장관 위촉에서 벗어나 최초로 문화재청장의 위촉을 받는 사람들이다. 문화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문화재위원 위촉과 관련한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지난 99년 4월27일 문화관광부(당시 장관 신낙균)는 문화재위원 59명과 전문위원 117명을 위촉했다. 이 가운데 신임 위원은 29명이고 신임 전문위원은 61명이었다. 문화재위원의 50%가 바뀐 전례 없는 대규모 ‘물갈이’였다. “30년 만에 처음 바뀐 위원도 있었다”(한 전문위원) “60년대부터 문화재 전문위원과 위원으로 일해왔지만 이처럼 많이 바뀐 적은 없었다”(한 문화재위원)는 등의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된 데는 우선 정권 교체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정권교체 흐름과 함께 이른바 ‘개혁’ 차원에서 문화재위원 위촉이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문화계 인사는 여권 요로에 “개혁을 위해서는 대폭 교체가 불가피하다”며 적극적으로 보고서를 올리는 등 ‘물갈이’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련 위원회에 이른바 ‘30% 여성할당제’가 도입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 문화재위원 9명 가운데 8명이 99년에 새로 위촉됐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 문화재위원(57명)의 14% 수준이다. 아직 30%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과거 3, 4명에 지나지 않을 때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약진한 것이 분명하다.
십여 년간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교수는 “문화재 분야는 여성 인력이 양성되지 않은 분야 가운데 하나인데 도식적으로 ‘30% 규정’을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한 실무자도 “정부 방침이기는 하지만 무작정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연세대 명예교수인 윤복자 문화재위원(여)은 “여성 가운데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성별에 관계없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위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문화재위원 위촉에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낙하산 위원’이다. 전 문화재위원 A씨는 “현 문화재위원 가운데도 장관을 등에 업고 비전문가가 낙하산으로 문화재위원이 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는 A씨는 “문화재위원 위촉이 끝나면 ‘누구누구는 어디를 통해 로비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고 실태를 전했다. 한 문화재전문가는 “모 인사의 경우 여권실세 P씨와 남다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문화재위원에 위촉됐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고 말했다. 고위인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 인사는 실무 부서에서 올린 최종 후보에는 들어 있었으나 결국 위촉받지 못했다고 한다.
혜택이라야 한 달에 한 번씩 회의에 참석해 10만원의 ‘거마비’를 받는 게 전부인 문화재위원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이처럼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부대효과’가 크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소장품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게 돼 위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한 고미술 전문가는 “문화재위원이 어떤 작품에 대해 ‘가치 있다’고 한마디 하면 당연히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문화재전문위원은 “지방에서 열린 한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주최측이 책을 나눠주기에 뜯어보니 돈봉투가 들어 있었다”고 로비받은 경험을 털어놨다.
문화재위원 위촉과 관련해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는 원칙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령인 ‘문화재위원회 규정’ 2조는 문화재위원의 위촉과 관련해 ‘위원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계(斯界·그 분야)의 권위자 중에서 문화재청장이 위촉한다’고 돼 있다. 언뜻 봐도 너무 추상적이다. ‘해촉’(解囑)과 관련해서는 아예 규정이 없다. 이런 실정을 빗대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위촉과 해촉은 당국의 마음에 달렸다”고 비꼬았다. “문화재위원에 대한 칼자루를 관료들이 쥐고 있다”(한 문화재 전문위원) “사정이 이렇기에 누가 위원이 되든 말이 많은 것”(인사동 한 관계자)이라는 말 등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는 문화재위원들의 ‘전문성’ 문제는 권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는 것 같다. 20여년간 문화재위원으로 있는 한 위원은 “말이 문화재위원이지, 뭘 알아야지”라고 이런 분위기를 표현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전에는 ‘그 사람 정도면…’ 하는 식으로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문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가를 우대하지 않는 풍토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잘 아는 사람, 정통한 전문가를 위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만의 하나라도 유물을 잘못 지정한다든지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파장을 생각해야 한다. 자칫하면 나라 망신까지 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호관 전 문화재관리국장은 “분과가 7개로 늘어나고 위원들이 많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문화재위원들의 권위가 떨어진 측면이 있다. 일본은 전문위원들이 상당히 많고 위원들은 많지 않다. 문화재 담당 공무원도 대개가 학예직으로 상당히 전문화돼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행정직 공무원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사동에서 수십년째 고문서를 연구해 온 한 인사는 “문화재위원을 교수 위주로 지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교수들 가운데 유물의 실물 감정에 능통한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는 게 이 인사의 문제 제기. 현재 문화재 위원 가운데 41명(72%)이 현직교수들이다. “전문성 위주로 학맥과 인맥을 떠나 해당 분야의 최고 인사들을 위촉해야 할 것”이라고 이 인사는 당부했다. ‘문화유산법제 개선방안연구’라는 자료집을 낸 전재경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원 선임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 심사 및 인사청문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불교계에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22일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는 회의를 열고 “복원된 보물 제 387호 회암사지선각왕사비를 경기도 박물관으로 이전하라”고 최종 결정했다. “회암사는 유물을 위한 보관장소가 마련되지 않아 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해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은 ‘선각왕사비 편법 이전’이라는 기사를 통해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보관 장소를 변경하려면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보관 장소 변경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선각왕사비 이전과 관련, 소유자인 회암사(주지 인묵)측은 “변경신청서를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선각왕사비 이전 결정과 관련한 신청서는 경기도지사가 문화재청에 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문화재위원회도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이전을 결정했던 것. 문화재위원회는 선각왕사비가 산불로 피해를 본 97년에 “원 위치에는 모조비를 세우고 복원한 뒤 선각왕사비는 경기도박물관으로 이전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불교계 한 소식통은 “이번 결정에 참가한 문화재위원들 가운데는 선각왕사비의 소유자가 ‘회암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며 “복원도 되기 전인 97년에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여러 이유 외에 문화재위원들이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화재를 경시하는 사회풍토 때문인 듯싶다. 한 문화재위원은 “예우는 그만두고 욕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비난 속에 풍납토성 보존, 경주 경마장 건설 취소 등의 결정을 내렸을 때 욕을 엄청 먹었다”는 것. 전재경 연구위원은 “문화재위원들이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4월25일이면 문화재위원들의 임기(2년)가 끝난다. 재위촉을 받지 못하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이번에 위촉되는 문화재위원들은 장관 위촉에서 벗어나 최초로 문화재청장의 위촉을 받는 사람들이다. 문화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문화재위원 위촉과 관련한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지난 99년 4월27일 문화관광부(당시 장관 신낙균)는 문화재위원 59명과 전문위원 117명을 위촉했다. 이 가운데 신임 위원은 29명이고 신임 전문위원은 61명이었다. 문화재위원의 50%가 바뀐 전례 없는 대규모 ‘물갈이’였다. “30년 만에 처음 바뀐 위원도 있었다”(한 전문위원) “60년대부터 문화재 전문위원과 위원으로 일해왔지만 이처럼 많이 바뀐 적은 없었다”(한 문화재위원)는 등의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된 데는 우선 정권 교체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정권교체 흐름과 함께 이른바 ‘개혁’ 차원에서 문화재위원 위촉이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문화계 인사는 여권 요로에 “개혁을 위해서는 대폭 교체가 불가피하다”며 적극적으로 보고서를 올리는 등 ‘물갈이’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련 위원회에 이른바 ‘30% 여성할당제’가 도입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 문화재위원 9명 가운데 8명이 99년에 새로 위촉됐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 문화재위원(57명)의 14% 수준이다. 아직 30%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과거 3, 4명에 지나지 않을 때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약진한 것이 분명하다.
십여 년간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교수는 “문화재 분야는 여성 인력이 양성되지 않은 분야 가운데 하나인데 도식적으로 ‘30% 규정’을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한 실무자도 “정부 방침이기는 하지만 무작정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연세대 명예교수인 윤복자 문화재위원(여)은 “여성 가운데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성별에 관계없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위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문화재위원 위촉에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낙하산 위원’이다. 전 문화재위원 A씨는 “현 문화재위원 가운데도 장관을 등에 업고 비전문가가 낙하산으로 문화재위원이 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는 A씨는 “문화재위원 위촉이 끝나면 ‘누구누구는 어디를 통해 로비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고 실태를 전했다. 한 문화재전문가는 “모 인사의 경우 여권실세 P씨와 남다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문화재위원에 위촉됐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고 말했다. 고위인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 인사는 실무 부서에서 올린 최종 후보에는 들어 있었으나 결국 위촉받지 못했다고 한다.
혜택이라야 한 달에 한 번씩 회의에 참석해 10만원의 ‘거마비’를 받는 게 전부인 문화재위원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이처럼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부대효과’가 크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소장품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게 돼 위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한 고미술 전문가는 “문화재위원이 어떤 작품에 대해 ‘가치 있다’고 한마디 하면 당연히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문화재전문위원은 “지방에서 열린 한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주최측이 책을 나눠주기에 뜯어보니 돈봉투가 들어 있었다”고 로비받은 경험을 털어놨다.
문화재위원 위촉과 관련해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는 원칙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령인 ‘문화재위원회 규정’ 2조는 문화재위원의 위촉과 관련해 ‘위원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계(斯界·그 분야)의 권위자 중에서 문화재청장이 위촉한다’고 돼 있다. 언뜻 봐도 너무 추상적이다. ‘해촉’(解囑)과 관련해서는 아예 규정이 없다. 이런 실정을 빗대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위촉과 해촉은 당국의 마음에 달렸다”고 비꼬았다. “문화재위원에 대한 칼자루를 관료들이 쥐고 있다”(한 문화재 전문위원) “사정이 이렇기에 누가 위원이 되든 말이 많은 것”(인사동 한 관계자)이라는 말 등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는 문화재위원들의 ‘전문성’ 문제는 권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는 것 같다. 20여년간 문화재위원으로 있는 한 위원은 “말이 문화재위원이지, 뭘 알아야지”라고 이런 분위기를 표현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전에는 ‘그 사람 정도면…’ 하는 식으로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문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가를 우대하지 않는 풍토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잘 아는 사람, 정통한 전문가를 위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만의 하나라도 유물을 잘못 지정한다든지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파장을 생각해야 한다. 자칫하면 나라 망신까지 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호관 전 문화재관리국장은 “분과가 7개로 늘어나고 위원들이 많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문화재위원들의 권위가 떨어진 측면이 있다. 일본은 전문위원들이 상당히 많고 위원들은 많지 않다. 문화재 담당 공무원도 대개가 학예직으로 상당히 전문화돼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행정직 공무원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사동에서 수십년째 고문서를 연구해 온 한 인사는 “문화재위원을 교수 위주로 지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교수들 가운데 유물의 실물 감정에 능통한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는 게 이 인사의 문제 제기. 현재 문화재 위원 가운데 41명(72%)이 현직교수들이다. “전문성 위주로 학맥과 인맥을 떠나 해당 분야의 최고 인사들을 위촉해야 할 것”이라고 이 인사는 당부했다. ‘문화유산법제 개선방안연구’라는 자료집을 낸 전재경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원 선임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 심사 및 인사청문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불교계에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22일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는 회의를 열고 “복원된 보물 제 387호 회암사지선각왕사비를 경기도 박물관으로 이전하라”고 최종 결정했다. “회암사는 유물을 위한 보관장소가 마련되지 않아 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해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은 ‘선각왕사비 편법 이전’이라는 기사를 통해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보관 장소를 변경하려면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보관 장소 변경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선각왕사비 이전과 관련, 소유자인 회암사(주지 인묵)측은 “변경신청서를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선각왕사비 이전 결정과 관련한 신청서는 경기도지사가 문화재청에 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문화재위원회도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이전을 결정했던 것. 문화재위원회는 선각왕사비가 산불로 피해를 본 97년에 “원 위치에는 모조비를 세우고 복원한 뒤 선각왕사비는 경기도박물관으로 이전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불교계 한 소식통은 “이번 결정에 참가한 문화재위원들 가운데는 선각왕사비의 소유자가 ‘회암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며 “복원도 되기 전인 97년에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여러 이유 외에 문화재위원들이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화재를 경시하는 사회풍토 때문인 듯싶다. 한 문화재위원은 “예우는 그만두고 욕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비난 속에 풍납토성 보존, 경주 경마장 건설 취소 등의 결정을 내렸을 때 욕을 엄청 먹었다”는 것. 전재경 연구위원은 “문화재위원들이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