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0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자리한 갑산한의원 진료실에는 백발의 일본인 신사가 한의원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이 한의원 이상곤 원장(47·한의학 박사, 전 대구한의대 교수)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메모를 했다. 특히 이 박사가 침을 놓을 때마다 신기한 듯 그의 눈은 반짝거렸다. 이것저것 묻는 모습이 의대 수습생을 연상시킬 정도.
갑산한의원을 찾은 일본인은 일본 도야마의과대학의 와타나베 유키오 교수(63)로, 서양의학을 전공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수천 명의 전문의를 배출한 학자다. 양의학과 한의학이 법적으로 양분된 우리와 달리, 일본은 1850년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이 합병돼 양의사들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시술할 수 있다. 와타나베 교수가 속한 도야마대학은 일본에서 전통의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의과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 비염 치료율 74% 임상실험
와타나베 교수의 갑산한의원 방문은 2006년 대구한의대 교수(안이비인후과 과장)였던 이 박사의 임상시험에 동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임상시험의 주제는 이 박사의 한방 처방이 얼마나 많은 알레르기 비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방의 임상시험에 양의가 참가한 것도 최초의 일이었지만 난치성 질환인 알레르기 비염에 대한 한방의 치료효과를 서양의학의 잣대로 증명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박사의 임상시험 프로토콜을 직접 만들고 그 결과를 인증한 주인공.
임상시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대조군 약물이 있는 이중맹검(환자가 어떤 약물이 실험대상인지 모르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이 박사의 한방 처방을 받은 환자 74%에서 ‘유의미’한 치료효과가 나타난 것. 이 임상시험은 정부에서 제공한 연구기금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는 이 박사의 알레르기 비염 치료 경험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다. 실제 이 박사는 1989년부터 20만명의 비염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논문으로 엮었는데, 결국 자신의 주장을 서양식 임상시험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이 박사가 일반 개업 한의사에서 대학교수로 영입된 것도 이런 치료술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북 경주 안강에서 갑산한의원을 개업한 지 10여 년 만에 20만명에 이르는 전국의 콧병, 귓병 환자를 침과 약으로 다스린 명성을 인정받은 것. 이 박사는 교수 시절 한방과학화에 관한 양·한방 퓨전 연구 프로젝트로 보건복지부로부터 14억원의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 박사는 이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전국 한의사를 상대로 보수교육을 실시했으며 한방 이비인후과의 진료 표준을 만들었다. 와타나베 교수는 “임상시험을 할 때도 한국의 한의학 치료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갑산한의원을 와보고 다시 한 번 한방 진료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극찬했다. 이날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박사에게서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들어가는 약재 목록을 받아들고 “바로 환자들에게 적용해보겠다”며 기뻐했다.
400년 만에 부활한 조선 침법에 놀라다!
와타나베 교수가 큰 관심을 보인 부분은 알레르기 비염, 이명(귀울림), 어지럼증 등 난치성 이비인후과 질환의 치료에 주로 쓰이는 ‘천지인(天地人) 침법’. 이 침법은 조선시대 최고 침의(鍼醫)로 알려진 허임(1570~1647년 추정)의 ‘보사(補瀉) 침법’을 이 박사가 400년간 끊긴 맥을 되살려내 따로 이름 붙인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한의사라 하면 대부분 허준을 떠올리지만, 허임은 허준조차 인정한 최고의 침의였다. 문헌에 드러난 그의 공식 직함은 선조와 광해군 때 활약한 ‘치종교수(종기를 치료하는 침의)’. ‘조선왕조실록’(선조 35년 6월12일)은 그에 대해 “의관 허임은 모든 침을 잘 놓는다. 일세를 울리는 사람으로 고향에 물러가 있다”고 기록해놓았다. 선조 37년 9월23일 ‘조선왕조실록’에는 허준이 허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은 침을 잘 놓지 못합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침법을 ‘침구경험방’과 ‘동의문견방’에 남겨놓았지만 경전과 혈(穴)자리, 오행(五行)이라는 유교적·관념적 철학에 빠진 조선의 풍토에서 그의 보사 침법은 대를 잇지 못한 채 사장됐다.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허임의 보사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이 박사는 깊이에 따라 상·중·하로 찌르고 빼는 과정이 하늘, 땅, 사람에게서 기를 얻고 빼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 착안해 이 침법을 ‘천지인 침법’이라 부르고 있다.
“허임의 보사법은, 예를 들어 5푼 깊이로 침을 찌른다면 먼저 2푼 찌르고 멈췄다 다시 2푼 찌른 뒤 또 잠시 쉬고 1푼 찌르는 방식입니다. 그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들이쉬게 한 뒤 침을 빼고 손가락으로 침구멍을 막습니다. 그럼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몸의 기가 보(補·가득 참)됩니다. 사법(瀉法)은 이와 반대로 5푼 깊이로 찌른 다음 2푼 빼고 다시 2푼 빼고 나머지를 들어올려 침구멍을 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내쉬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기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박사는 천지인 침법이 알레르기 비염과 이명, 어지럼증 같은 면역계 질환에 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침을 통해 기를 넣고 빼는 과정, 즉 보사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 폐의 영역이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인 비염, 축농증, 기침, 천식 등의 치료에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또 사법을 쓰면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지듯 소리의 진동을 감지하는 귓속 유모세포의 비정상적 흔들림이 진정되면서 귀울림 현상(이명)이 치료된다는 게 그의 주장. 천지인 침법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가 찾아와 단 1회의 침 치료로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효과를 보는 등 그의 진료실은 침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다.
와타나베 교수는 허임의 보사 침법을 기록한 ‘침구경험방’이 일본에서도 1725년과 1778년 두 번이나 간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바로 일본에서 사용할 순 없지만 열심히 배워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갑산한의원을 찾은 일본인은 일본 도야마의과대학의 와타나베 유키오 교수(63)로, 서양의학을 전공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수천 명의 전문의를 배출한 학자다. 양의학과 한의학이 법적으로 양분된 우리와 달리, 일본은 1850년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이 합병돼 양의사들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시술할 수 있다. 와타나베 교수가 속한 도야마대학은 일본에서 전통의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의과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 비염 치료율 74% 임상실험
와타나베 교수의 갑산한의원 방문은 2006년 대구한의대 교수(안이비인후과 과장)였던 이 박사의 임상시험에 동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임상시험의 주제는 이 박사의 한방 처방이 얼마나 많은 알레르기 비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방의 임상시험에 양의가 참가한 것도 최초의 일이었지만 난치성 질환인 알레르기 비염에 대한 한방의 치료효과를 서양의학의 잣대로 증명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박사의 임상시험 프로토콜을 직접 만들고 그 결과를 인증한 주인공.
임상시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대조군 약물이 있는 이중맹검(환자가 어떤 약물이 실험대상인지 모르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이 박사의 한방 처방을 받은 환자 74%에서 ‘유의미’한 치료효과가 나타난 것. 이 임상시험은 정부에서 제공한 연구기금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는 이 박사의 알레르기 비염 치료 경험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다. 실제 이 박사는 1989년부터 20만명의 비염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논문으로 엮었는데, 결국 자신의 주장을 서양식 임상시험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이 박사가 일반 개업 한의사에서 대학교수로 영입된 것도 이런 치료술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북 경주 안강에서 갑산한의원을 개업한 지 10여 년 만에 20만명에 이르는 전국의 콧병, 귓병 환자를 침과 약으로 다스린 명성을 인정받은 것. 이 박사는 교수 시절 한방과학화에 관한 양·한방 퓨전 연구 프로젝트로 보건복지부로부터 14억원의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 박사는 이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전국 한의사를 상대로 보수교육을 실시했으며 한방 이비인후과의 진료 표준을 만들었다. 와타나베 교수는 “임상시험을 할 때도 한국의 한의학 치료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갑산한의원을 와보고 다시 한 번 한방 진료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극찬했다. 이날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박사에게서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들어가는 약재 목록을 받아들고 “바로 환자들에게 적용해보겠다”며 기뻐했다.
400년 만에 부활한 조선 침법에 놀라다!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과 기자회견에 나선 일본 도야마의과대학 와타나베 유키오 교수(오른쪽).
“신은 침을 잘 놓지 못합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침법을 ‘침구경험방’과 ‘동의문견방’에 남겨놓았지만 경전과 혈(穴)자리, 오행(五行)이라는 유교적·관념적 철학에 빠진 조선의 풍토에서 그의 보사 침법은 대를 잇지 못한 채 사장됐다.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허임의 보사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이 박사는 깊이에 따라 상·중·하로 찌르고 빼는 과정이 하늘, 땅, 사람에게서 기를 얻고 빼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 착안해 이 침법을 ‘천지인 침법’이라 부르고 있다.
“허임의 보사법은, 예를 들어 5푼 깊이로 침을 찌른다면 먼저 2푼 찌르고 멈췄다 다시 2푼 찌른 뒤 또 잠시 쉬고 1푼 찌르는 방식입니다. 그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들이쉬게 한 뒤 침을 빼고 손가락으로 침구멍을 막습니다. 그럼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몸의 기가 보(補·가득 참)됩니다. 사법(瀉法)은 이와 반대로 5푼 깊이로 찌른 다음 2푼 빼고 다시 2푼 빼고 나머지를 들어올려 침구멍을 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내쉬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기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박사는 천지인 침법이 알레르기 비염과 이명, 어지럼증 같은 면역계 질환에 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침을 통해 기를 넣고 빼는 과정, 즉 보사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 폐의 영역이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인 비염, 축농증, 기침, 천식 등의 치료에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또 사법을 쓰면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지듯 소리의 진동을 감지하는 귓속 유모세포의 비정상적 흔들림이 진정되면서 귀울림 현상(이명)이 치료된다는 게 그의 주장. 천지인 침법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가 찾아와 단 1회의 침 치료로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효과를 보는 등 그의 진료실은 침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다.
와타나베 교수는 허임의 보사 침법을 기록한 ‘침구경험방’이 일본에서도 1725년과 1778년 두 번이나 간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바로 일본에서 사용할 순 없지만 열심히 배워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