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사 진척률 1위 ‘부산 혁신 도시’
혁신도시추진단에 따르면, 전국 혁신도시 10곳 가운데 부산시의 공사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엎치락뒤치락 간발의 차이도 아니다. 두 번째로 속도가 빠른 제주는 49.5%, 꼴찌인 충북은 3%. 진척률 78.6%인 부산은 ‘학실하고 하끈하게’ 1위를 기록했다.
부산시 혁신도시건설팀 정완식 팀장은 “이전기관과 부지 선정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시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은 모두 13곳. 이들은 금융 클러스터인 문현 지구, 영화 클러스터인 센텀 지구, 해양 클러스터인 동삼 지구에 나누어 입주한다. 대연 지구는 공동 주거지인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회 한 접시 먹고 시 직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섰다.
금융 클러스터 | 문현 혁신지구
2월10일 부산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오전 11시쯤 빗방울이 떨어지나 싶더니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부산의 겨울 날씨치곤 드물게 사흘째 비라고 했다. 그럼에도 혁신도시건설팀 직원들은 “현장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혁신도시 일을 하면서 이전기관 직원들과 교류할 일이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실무자가 지역 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한마디로 부산 혁신도시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다른 지역들은 허허벌판에 ‘거대 신도시’를 짓는 데 반해, 부산은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에 건물만 올리면 되는 상황이죠.”
첫 행선지인 문현 지구로 향하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구정모 주무관은 부산 혁신도시의 순조로운 출발을 ‘타이밍’의 공으로 돌렸다. 혁신도시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부산시는 비슷한 사업을 구상했다. 일명 시를 먹여 살릴 사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10대 비전사업’이 그것. 이 사업을 준비하던 중 혁신도시 계획이 발표됐고, 부산시는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구 주무관이 말을 이었다.
“부산시는 해양, 영화 등 부산시에 맞는 콘셉트를 잡고 부지를 마련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혁신도시 계획이 발표돼 추진 중이던 사업과 연계할 수 있었고요.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면 입주기관을 유치해야 하는데, 어차피 내려와야 할 공공기관이 생겨 수고를 덜 수 있었죠. 강제성이 없으면 공공기관은 절대 내려오려 하지 않아요.”
운때만 맞았던 것은 아니다. 부산시의 사전 전략과 적극성도 한몫했다. 2005년 발표 당시에는 하나의 부지에 혁신도시를 일괄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부지가 없고 ‘10대 비전사업’에 따라 소규모 부지를 마련해둔 부산시로서는 공공기관을 분산 이전하는 편이 유리했다. 그래서 부산시는 정부에 ‘복수의 혁신도시를 만들게 해달라’고 건의했고, 4개의 핵심지구를 조성할 수 있었다.
부지를 한눈에 담기 위해 근처 아파트 옥상에 올랐다. 손에 들린 조감도 속의 도쿄 롯폰기힐스를 닮은 전경 대신, 초목만 무성한 가운데 일부 부지에서 터 닦기 작업이 한창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들어설 4개(미정)의 건물은 올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현 지구에 들어설 공공기관은 모두 6곳.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대한주택보증㈜ 등 금융기관 4곳과 한국남부발전㈜, 한국청소년상담원 등 기타 기관 2곳이다. 부산은행, 한국은행, 기술보증기금 등 유관기관 3곳도 입주한다. 문현 지구의 특징은 63층짜리 고층빌딩에 공공기관 6곳이 한꺼번에 둥지를 튼다는 것. 서영석 주무관은 “이곳은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 할 문현 지구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 결과, 문현 지구는 개별 기관을 들이는 것보다 복합 개발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 결과를 들어 각 기관을 설득했죠. 금융기관들은 보안문제로 반대가 심했지만, 매듭이 잘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전기관 측의 시각은 달랐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경영지원팀 이상훈 과장은 “도시공사가 일을 진행하는 관계로 기관들은 계획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초고층빌딩에 들어가는 것도 부산시가 회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혁신도시 사업의 상당 부분은 부산도시공사가 맡아 진행하고 있다.
“초고층빌딩이 효율적이라는 용역 결과도 있었고, 단독 사옥을 짓는 게 낫다는 결과도 있었어요. 부산시의 원래 계획에 따라 고층빌딩에 입주하기로 했지만 다른 지원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양가도 비싼 편이죠. 정부 지침은 3.3㎡당 230만3000원인데, 현재 사업시행자가 제시한 분양가는 약 300만원입니다.”
이 빌딩의 착공 예정시점은 올해 9월. 부산시와 이전기관 관계자들은 사옥관리협의회를 구성해 면적, 층수, 분양가 등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영화 클러스터 | 센텀 혁신지구
외지인은 물론, 부산 사람들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는 곳. 해운대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면 바로 해운대 앞바다가 펼쳐지는 마린시티는 초고층빌딩이 빼곡한 고급 주거단지다. 일부 스위트층은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바로 옆 동네인 센텀시티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작은 도시다. 신설 학교와 신세계·롯데 백화점, 영화관 등이 단지 안에 모여 있다. 이전기관 중 상당수도 “이왕 갈 거면 센텀 지구로 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센텀 지구에 입주하는 공공기관은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등 3곳. 유관기관으로는 영화후반작업시설, 문화콘텐츠컴플렉스, 영상센터가 들어온다. 센텀 지구 부지는 도로변과 맞닿아 있다. 초고층빌딩이 들어서는 문현 지구와 달리, 넓지만 나지막한 건물 4개가 일렬로 배치된다. 현재 완공된 건물은 영화후반작업시설 하나. 이전기관이 들어설 건물은 올해 설계를 마치고 하반기쯤 착공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명하잖아요. 한국 영화 40% 이상이 부산에서 촬영되고요. 이곳을 영화 제작과 편집 등의 후반작업, 관람, 페스티벌 개최까지 가능한 영화 인프라도시로 만들 계획입니다. 해운대라는 입지 조건도 최고잖아요.”
영화 클러스터의 개념을 묻자 돌아온 서 주무관의 대답이다. 최근 영화 ‘해운대’는 물론 ‘주유소 습격사건’ ‘부산’, 드라마 ‘친구’ 등 부산에서 촬영한 작품이 유독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이는 부산영상위원회의 공이 컸다. 부산은 바지런히 촬영현장을 제공하는 한편 ‘제니스엔터테인먼트’ ‘한류웍스’ 등의 기업 유치, ‘아시안필름마켓’ ‘부산콘텐츠마켓’ 등의 페스티벌 개최로 영화도시 이미지를 굳히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전기관 직원들은 “산업을 끌어오려면 다른 지원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와 게임 관련 기관 3개가 부산에 내려오는데, 파급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다음은 영화진흥위원회 경영관리부 김상철 차장의 말이다.
“콘텐츠 관련 공공기관이 모두 부산으로 내려오는 건 아니에요. 콘텐츠진흥원, 문화예술진흥원 등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물론 부산이 미래영상도시로서 잠재력은 있지만,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제작업체 등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해양 클러스터 | 동삼 혁신지구
동삼 지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해운대에서 차로 40분 넘게 꼬불꼬불 비탈길과 산길을 달렸다. 동삼 지구가 들어설 부지는 영도섬의 매립지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영도섬에 해양 관련 대부분의 기관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여기는 대형 선박들이 머무는 묘박지예요. 주차비를 내는 것처럼 바다 위에 서 있을 때도 돈을 내야 하죠. 이 아래쪽에는 교과서에 나온 동삼패총박물관이 있고요.”
차로 5분 거리인 태종대를 한 바퀴 둘러 동삼 지구 부지로 갔다. 이곳은 부산스러운 향기가 유독 짙게 밴 곳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에는 정박 중인 대형 화물선들이 진풍경을 연출했고, 비와 섞인 바람에서는 짠 내가 묻어났다.
이곳은 61만5932㎡ 규모로 혁신지구 가운데 가장 넓다. 이전기관과 관련기관도 압도적으로 많다. 부산해양경찰서, 크루즈터미널, 부산해사고등학교 등 기존시설 3개, 한국해양연구원,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공공기관 4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해양대학교, 국립해양박물관 등 계획시설 6개가 더해져 모두 13개의 기관이 들어서게 된다.
부지에 들어서니 바삐 움직이는 레미콘과 크레인에 눈이 어지럽다. 이전기관이 많아 공사 속도도 제각각. 가장 많이 올라간 건물은 2, 3층 높이고 대부분은 터 닦기 작업 중이었다. 매립지라 그런지 진흙에 발이 푹푹 빠졌다. 이곳은 국유지라서 다른 지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부산도시공사 혁신도시2팀 우동권 부장은 “이곳은 해양대의 인력이 해양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해양과학기술산업에 활용하는, 산·학·연이 이뤄지는 해양 관련 산업의 집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다른 곳과 달리 동삼 지구에는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이 꽤 있다. 25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공애자(77) 씨는 “동네가 좋아진다는데 뭐가 어떻게 바뀌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공사를 시작한 뒤로 바다가 안 보여 안 좋다”고 했다. 동삼 지구대 우방식(37) 씨도 “해 뜨는 게 안 보여 아쉽다. 나도 그렇지만, 주민들 역시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주거지 | 대연 혁신지구
원래는 다른 지역에 주거지를 조성하려고 했는데, 기관 협의체에서 강하게 요구해 이 부지를 내주게 됐어요. 요구조건을 들어달라며 방송카메라까지 들고 부산시장실로 쳐들어오기도 했죠. 원하는 부지를 내줬더니 또 이왕이면 브랜드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하더군요.”(부산도시공사 관계자)
대연은 혁신지구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곳에는 산업 클러스터가 아닌, 공동 주거지가 들어선다. 대우건설, 현대건설이 부산도시공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25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것. 직원들로서는 주거가 가장 실질적인 고민이다. 그런 만큼 더 좋은 조건을 바라는 기관과 시공을 책임진 부산시 사이에 밀고 당기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경성대와 부경대 학생이 모여드는 일명 ‘경대 앞’은 서울의 신촌쯤 된다. 대연 지구는 그 바로 옆에 자리해 있다. 문현 지구, 센텀 지구 등과 전철로 연결돼 교통 조건도 좋다. 구 주무관은 “분양가는 800만~900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슷한 아파트 분양가의 80% 수준으로, 지역민들이 ‘알짜배기 땅을 그렇게 내주고,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이 무슨 점령군이냐’고 할 정도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분양한 뒤 잔여분은 일반분양할 계획이다. 입주 기관 직원들의 공동주거지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부산 전체 시세에 비해 그렇게 저렴하진 않다고 봐요. 서울하고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사실 서울에서도 그 가격 안 되는 곳에 사는 분들이 많거든요. 부산에 집을 사려면 재테크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데, 추이를 좀 봐야겠어요.”(영화진흥위원회 노조 관계자)
“3년 뒤의 일이라 혼자 내려갈지, 가족과 함께 내려갈지, 아이의 학교 문제는 어떻게 바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직원들도 그때 가봐야 주거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이고요.”(국립해양조사원 백공구 주무관)
부산시 관계자들의 말투에는 ‘그래도 10개 혁신도시 중에는 부산이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진행속도도 빠르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전이 거의 확실시되자, 13개 이전기관 사이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퍼졌다는 것. 정부에서 이전 작업이 빠른 기관장에게 인사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 일부 기관은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산시와 이전기관의 속내는 다른 면이 많다. 정 팀장과 한 이전기관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2012년 완공 목표가 어쩌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부 지침에 따라 이전기관 직원들과 스킨십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초청해 크루즈를 타거나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등 행사를 개최하고, 기관 직원들이 이곳 고등학교에서 특강도 했죠. 물론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 배우자 직장 알선 등 요구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겠지만, 차근히 추진하면 부산 지역을 살리는 혁신도시 건립이 가능하리라 봅니다.”(정 팀장)
“지금은 거의 결정이 난 분위기지만 혁신도시는 여러 번 재검토된 바 있어요. 정부의 정책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고, 분양가와 복지 문제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죠. 내려가야 한다면 가겠지만, 미래의 일인 만큼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한 이전기관 관계자)
혁신도시추진단에 따르면, 전국 혁신도시 10곳 가운데 부산시의 공사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엎치락뒤치락 간발의 차이도 아니다. 두 번째로 속도가 빠른 제주는 49.5%, 꼴찌인 충북은 3%. 진척률 78.6%인 부산은 ‘학실하고 하끈하게’ 1위를 기록했다.
부산시 혁신도시건설팀 정완식 팀장은 “이전기관과 부지 선정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시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은 모두 13곳. 이들은 금융 클러스터인 문현 지구, 영화 클러스터인 센텀 지구, 해양 클러스터인 동삼 지구에 나누어 입주한다. 대연 지구는 공동 주거지인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회 한 접시 먹고 시 직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섰다.
금융 클러스터 | 문현 혁신지구
금융 클러스터인 문현 혁신지구의 예상 조감도.
“한마디로 부산 혁신도시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다른 지역들은 허허벌판에 ‘거대 신도시’를 짓는 데 반해, 부산은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에 건물만 올리면 되는 상황이죠.”
첫 행선지인 문현 지구로 향하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구정모 주무관은 부산 혁신도시의 순조로운 출발을 ‘타이밍’의 공으로 돌렸다. 혁신도시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부산시는 비슷한 사업을 구상했다. 일명 시를 먹여 살릴 사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10대 비전사업’이 그것. 이 사업을 준비하던 중 혁신도시 계획이 발표됐고, 부산시는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구 주무관이 말을 이었다.
“부산시는 해양, 영화 등 부산시에 맞는 콘셉트를 잡고 부지를 마련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혁신도시 계획이 발표돼 추진 중이던 사업과 연계할 수 있었고요.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면 입주기관을 유치해야 하는데, 어차피 내려와야 할 공공기관이 생겨 수고를 덜 수 있었죠. 강제성이 없으면 공공기관은 절대 내려오려 하지 않아요.”
운때만 맞았던 것은 아니다. 부산시의 사전 전략과 적극성도 한몫했다. 2005년 발표 당시에는 하나의 부지에 혁신도시를 일괄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부지가 없고 ‘10대 비전사업’에 따라 소규모 부지를 마련해둔 부산시로서는 공공기관을 분산 이전하는 편이 유리했다. 그래서 부산시는 정부에 ‘복수의 혁신도시를 만들게 해달라’고 건의했고, 4개의 핵심지구를 조성할 수 있었다.
부지를 한눈에 담기 위해 근처 아파트 옥상에 올랐다. 손에 들린 조감도 속의 도쿄 롯폰기힐스를 닮은 전경 대신, 초목만 무성한 가운데 일부 부지에서 터 닦기 작업이 한창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들어설 4개(미정)의 건물은 올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현 지구에 들어설 공공기관은 모두 6곳.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대한주택보증㈜ 등 금융기관 4곳과 한국남부발전㈜, 한국청소년상담원 등 기타 기관 2곳이다. 부산은행, 한국은행, 기술보증기금 등 유관기관 3곳도 입주한다. 문현 지구의 특징은 63층짜리 고층빌딩에 공공기관 6곳이 한꺼번에 둥지를 튼다는 것. 서영석 주무관은 “이곳은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 할 문현 지구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 결과, 문현 지구는 개별 기관을 들이는 것보다 복합 개발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 결과를 들어 각 기관을 설득했죠. 금융기관들은 보안문제로 반대가 심했지만, 매듭이 잘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전기관 측의 시각은 달랐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경영지원팀 이상훈 과장은 “도시공사가 일을 진행하는 관계로 기관들은 계획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초고층빌딩에 들어가는 것도 부산시가 회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혁신도시 사업의 상당 부분은 부산도시공사가 맡아 진행하고 있다.
“초고층빌딩이 효율적이라는 용역 결과도 있었고, 단독 사옥을 짓는 게 낫다는 결과도 있었어요. 부산시의 원래 계획에 따라 고층빌딩에 입주하기로 했지만 다른 지원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양가도 비싼 편이죠. 정부 지침은 3.3㎡당 230만3000원인데, 현재 사업시행자가 제시한 분양가는 약 300만원입니다.”
이 빌딩의 착공 예정시점은 올해 9월. 부산시와 이전기관 관계자들은 사옥관리협의회를 구성해 면적, 층수, 분양가 등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영화 클러스터 | 센텀 혁신지구
외지인은 물론, 부산 사람들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는 곳. 해운대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면 바로 해운대 앞바다가 펼쳐지는 마린시티는 초고층빌딩이 빼곡한 고급 주거단지다. 일부 스위트층은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바로 옆 동네인 센텀시티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작은 도시다. 신설 학교와 신세계·롯데 백화점, 영화관 등이 단지 안에 모여 있다. 이전기관 중 상당수도 “이왕 갈 거면 센텀 지구로 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센텀 지구에 입주하는 공공기관은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등 3곳. 유관기관으로는 영화후반작업시설, 문화콘텐츠컴플렉스, 영상센터가 들어온다. 센텀 지구 부지는 도로변과 맞닿아 있다. 초고층빌딩이 들어서는 문현 지구와 달리, 넓지만 나지막한 건물 4개가 일렬로 배치된다. 현재 완공된 건물은 영화후반작업시설 하나. 이전기관이 들어설 건물은 올해 설계를 마치고 하반기쯤 착공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명하잖아요. 한국 영화 40% 이상이 부산에서 촬영되고요. 이곳을 영화 제작과 편집 등의 후반작업, 관람, 페스티벌 개최까지 가능한 영화 인프라도시로 만들 계획입니다. 해운대라는 입지 조건도 최고잖아요.”
영화 클러스터의 개념을 묻자 돌아온 서 주무관의 대답이다. 최근 영화 ‘해운대’는 물론 ‘주유소 습격사건’ ‘부산’, 드라마 ‘친구’ 등 부산에서 촬영한 작품이 유독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이는 부산영상위원회의 공이 컸다. 부산은 바지런히 촬영현장을 제공하는 한편 ‘제니스엔터테인먼트’ ‘한류웍스’ 등의 기업 유치, ‘아시안필름마켓’ ‘부산콘텐츠마켓’ 등의 페스티벌 개최로 영화도시 이미지를 굳히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전기관 직원들은 “산업을 끌어오려면 다른 지원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와 게임 관련 기관 3개가 부산에 내려오는데, 파급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다음은 영화진흥위원회 경영관리부 김상철 차장의 말이다.
“콘텐츠 관련 공공기관이 모두 부산으로 내려오는 건 아니에요. 콘텐츠진흥원, 문화예술진흥원 등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물론 부산이 미래영상도시로서 잠재력은 있지만,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제작업체 등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영화 클러스터인 센텀 지구의 조감도와 건설 현장(작은 사진).
동삼 지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해운대에서 차로 40분 넘게 꼬불꼬불 비탈길과 산길을 달렸다. 동삼 지구가 들어설 부지는 영도섬의 매립지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영도섬에 해양 관련 대부분의 기관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여기는 대형 선박들이 머무는 묘박지예요. 주차비를 내는 것처럼 바다 위에 서 있을 때도 돈을 내야 하죠. 이 아래쪽에는 교과서에 나온 동삼패총박물관이 있고요.”
차로 5분 거리인 태종대를 한 바퀴 둘러 동삼 지구 부지로 갔다. 이곳은 부산스러운 향기가 유독 짙게 밴 곳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에는 정박 중인 대형 화물선들이 진풍경을 연출했고, 비와 섞인 바람에서는 짠 내가 묻어났다.
이곳은 61만5932㎡ 규모로 혁신지구 가운데 가장 넓다. 이전기관과 관련기관도 압도적으로 많다. 부산해양경찰서, 크루즈터미널, 부산해사고등학교 등 기존시설 3개, 한국해양연구원,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공공기관 4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해양대학교, 국립해양박물관 등 계획시설 6개가 더해져 모두 13개의 기관이 들어서게 된다.
부지에 들어서니 바삐 움직이는 레미콘과 크레인에 눈이 어지럽다. 이전기관이 많아 공사 속도도 제각각. 가장 많이 올라간 건물은 2, 3층 높이고 대부분은 터 닦기 작업 중이었다. 매립지라 그런지 진흙에 발이 푹푹 빠졌다. 이곳은 국유지라서 다른 지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부산도시공사 혁신도시2팀 우동권 부장은 “이곳은 해양대의 인력이 해양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해양과학기술산업에 활용하는, 산·학·연이 이뤄지는 해양 관련 산업의 집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다른 곳과 달리 동삼 지구에는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이 꽤 있다. 25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공애자(77) 씨는 “동네가 좋아진다는데 뭐가 어떻게 바뀌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공사를 시작한 뒤로 바다가 안 보여 안 좋다”고 했다. 동삼 지구대 우방식(37) 씨도 “해 뜨는 게 안 보여 아쉽다. 나도 그렇지만, 주민들 역시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삼 혁신지구 조감도와 공사 모습(작은 사진).
공동주거지 | 대연 혁신지구
대연 혁신지구의 조감도.
대연은 혁신지구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곳에는 산업 클러스터가 아닌, 공동 주거지가 들어선다. 대우건설, 현대건설이 부산도시공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25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것. 직원들로서는 주거가 가장 실질적인 고민이다. 그런 만큼 더 좋은 조건을 바라는 기관과 시공을 책임진 부산시 사이에 밀고 당기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경성대와 부경대 학생이 모여드는 일명 ‘경대 앞’은 서울의 신촌쯤 된다. 대연 지구는 그 바로 옆에 자리해 있다. 문현 지구, 센텀 지구 등과 전철로 연결돼 교통 조건도 좋다. 구 주무관은 “분양가는 800만~900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슷한 아파트 분양가의 80% 수준으로, 지역민들이 ‘알짜배기 땅을 그렇게 내주고,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이 무슨 점령군이냐’고 할 정도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분양한 뒤 잔여분은 일반분양할 계획이다. 입주 기관 직원들의 공동주거지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부산 전체 시세에 비해 그렇게 저렴하진 않다고 봐요. 서울하고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사실 서울에서도 그 가격 안 되는 곳에 사는 분들이 많거든요. 부산에 집을 사려면 재테크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데, 추이를 좀 봐야겠어요.”(영화진흥위원회 노조 관계자)
“3년 뒤의 일이라 혼자 내려갈지, 가족과 함께 내려갈지, 아이의 학교 문제는 어떻게 바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직원들도 그때 가봐야 주거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이고요.”(국립해양조사원 백공구 주무관)
부산시 관계자들의 말투에는 ‘그래도 10개 혁신도시 중에는 부산이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진행속도도 빠르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전이 거의 확실시되자, 13개 이전기관 사이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퍼졌다는 것. 정부에서 이전 작업이 빠른 기관장에게 인사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 일부 기관은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산시와 이전기관의 속내는 다른 면이 많다. 정 팀장과 한 이전기관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2012년 완공 목표가 어쩌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부 지침에 따라 이전기관 직원들과 스킨십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초청해 크루즈를 타거나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등 행사를 개최하고, 기관 직원들이 이곳 고등학교에서 특강도 했죠. 물론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 배우자 직장 알선 등 요구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겠지만, 차근히 추진하면 부산 지역을 살리는 혁신도시 건립이 가능하리라 봅니다.”(정 팀장)
“지금은 거의 결정이 난 분위기지만 혁신도시는 여러 번 재검토된 바 있어요. 정부의 정책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고, 분양가와 복지 문제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죠. 내려가야 한다면 가겠지만, 미래의 일인 만큼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한 이전기관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