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방위사업청 존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국방부 주변에는 불만 섞인 의견이 많이 떠돌았다. 대표적인 것이 “국방부는 육군 중심으로 운영되는 육방부”라는 것. 한국이 처한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방산물자를 수입만 하지 말고 수출까지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방산업체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낮춰 동종 업체 간 경쟁을 극대화하고 무기 도입 단가를 낮추자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의견이 제도개선단으로 수렴된 것은 불문가지였다.
드디어 2006년 1월4일 방산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방사청이 국방부 외청으로 문을 열었다. 초대 청장은 국방부 조달본부장을 지낸 김정일 예비역 소장, 차장은 제도개선단을 이끈 이 변호사가 맡았다. 국방정책을 펼치려면 그 정책을 현실화하는 무기 도입이 뒤따라야 한다. 정책 결정은 아이디어로 하는 것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갈등이 적다. 그러나 무기 도입은 기종을 결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니만큼 잡음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게다가 힘은 정책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예산을 집행하는 곳으로 조용히 이동하는 속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국방부는 실권을 잃고 그 힘이 방사청으로 옮겨간 것이다. “국방부 시대는 가고, 방사청 시대가 왔다”는 말이 괜한 푸념은 아니었다.
정부 외청 중 예산 1위 기관
그때까지 정부 외청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을 쓰던 곳은 경찰청(2007년 6조4620억원)이었다. 그런데 방사청이 경찰청을 누르고 외청 중 예산 1위(2007년 6조6800억원) 기관으로 올라섰다. 그뿐 아니라 방사청 예산은 재정경제부, 농림부, 해양수산부보다도 많았다. 그러나 방사청 출범 후 한국 방산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책 결정과 무기 도입이 분리되면서 오히려 복잡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방산은 무기를 수출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 쥐가 없었기에 누구도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외청을 만들면 인사, 비서, 공보, 감사 등 조직을 꾸려갈 기본 조직도 함께 있어야 한다. 국방부에서 외청으로 떼어냈기에 이런 조직들을 신설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출되는 비용도 적지 않았다. 큰 기구를 쪼개는 것도 개혁이지만, 합쳐서 중복을 없애고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바로 방사청 존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방사청은 정부조직법 등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이라, 법을 바꾸지 않으면 해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장관 등을 통해 공론화가 이뤄진 만큼 방사청의 국방부 복귀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국방부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안보경영연구원(SMI)과 시스템체계공학원(ISE) 등 민간기관에 맡겼다. 두 연구기관은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집했는데, 대체적인 의견이 국방부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복귀는 당연한 것이 됐고, 복귀 방식이 문제로 떠올랐다. 방사청 측도 국방부에 방산 문제를 전담하는 2차관을 신설해 방사청장 임무를 맡긴다면 복귀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방사청이 국방부로 복귀하면 중복 조직이 사라지고 정책과 무기 도입이 일치돼 효율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안 그래도 육군 세력이 강한 국방부가 무기 도입 업무까지 장악하게 돼 해·공군의 전력 증강이 약해질 수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방사청을 만들기 전 육·해·공군 본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조직을 운영했다. 해군은 함정 건조를 추진하기 위해 조함단(造艦團)을, 공군은 항공사업단을 운영했는데 방사청이 생기면서 이 조직들이 방사청으로 옮겨갔다.
2006년 1월4일 서울 용산구 방위사업청 개청 행사에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 등이 참석해 테이프를 절단하고 있다.
따라서 방사청이 국방부로 복귀하면 이 조직이 어디로 갈지도 문제가 된다. 각 군 본부는 정책을 만들고, 각 군이 필요로 하는 주요 사업을 챙기는 군정권(軍政權)을 갖고 있다. 그리고 국방부는 전군 차원의 사업을 추진하는 군정권을 갖는다. 따라서 각 군 차원에서 하는 사업권은 군 본부에 돌려주는 것이 좋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다. 방사청의 국방부 복귀 문제를 집중 연구하는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서 모범 답안을 찾아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방산 분야는 복마전’이라는 인식을 갖고 방사청을 만들었다. 복마전이라면 감사와 감찰을 강화해서 풀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별도 조직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산이 복마전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무기 도입 사업은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업은 대통령의 내인가를 받은 뒤 추진됐기에 국방부나 각 군은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즉, 정치권이 문제를 일으킨 주역인데도, 노무현 정부는 국방 무기 도입 분야가 문제의 근원지라고 판단해 방사청을 만든 것이다.
관계자들은 방사청 복귀 문제와 함께 무한경쟁을 유도하는 현 방산체제도 손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예로 함정 건조는 매번 경쟁 입찰로 하고 있어, 조선업체들은 출혈 수주를 거듭한다. 조선업체 처지에서 함정 건조는 그들의 실력을 광고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에 당장은 출혈 수주를 마다하지 않지만, 반복되면 함정 건조를 기피할 수 있다.
또한 방산은 안보를 위한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국수적(國粹的)’이어야 한다. 미국은 외국에서 아무리 좋은 무기가 개발돼도 반드시 미국 기업에서 생산한 무기만 미군에 공급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처인 미군에 무기를 공급하고 싶은 외국 업체는 미국 방산업체와 동업계약을 맺고 기술을 제공해, 미국 기업이 직접 무기를 만들어 미군에 공급하게 하고 있다. 미국조차 이런 방법으로 자국 방산을 보호, 육성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가격 인하만 노리고 외국 기업도 한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삼성전자 같은 민간기업에서도 외국으로 기술을 빼돌리는 일이 벌어지는데, 방산 분야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방사청의 국방부 복귀는 지난 정부가 성급히 추진하는 바람에 흩어놓은 방산 ‘바로 세우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