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쇼트트랙은 2월18일 남자 5000m 계주에서도 결승전에 올라 쇼트트랙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임하는 한국의 메달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스키, 썰매 등 비교우위에서 뒤처지는 종목은 참가에 의의를 두지만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 등 일부 빙상종목에서 세계 최고를 겨냥한다. 마치 한국이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 철강 등에 집중해 세계 무역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것처럼 말이다.
빙판 여왕 즉위식 앞둔 김연아
하계올림픽의 꽃이 마라톤이라면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여자 피겨싱글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밴쿠버가 ‘피겨 요정’ 김연아가 ‘피겨 여왕’으로 즉위하는 무대라고 확신하고 있다. 자타공인 김연아의 최대 라이벌은 김연아 자신뿐이다. 일본의 스포츠 전문잡지 ‘넘버’ 최신호는 밴쿠버올림픽 피겨 특집판에서 김연아를 집중분석했다. ‘피겨 불모지 한국에서 돌연 탄생한 은반의 여왕, 왜 그녀는 그토록 강해질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특집기사는 한국을 방문해 그를 가르친 코치들까지 찾아다니며 해부하듯 파헤쳤다. 마치 도요타가 현대자동차를 분해한 것처럼.
일본이 이토록 치열하게 탐색하는 것은 김연아를 넘어야 아사다나 안도가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생 동갑내기인 김연아와 아사다는 주니어 시절부터 국제대회를 양분해왔다.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무게추가 김연아 쪽으로 급속도로 쏠린다. 김연아는 2009년 4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모두 우승했다. 2009년 김연아의 시즌 최저점수는 아사다가 지난 1월 전주 4대륙선수권에서 우승할 때 기록한 최고점수보다도 높다.
트리플 악셀 점프가 특장인 아사다는 기술력에 치중하지만 연약한 정신력 탓에 성공 확률이 떨어지고, 제풀에 무너지곤 한다. 반면 김연아는 표현력과 점프의 안정성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실수하거나, 쇼트프로그램에서 부진하거나, 심지어 모호한 심판판정이 나오거나 어떤 악재에 직면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강심장의 소유자다.
여자 피겨싱글 쇼트프로그램은 2월24일(한국 시간)에 있다. 이어 메달이 결정되는 프리프로그램은 26일에 열린다. ‘김연아 대 일본세’의 대결 구도지만 개최국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가 복병으로 꼽힌다. 실제 역대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싱글에선 ‘전설’의 미셸 콴도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할 만큼 이변이 속출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금메달이 아니라 최고의 연기’를 목표로 전 세계를 매혹시킬 것이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첫 출전은 1948년. 1992년 알베르빌에서 첫 금이 나왔고,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금 17, 은 8, 동 6개를 땄다. 그중 은 1, 동 1만 빼고 모조리 쇼트트랙이 올린 성과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도 2월14일 쇼트트랙이 책임졌다. 비록 마지막 바퀴에서 한국 선수들끼리 충돌해 금·은·동 싹쓸이의 기회를 놓쳤지만 남자 1500m에서 세계랭킹 1위 이정수가 정상을 지켰다.
전열을 재정비한 뒤 남자부는 1000m(21일)와 5000m 계주(27일)까지 3관왕에 도전한다. 여자부는 세계 최강인 중국의 왕멍이 부담스럽지만 아성인 3000m 계주(25일)에서만큼은 금메달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올림픽 5개 대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2월14일 예상치 못한 은메달 낭보(이승훈·남자 5000m)를 전한 스피드스케이팅은 500m(16일)에서도 한국 빙속의 새 역사를 썼다. 다크호스 모태범이 올림픽에 5회 연속 출전한 간판 이규혁과 토리노 동메달의 주역인 세계랭킹 1위 이강석이 이루지 못한 빙속 첫 금메달의 꿈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도전 52년사에서 쇼트트랙 이외의 종목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다. 이어 17일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이상화가 동계올림픽 사상 첫 여자 빙속 금메달 낭보를 전했다. 여자 빙속은 지금까지 동메달조차 없었기에 이상화는 한국이 처음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1948년 생모리츠 대회 이후 62년 만에 꿈을 이룬 셈.
설 연휴 TV 특선영화 중 시청률 1위는 ‘국가대표’였다. 동계올림픽 효과다. 김용화 감독, 하정우 주연의 ‘국가대표’는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탄생 및 도전을 유머와 페이소스로 버무려낸 감동 픽션이다. 2009년 여름 개봉한 이 영화가 85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이슈로 떠오르자 덩달아 실존 모델인 스키점프 대표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이름으로
더구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스키점프는 일정상 대회 1호 금메달 종목이다. 대표팀은 단체전 올림픽 티켓을 놓쳐 개인전(노멀 힐·라지 힐)에만 출전했다. 김흥수 코치를 포함해 선수단은 총 4명뿐(최흥철·김현기·최용직).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강칠구는 휘슬러 올림픽파크까지 찾아와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응원으로 대신했다.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지만, 관심이 곧 지원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장비를 돌봐줄 전문요원이 없어 선수들이 직접 스키에 왁싱을 하느라 연습 라운드를 마친 뒤 몸을 풀 사이도 없이 점프대에 오른다. 경기 전날 밤에는 경기복을 재봉틀로 고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는 후문. 공포와 마주하게 될 점프에 앞서 심리적 안정감을 줄 심리치료사도 없다. 서로가 국가대표이자 장비담당자이자 심리치료사다.
이 와중에 김현기와 최흥철이 2월13일 노멀 힐 예선을 통과하는 작은 기적을 연출했다. 각각 결선 1라운드에서 40위와 48위로 최종 결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세계 톱10의 꿈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국가대표 3인방은 2월20일 시작되는 라지 힐에 출격한다. 객관적 전망은 노멀 힐보다 더 어둡다. 영화는 영화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키점프의 특성상, 기적의 가능성은 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그들이 진정한 국가대표다.
올림픽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기량을 다투는 대회인 만큼 한국 경기를 제외하더라도 주목할 만한 경기가 많다. 동계올림픽 종목은 크게 3개로 나뉜다. △빙판 위에서 스피드 혹은 예술성을 겨루거나, 상대팀 골대에 골을 넣는 아이스하키 같은 빙상 종목 △스키 혹은 스노보드를 타고 활강속도, 회전, 점프, 지구력을 시험하는 스키 종목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의 썰매 종목이다.
여기서 지켜봐야 할 밴쿠버 슈퍼스타 빅3는 올레 아이나르 뵈른달렌(노르웨이), 샤니 데이비스(미국), 린지 본(미국)이다. 남자 바이애슬론 5개 종목에 출전하는 뵈른달렌은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금메달(기존 8개)에 도전한다. 그는 이미 금 5, 은 3, 동 1개를 수상했다. 4년 전 토리노 대회에서 흑인으로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흑색탄환’ 데이비스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몇 개의 금메달을 딸지도 재미있는 볼거리다. 여자 스키의 일인자이자 미모로도 유명한 린지 본은 토리노에 이어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또 부상을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출전 강행의사를 밝히고 훈련에 돌입, ‘스키 여제’의 위용을 발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 밖에도 아이스하키 결승전, 남자 피겨싱글,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명인 숀 화이트(미국)의 미기도 놓칠 수 없다. 그리고 하나 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2018년 올림픽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할 ‘평창의 꿈’을 잊지 말자. 정부 차원의 총력 지원은 물론, IOC 위원으로 복귀한 삼성 이건희 전 회장도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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