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16일 부산 영도구 동삼동 매립지에서 열린 혁신도시 착공식. 부산에는 13개 공공기관이 입주한다.
그러나 최근 국토정책의 기조는 ‘지역 간 균형발전’에서 ‘권역 간 특화발전’으로 바뀌었고, 정책도 ‘중앙정부 주도의 균형발전’에서 ‘지방정부 주도의 광역분권형 관리’로 변했다. 녹색성장으로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광역경제권 구축,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같은 새로운 국토·도시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지난 정부부터 추진해온 혁신도시 또한 새로운 국토정책에 맞춰 발전적 진화를 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전국에서 10개 혁신도시가 건설 중이다. 그중 광주전남·경북·전북·충북 혁신도시는 신도시형으로, 경남·강원·제주 혁신도시는 신시가지형으로, 나머지 부산·대구·울산 혁신도시는 혁신지구형으로 계획됐다. 대부분 토지보상이 완료됐고 공사 진척은 30~50% 수준에 이른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이전 계획도 LH공사 등 특별한 상황에 처한 몇몇 기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승인된 상태이며 일부 기관은 토지 매입을 완료했다. 지표로 보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30~50% 공사 진척 … 높은 조성원가는 걸림돌
무엇보다 당초 계획대로 인구가 도시로 유입될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단독이주 의사를 보인 이전 대상 공공기관 근무자의 비율이 40% 이상이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 현실화되면 이전 규모도 축소될 수 있다. 고급인력의 가족 단위 인구 유입에 차질이 생기면 혁신도시 건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높은 조성원가로 인한 기업 유치의 어려움도 예상된다. 현재 계획대로 혁신도시가 건설될 경우 조성원가가 평당 100만원에서 200만원 수준이다. 대도시 인근지역에 건설되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높다. 혁신도시 내 산업시설 부지를 조성원가로 분양하더라도 인근지역의 산업단지 분양가와 비교하면 2~5배 높다. 혁신도시 내 지원시설용지를 늘리기 위한 계획변경을 하더라도 현 상태로는 산업시설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혁신도시 건설로 주변 기존도시가 쇠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혁신도시가 지역성장의 거점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근 도시의 공동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기 완결적으로 계획된 혁신도시가 주변지역과 연계발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보완되지 않고 현 상태대로 건설될 경우 초기에 인근지역의 인구와 기능을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공기업 선진화 등으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지연될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 점은 최근 정부가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이전 계획을 발 빠르게 승인하고 일부 기관이 부지 매입과 청사 설계까지 착수함으로써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LH공사 등 선진화가 진행된 일부 기업의 이전은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큰 그림 아래 출발했던 혁신도시 건설이 새로운 국토정책 속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몇 가지 국가 차원의 배려와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국토공간상 성장거점을 담당할 수 있는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 현 정부가 국토정책의 핵심전략으로 추진하는 ‘5+2 광역경제권’ 속에서 혁신도시의 기능과 역할을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혁신도시 하나하나가 권역별 신성장거점이 돼 지역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실행계획(Action Plan)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혁신도시별로 이전할 공공기관과 연계한 산업 및 연구개발(R·D)·고등교육 기능 등을 유치해, 도시 내에서 기술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지속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능의 입지를 통한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은 물론 주변의 기존 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과의 네트워크 체계 강화도 꾀해야 한다.
지역발전 선도하는 ‘액션 플랜’ 제시해야
셋째, 주변지역과의 상생발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시 내에 산업용지 등 자족시설용지를 무리하게 확보하려 하기보다는, 인근 기존도시·산업단지·대학 등과의 연계성 강화를 통한 자족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주변 도시와 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혁신도시 개발을 통한 이익과 지방세 증가액을 주변도시 구도심 재생에 활용하며, 주변에 개별적으로 추진되는 개발사업도 혁신도시와의 상생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넷째, 지역 여건에 맞춰 차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현재와 같이 10개 혁신도시가 전체 계획 부지를 하나의 사업단위로 해 동일한 목표연도에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시별 특성이나 수요 확보 등을 감안해 목표연도와 추진방식 등을 해당 자치단체와 사업시행사가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 이전 공공기관과 지원시설 유치를 통한 성장 핵심기능 확보를 전제로, 여건에 따라 단계별 개발을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섯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처방이 요구된다. 산업시설 등 지원시설의 원활한 유치를 위해서는 관련 기반시설의 국고 지원을 늘리고 입주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같은 지원책을 확대해야 한다. 중소기업 등의 유치를 위한 장기 임대산업단지 조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교육환경 등 정주 여건을 제고하는 획기적 조처도 있어야 한다. 특히 우수한 초중등 교육시설 유치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하고 양질의 유아시설, 여가·문화시설·의료·복지시설 등을 갖춘 ‘살고 싶은 도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업시행자, 이전기관 등의 역할과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차질 없는 추진을 통해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도입시설 유치와 특화발전을 위한 전략을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전기관과 사업시행자가 가족동반 이주기반을 조성하고 주변지역과의 상생발전을 위한 연계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기관의 차질 없는 이전이 혁신도시의 성공적 건설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전 공공기관이 관련 산업 유치의 견인차가 되고 이들이 지역특화산업을 비롯해 고등교육·R·D 기능과 함께 공간적으로 집적해 혁신환경을 창출해야 한다. 여기에 양질의 교육·여가·복지시설을 갖춘 주거환경이 ‘패키지 시티’로 조성될 때 혁신도시는 정책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혁신도시 건설이 세종시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혁신도시의 차질 없는 건설은 중앙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해당 자치단체의 능동적 자세와 민간 부문 참여유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업시행자, 이전기관 등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과 관련 학회 등 전문가 집단의 적극적 참여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