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7개국 공동이행협정 서명식이 11월21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렸다.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각국 대표가 서명식에 앞서 한자리에 모였다.
‘꿈의 에너지’ ‘인공태양’이라고도 불리는 수소 핵융합을 실현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올랐다. 11월21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는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과 유럽연합(EU)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연구에 관한 협정을 맺는 조인식이 열렸다.
이 국제 공동연구에는 한국과 ITER 건설 부지를 유치한 EU 외에도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 7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2016년까지 프랑스 카다라슈 지방에 들어서는 ITER는 향후 10년 동안 운영되면서 핵융합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공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핵융합이 미래의 에너지원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ITER는 핵융합으로 실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장치다. 바닷물 1ℓ에는 수소 동위원소인 중수소 0.03g과 삼중수소가 소량 들어 있다. 이들 수소 입자를
1억℃(태양 내부 온도는 1500만℃) 가까운 초고온으로 가열하면 질량을 잃으면서 대량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것이 바로 핵융합 현상이다. 여기서 생산된 열로 물을 데워 전기를 생산하면 핵융합 발전이 된다.
한국 9% 지분 따라 8380억원 출자
프랑스 남부 액상프로방스 근교 카다라슈에 있는 핵에너지 센터(CEN)의 현재 시설 모습(앞쪽)과 컴퓨터로 그린 미래의 완공된 국제핵융합발전소의 모습(뒤쪽).
실제로 지난해 미국과 일본 연구진은 핵융합 반응을 통해 에너지 생산에 쓰인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산출한 에너지와 투입한 에너지의 비인 ‘에너지증폭률=1’이 넘어서면 일단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게다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방사성 폐기물이나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같은 ‘쓰레기’를 배출하지도 않는다.
미국과 일본, EU 등 선진국들이 핵융합에 주목하는 것도 이처럼 미래 에너지 패권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총 투자비는 50억8000만 유로(약 6조980억원).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9.09%의 지분(약 8380억원)을 현금과 현물로 나눠 출자하게 된다.
하지만 ITER 사업이 안착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건설부지를 놓고 프랑스를 비롯한 EU와 일본이 신경전을 벌인 것.
일본은 아오모리(靑森) 현 롯카쇼(六ケ所) 촌에, EU는 현재 건설 예정지인 프랑스 카다라슈에 유치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EU를 중심으로 참가국들이 둘로 나뉘어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기까지 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일본을, 중국과 러시아는 프랑스를 각각 지지했다. 결국 지난해 일본 정부가 ITER의 유치를 포기하고 EU에 양보한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EU와 일본이 부지 유치에 혈안이 됐던 이유는 잠재력을 갖춘 핵융합로를 유치한다는 점 외에도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일단 유치만 되면 지역경제 기여도가 110억 달러에 이르고 일자리도 10만 개나 창출될 것으로 예상됐던 것. 또 자국의 연구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최고의 연구환경을 조성해준다는 점에서도 건설부지 유치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물론 ITER 유치를 포기한 일본도 실리를 챙겼다. 부지 유치를 포기하는 대신 공사 수주와 기술인력 참가 등에서 반대급부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ITER 운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 자리 역시 일본 측에 돌아갔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EU에 선심을 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부지 확정을 위해 2~3년을 끌면서 건설 지연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과 EU가 ITER 건설비용의 유치국 분담비율을 48%에서 58%로 늘리자고 제안하면서 결과적으로 EU는 비용 부담이 크게 늘었지만, 그만큼의 권한도 더 갖게 됐다. 이는 한국 등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가들의 권한이 줄어드는 결과를 불러왔다.
일부에서는 유치 장소 결정이 지연되면서 ITER 건설과 가동에 쓰이는 비용이 2배 가까이 치솟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EU가 ITER 부지 유치에 성공하면서 한국이 가까운 일본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한국도 나름의 실리를 챙길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핵융합 연구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지만 말이다.
초전도체 제작 기술 한국이 가장 앞서
현재 한국은 2008년 6월 완공 목표인 ‘K스타’라는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연구로를 건설 중이다. K스타는 ITER처럼 ‘토카막’이라는 초전도 자석을 사용한다. 이 자석은 수소핵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다른 수소핵과 융합할 수 있도록 자기장을 만드는 구실을 한다.
전자석을 사용해 0℃ 이상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기술도 나와 있지만 토카막 방식보다 뒤처진다는 평이다.
한국이 현재 제일 앞서 있는 분야도 바로 이 초전도체 제작 기술이다. 중국도 올해 초 같은 방식의 토카막 융합로를 만들었지만 규모 면에서 K스타에 뒤진다.
핵융합연구센터 신재인 소장은 “K스타는 ITER의 정확히 20분의 1 축소판”이라면서 “인류가 핵융합 에너지로 전환해가는 길목에서 K스타가 중요한 징검다리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K스타의 잠재력을 인정해 2000년부터 18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신 소장은 “에너지 대체 효과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한국이 ITER에 공급하는 주요 부품과 기술은 20조원 정도의 경제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현재 K스타의 핵심부품인 초전도자석, 진공용기, 저온용기 등은 삼성종합기술원·현대중공업·포스콘 등 10개 기관이 나누어 제작 시험 중이다.
ITER는 2025~26년쯤이면 어느 정도 기술적 검증을 마치게 된다. 과학자들은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30년쯤에는 초보적인 수준이긴 해도 핵융합 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핵융합이 미래의 만능 에너지원이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낮을 것으로 보인다.
핵융합연구센터 박주식 K스타사업단장은 “핵융합이 실현된다고 해도 융합로에 쓰이는 재료나 생산기술의 한계 때문에 제약이 따른다”며 “각국 전문가들은 2100년경 핵융합이 에너지 소비량의 30~40%를 담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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