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李, 총선 4개월 전 결단 내릴 것”
3월 초 이 대표의 입장 발표는 없었다. 친이재명(친명)계 의원의 인터뷰만 나왔을 뿐이다. 한 친명계 중진의원은 3월 8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질서 있는 퇴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이 소프트랜딩을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재판이 많아지는 연말쯤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연말 사퇴론’은 친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의원이 이미 2월 24일 방송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차기 총선 4개월 전 이 대표가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대표가 설 의원의 사퇴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동의해서였을까. 정성호 의원의 총선 4개월 전 사퇴 예상은 이뤄질까. 일부 친명계 의원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3월 13일 한 방송에 출연해 김 의원의 앞선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부인했다. 이 대표와 친명계는 좀처럼 진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친명계 정청래 의원의 발언에서 속내를 일부 읽을 수 있다. 정 의원은 3월 14일 “이 대표 물러나라, 뭐 하라 이런 움직임이 살짝 있었지만 이게 별무소용(別無所用)으로 돼버렸다”고 말했다.
별무소용, 즉 이 대표가 사퇴하더라도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친명계가 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임기를 분리하는 당헌·당규 개정을 마쳐 이 대표가 사퇴하더라도 지도부가 새롭게 꾸려질 가능성은 적다. 당대표만 새롭게 선출할 텐데, 이 경우도 당대표 임기가 8개월 이상 남아야 전당대회가 의무적으로 열린다. 이 대표 임기는 2024년 8월까지다. 연말에 사퇴하면 잔여 임기가 8개월 미만이 돼 전당대회 개최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성호 의원이 12월 사퇴를 들고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이 경우 중앙위원회가 당대표를 선출한다.
민주당 중앙위원회가 총선 공천을 앞두고 비명계를 당대표로 선출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지난해 “기소 시 당직을 정지토록 하는 당헌 제80조를 삭제하자”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중앙위원회는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 대표가 동의했다는 ‘질서 있는 퇴진론’을 사실상 ‘지연 전술’로 봐야 하는 이유다. 연말까지 끌다 보면 민주당 정당 지지율이 상승해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을 압도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때는 사퇴론이 수그러들 것이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연말 사퇴론에 우려를 표시하고 나선 것은 친명계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3월 1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연말은 너무 멀다”며 “차기 총선이 내년 4월인 만큼 침몰 직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민주당 정당 지지율이 폭락할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친명계와 인식 차이가 극명한 부분이다.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
친명계는 지연 전술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무산 전술’을 펼칠 것으로 봐야 한다. 이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이간계(離間計)다. 박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복당 직후 “이 대표 중심의 강한 야당, 통합·화합하는 야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보은성 발언을 했다. 그는 3월 1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이 대표가 가장 듣고 싶었을 발언을 끌어내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것이다. 끝맺음이 분명치 않은 전언이다. 박 전 원장의 유도성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이 애매하게 호응하는 듯 답했을 수도 있다.결과는 박 전 원장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비명계 내에서도 문 전 대통령 발언의 진위와 진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상민 의원은 발언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전직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의원은 “전하시는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고 안 하셨을 수도 있다”며 발언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비명계도 투 트랙 전술로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사퇴론으로 압박하면서 동시에 인적쇄신을 명분으로 사무총장 같은 핵심 당직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비명계의 단일대오 형성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 대표 사퇴론은 힘을 받기 어렵다. 그야말로 별무소용이 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