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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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보는 한류는 닮고 싶은 첨단 선진문화”

20년 전 ‘욘사마’ 열풍 때 ‘노스탤지어 대상’에서 ‘앞선 젊은 문화 발신지’로 인식 전환

  • 도쿄·시즈오카=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3-03-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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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는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좋지 않으면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 청년들의 내면적 혼란도 크다”고 말했다. [시즈오카=허문명 기자]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는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좋지 않으면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 청년들의 내면적 혼란도 크다”고 말했다. [시즈오카=허문명 기자]

    일본 최대 도시가스업체 도쿄가스가 한국 아이돌그룹 ‘원어스’에 빠진 엄마를 주제로 TV 광고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한국 소비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본 대기업이 이런 광고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한류가 이 정도였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잖을 것 같다. 최근 일본 출장을 다녀온 기자는 4년 만에 일본 곳곳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접한 일본인들의 한류 호감도는 서울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도쿄가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휴대전화 유심칩을 바꾸려고 들어간 도쿄 전자매장에서는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본 한 일본 청년이 “독학으로 배웠다”며 서툴지만 한국말로 응대하려 애썼고, 히로시마역 근처 식당에서는 서울은 물론, 한국에 전혀 가본 적 없다는 식당 주인이 “넷플릭스에서 한국 음식 채널을 즐겨 보고 있다”고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코로나19 기간 중에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 영화 등 한국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 이런 큰 변화를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된다.

    교토 중심지에 있는 교세라미술관에서 열린 일본 신진작가 전시회에서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일본 히라가나 글자 디자인과 연관 지어 한국말을 배우기 쉽게 교재로 만든 20대 여대생을 만났다. 한류에 대한 관심은 젊은이 등 세대를 가리지 않아 규슈 구마모토 시골에서는 손녀딸이 BTS(방탄소년단) 팬이라며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편히 앉으세요”라는 한국말을 발음까지 정확히 구사하는 80대 할머니도 만났다.

    일본 한류의 성지로 불리는 신오쿠보도 직접 가보니 확실히 진화했다. 중심가는 물론, 폭 2~3m가량의 골목 곳곳에도 치킨, 호떡, 핫도그, 떡볶이 등 한국의 대표 길거리 음식을 사 먹으려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한국 화장품을 파는 대형마트도 젊은 일본인 여성들로 북적였다. 기자와 함께 이곳을 돌아본 50대 중반 일본 언론사 기자는 “주로 러브호텔 거리로 알려진 신오쿠보에 형성된 코리아타운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싸구려 한국 상품들을 파는 가게가 많았고 음식도 10대 청소년이 좋아할 만한 치즈떡볶이 같은 것이 주를 이뤘는데, 지금은 한국 홍대 앞처럼 젊은이의 문화 중심지로 거듭나 나도 놀랐다”고 했다.

    방일 윤 대통령 모습에 신뢰 보내고 환영

    주지하다시피 일본에서 한류가 본격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2003년 4월 4일 NHK 위성방송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영되면서부터다. 20년 전 한류와 지금의 한류는 어떻게 다를까.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로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인 요즘, 기자는 일본에 머물면서 한 한류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주인공은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다.



    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다. 도쿄외국어대에서 조선어학과(한국어학과를 일본에서는 이렇게 부른다)를 졸업한 후 서강대와 서울대에서 현대 한국 사회를 공부했으며, 1995~1997년 주한 일본대사관 정치부 전문 조사관으로도 일해 양국 정계와 관계, 학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일관계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고(故) 최서면 선생과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권오기 전 부총리를 생전에 장시간 인터뷰해 ‘오럴 히스토리’ 형태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고하리 교수는 현재 시즈오카현립대뿐 아니라 게이오대 등에서 한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를 시즈오카 현지에서 직접 만나 20년 한류의 변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2월 말 대면 인터뷰와 윤 대통령 방일 후 전화 인터뷰로 이어졌다.

    그는 우선 ‘코로나 냉각기’가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2019년 여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 쪽에서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까 한일 감정이 악화됐고, 악화된 직후에 한국 국내에서 노(no) 재팬 바람이 불었다. 그로 인해 일본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이 줄었고 곧바로 2020년, 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냉각기가 시작됐다. 이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본다. 한국이 싫어서 안 가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못 가게 되면서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우선 이번 윤 대통령 방일로 일본 내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그렇다. 많은 일본인이 기자회견 때 모든 기자와 일일이 악수하는 모습이나 오무라이스를 먹는 거나 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환영하고 신뢰하는 분위기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방일로 한일관계가 좀 바뀔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게이오대 강연을 들은 학생들과 이야기해봤는데 학생 대부분이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상대방을 아는 게 필요하다’ ‘자주 만나는 게 필요하다’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당연한 이야기이긴 해도 한국 최고지도자 입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는 임팩트가 컸다.

    그렇다고 악화됐던 한일관계가 하루아침에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도쿄에 왔을 때 일본 내 분위기가 매우 좋았고 한국 내 분위기도 매우 좋았던 것에 비하면 윤 대통령 방일 후 한국에서 전해지는 뉴스들이 별로 좋지 않아 걱정이다.

    한국 내 반대 여론이 크기 때문에 다시 정권이 바뀌면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또 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을까 의구심도 있다. 한일 간 정치적 이슈에 대해 한국 사회가 완전히 갈라진 모습은 이런 의구심을 더한다. 어떤 문제라도 야당은 여당의 입장을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의 말과 행보가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는 너무도 달라 대통령이 바뀌면 이렇게까지 분위기도 바뀌나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일본 청년 중에는 정치적 관계가 좋지 않아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日 젊은층 “한국인과 같은 얼굴 되고 싶어”

    신한류의 성지로 불리는 도쿄 신오쿠부 거리는 서울 명동이나 홍대 앞 거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한국 음식점과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도쿄=허문명 기자]

    신한류의 성지로 불리는 도쿄 신오쿠부 거리는 서울 명동이나 홍대 앞 거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한국 음식점과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도쿄=허문명 기자]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 청년들의 내면을 알고 싶다.

    “한국에 대한 인식을 일본인 사이에서 세대별로 차이가 크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10월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전체 호감도는 45.9%인데 18세 이상~29세 이하 젊은이가 64.7%로 압도적이다. 여기에 30대 54.7%, 40대 41.9%, 50대 46.5%, 60대 54.2%, 70대 이상 39.1%다. 일본 젊은이 중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많고 특히 여성이 압도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한국을 찾는 일본 여성 비율만 해도 2009년을 기점으로 남성을 앞섰다. 2019년에는 여성 211만 명, 남성 112만 명이 한국을 찾아 여성이 남성의 거의 2배다.”

    20년 전 한류와 지금의 한류에 다른 면이 있다면?

    “우선은 과거 욘사마로 대표되는 일본 아줌마 세대는 한국을 ‘그리움의 대상’, 즉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봤다. 일본인이 가졌던 마음의 감정이나 정서를 대신 느끼면서 대리만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류를 향유하는 세대는 한국 문화를 선진문화로 보고 있다는 게 과거와 다른 점이다.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일본보다 한걸음 앞에 있는 컨템퍼러리와 퓨처 문화로서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가을 학기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했는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하고 비슷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많은 20대가 ‘첨단 유행의 발신지’라고 응답해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 한국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젊은 문화의 발신지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젊은이들이 즐기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한국인과 같은 얼굴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 무척 많다.

    지난해 6월 일본 최대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압도적 다수인 75%가 한국 패션을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그다음이 미국으로 9.7%였다. 20대도 한국 패션을 참고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69%였다.

    한국 화장품 수입도 2017년부터 급증해 지금은 프랑스와 거의 비슷하다. 심지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일본 MZ세대 사이에서 회자된 유행어로 ‘도한(渡韓)놀이’라는 게 있었다. 한국에 너무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으니, 편의점에서 한국 과자나 한국 화장품 등 한국 물건을 사서 호텔에 숙박해 케이팝 노래를 들으며 마치 한국에 온 것처럼 즐기는 놀이다. 진짜 이런 젊은이들이 있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실제 있다고 해 놀란 적이 있다. 이런 한국에 대한 관심은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2022년 5월 NHK 어학교재 매출 순위를 보면 4위, 8위, 12위가 한글 공부와 관련된 교재였다.”

    고하리 교수는 “무엇보다 한류 소비가 능동적·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반갑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소설을 읽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엔 어느 정도 인기 장르가 됐다. 책은 노래나 영화보다 더 능동적인 소비다. 한국 페미니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의 인기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으로서 고민을 한국에서 찾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만큼 한국을 보는 시선이 깊어졌다고 할까.”

    (실제로 기자가 일본에 홈스테이를 하면서 만났던 주인 할머니도 한국 소설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었다.)

    정권 따라 변화 너무 커 혼란

    한일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문화 인적 교류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직전은 노(no) 재팬이었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노(know) 재팬, 즉 일본을 알고 싶어 하는 청년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부산을 다녀왔는데 오사카까지 가는 비행기 내 승객의 80%가 한국인이라서 놀랐다. 실제로 통계를 찾아보니 올해 2월 일본에 온 외국인이 147만 명이고 이 중 57만 명(39%)이 한국인이었다.

    이렇게 한국을 좋아해 여행과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한편으로, 아직까지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많다. 특히 한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분열돼 있어 한일관계, 특히 북한 문제도 어느 정권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너무 다른데 이런 면은 일본인으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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