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은 3월 21일 연합뉴스TV가 ‘부동산발(發) 금융위기, 연착륙 해법은’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경제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는 미분양주택이 10만 채가 될 때까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주택업계는 현 추세라면 연내 미분양주택이 12만 채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며 정부의 미분양주택 매입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주택은 10년 2개월 만에 최대인 7만5359채로 집계됐다. 이미 10만 채 턱밑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게다가 원 장관은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말 “20년 장기 미분양주택의 평균인 6만2000채를 위험선으로 본다”며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속도를 높이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미분양주택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 없이 말을 바꿨다는 오해마저 살 수 있는데도 원 장관이 3개월 만에 입장을 바꾼 까닭은 무엇일까. 그동안 원 장관이 쏟아낸 각종 발언과 시장 상황 등을 통해 속내를 짚어본다.
① “분양가 먼저 낮추라”는 압박용 카드
우선 원 장관이 입장을 바꾼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민 혈세로 미분양을 매입할 경우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여론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미분양주택 매입에 나서기 위해선 건설업계가 원가절감을 위한 자구 노력과 고분양가 논란을 잠재울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명분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실제로 원 장관은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특히 1월 30일 국토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자구 노력도 안 하면서 가격 급등기에 무분별하게 금융을 끌어다 놓은 것을 정부더러 다 떠안으라는 건 시장경제 원리상 있을 수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2월 1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싸서 소비자들이 사지 않는 주택을 정부가 세금으로, 건설사가 원하는 가격으로 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미분양주택 문제가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국민적 합의가 있는 경우 미분양 매입을 고민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한 경우라도 분양가 인하 등 건설사의 자구 노력이 먼저”라고 거듭 강조했다.
2월 28일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는 미분양 아파트를 사달라는 민간업체의 요구에 대해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마찰 때문에 생긴 소비자들의 소극성을 어떻게 세금으로 부양하느냐”면서 “이건 반시장적이고 반양심적인 얘기”라고 다소 거칠게 쏘아붙이기도 했다.
② “현재 미분양주택 위험 수준 아니다”
현재 미분양주택 상황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현재 발생하는 미분양주택이 부동산시장 침체를 가중하고, 더 나아가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원 장관은 3월 21일 경제심포지엄에서 “(최근 미분양이 급증한) 대구의 미분양 60%는 대기업들이 갖고 있어 회사의 금융위기로 전이될 물량은 극소수”라면서 “금융위기 때 대기업 우량사업까지 미분양이 나 시장 전체가 마비되는 ‘미분양발 금융위기’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전체 경제위기까지 발생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2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지금 서울 미분양 물량은 얼마 안 되고 지방도 과거 쌓여 있던 미분양 물량이 많다”며 “악성으로 보기 어렵고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많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1월 말 현재 준공 후 미분양은 7546채로 적은 편이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준공 후 미분양은 2009년 5만87채를 정점으로 계속 줄었지만 2021년 2월 (1만779채)까지 꾸준히 1만 채 이상이었다. 그러다 2021년 3월(9965채) 1만 채 밑으로 떨어졌고, 그해 9월(7963채)부터 최근까지 7000채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③ 시장 연착륙에 대한 자신감
정부의 부동산시장 연착륙 대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점도 입장 변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지난해 하반기 이후 꾸준히 떨어졌던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올해 1월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국부동산원이 3월 15일 발표한 보고서(‘2023년 1월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전월 대비 0.81% 상승했다. 지난해 6월(0.23%) 이후 7개월 만이다.한국부동산원은 이에 대해 “정부의 ‘1·3 부동산대책’에 따라 (인기 주거 지역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로 매수심리가 회복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즉 올해 1월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역이 규제지역에서 풀리고 각종 규제 완화가 시행되자 서울 인기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가 늘어나면서 지수가 상승세로 반전했다는 것이다.
거래량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월 21일 기준으로 2월 서울 아파트 매매 신고 건수는 모두 2348건이다. 2021년 10월(2198건) 이후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월 거래량이 2000건을 회복했다. 2월 거래 신고 기간이 이달 말까지 남은 점을 고려하면 2월 거래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월(1417건)에 비해 65.7%, 1년 전인 지난해 2월(820건)보다는 186.3% 증가한 것이다.
매수심리도 좋아지고 있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02.1로 전월(91.5)보다 10.6p 상승했다. 지난해 7월(95.2) 지수가 100 미만으로 내려앉은 이후 7개월 만에 100선을 회복했다. 이 지수는 0부터 200까지 값으로 표현되는데, 95 미만이면 가격 하강, 95~114 이하는 보합, 115 이상은 상승을 뜻한다.
주택사업 경기전망지수도 호전되는 분위기다. 주택산업연구원이 3월 22일 발표한 ‘3월 전국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73.1로 지난달(67.6)보다 5.5p 늘었다. 특히 서울은 88.2로 지난달(64.0)보다 24.2p 증가했다. 이 지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주택 경기 전망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주택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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