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서울 한 대형서점에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가 판매되고 있다. [뉴스1]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에 등장하는 한 대목이다. 책 부제는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하기 전까지 그를 수사했던 이 전 부장의 회고가 담겼다. 이른 아침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소식을 듣고 “눈앞에 있던 거대한 성벽이 한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느낌”이었다던 그는 왜 14년 만에 펜을 들었을까. 책은 “2023년 2월 21일로 노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도 모두 완성됐다. 이제는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SK그룹 수사에서 대선자금 단서 나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있기 전 검찰은 여러 대형 수사를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진행했다. 시작은 2003년 시작된 SK그룹 분식회계 의혹 수사다. 당시는 이 전 부장이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을 지내던 시기다(표 참조). 이 전 부장은 형사9부에 대해 “특수부보다 활발한 인지수사를 벌였다”고 회고했다.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수사 역시 이 전 부장이 YTN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의혹 보도를 보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본격화한 것이었다.SK그룹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된 배경에는 정치인들의 압력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은 “검찰이 새 정권에 대항하려고 SK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이런 검찰은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2003년 3월 8일 박영수 당시 서울지검 2차장에게 정치권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치권이 이처럼 반발하는 데는 켕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책에서는 이 전 부장이 최태원 회장과 거래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이 전 부장이 “최 회장에 대한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을 테니, SK그룹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 정치자금 내역을 밝혀줄 수 있겠나”라고 묻자 최 회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다만 최 회장은 “사후에 보고만 받았다”며 “세부 내용은 김창근 구조조정추진본부장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김 본부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여야 정치권에 준 정치자금은 물론, 16대 대선 과정에서 거대 양당에 전달한 선거자금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100억 원, 민주당에 25억 원을 줬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측근에게 12억 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쟁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 누구인가로 좁혀졌다. 당시 김 본부장은 12억 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받아간 사람에 대해 진술을 흐렸다. 이 전 부장은 김 본부장이 언급한 인상 착의와 당시 노 대통령의 부산 선거캠프 구성 등을 고려해 용의자를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인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으로 좁혔다. 최 전 비서관의 사진을 출력해 김 본부장에게 보여주자 체념한 듯 관련 사실을 적고 지장을 찍었다고 한다.
“조심스러워 적지 않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포괄적 뇌물 수수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동아DB]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부장의 인연은 박연차 게이트로 이어진다. 이 전 부장은 2009년 1월 13일 대검 중수부장으로 부임해 박연차 당시 태광실업 회장의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이어갔다. 같은 해 2월 23일 사안이 급속도로 진전됐다. 과거 상관이던 박영수 변호사가 박 회장의 변호를 맡았다. 박 변호사는 박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치인 등의 명단이 담긴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를 검찰에 제출하며 “조심스러워서 명단에는 적지 않았는데 박 회장이 2007년 6월쯤 노 대통령에게 아들 노건호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으로 100만 달러를 줬다고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전 부장에 따르면 당시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측에 △청와대 경비 명목으로 3억 원 △회갑 선물로 피아제 남녀 시계 1세트(2억550만 원 상당)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00만 달러 △사업자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 △차용금 명목으로 15억 원 등 다섯 가지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동아일보’는 2009년 3월 30일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틀 전인 2008년 2월 말 박 회장의 홍콩 APC 계좌에서 노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의 계좌로 500만 달러가 입금돼 친인척 투자용으로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노건호의 계좌가 아니라 조카사위 연철호에게 건네졌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 전 부장은 이를 두고 “보도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고 회고했다. 검찰 내부에서 누가 수사 내용을 제보했는지 찾으라는 지시가 나왔지만 그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관용 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해 검찰조사를 받는다.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노 전 대통령이 이날 이 전 부장을 만나 했다는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12일 개인 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에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참 부끄럽고 구차하다”면서도 “몰랐던 일은 몰랐다고 말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은 박 회장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됐고, 검찰 증거와도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9년 3월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노 전 대통령이 전직 검찰 총장을 만나 검찰 수사에 대해 자문하면서 ‘500만 달러는 어떻게든 설명을 해보겠는데, 100만 달러는 창피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검찰 조사 당일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이 불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내용도 있다. 당시 검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 요청으로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이 잠시 만났는데, 해당 자리에서 박 회장이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며 원망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나도 감옥 가게 생겼다. 감옥 가면 통방하자”고 답했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회고록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은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 상황에서도 그(박연차)를 위로했다”고 회고했는데, 이는 당시 분위기와 달랐다는 것이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노무현재단) 측은 책 출간 계획이 알려지자 즉각 비판 입장을 내놨다. “공개된 법정에서 변호인의 반대신문 등을 통해 진실성이 검증된 문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야 시계 존재를 알고 폐기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100만 달러를 빌린 것은 사실이나 노 전 대통령이 몰랐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3월 20일 유튜브 방송에서 “형식은 회고록이지만 내용은 정치 팸플릿”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형사고소를 하게 되면 윤석열·한동훈 검찰에 사건을 줘야 하기 때문에 고소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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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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