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경남 의령 출생<br>。1969년 중앙일보 기자<br>。1973년 삼성물산 봉제수출과 입사<br>
빈폴 신화는 두고두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 신화의 주역 원대연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 학장(당시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이 최근 ‘가치를 다자인하라’라는 책을 펴내고 그 전모를 상세히 밝혔다.
원 학장은 “빈폴이 폴로를 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0만원짜리 빈폴 셔츠를 1만원짜리 셔츠와 비교할 경우, 빈폴의 품질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4만~5만원대의 가격차가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브랜드 가치라는 것이다. 빈폴을 입는다는 사실 때문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만한 차액은 더 지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제일모직 사장 시절,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실적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빈폴이나 제일모직의 이미지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았다. 부도 위기에 몰린 대리점 주인이 궁여지책으로 제품을 덤핑하는 관례도 완전히 차단했다.
원 학장은 그룹으로부터 실적 위주의 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단기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확신했다. 심지어 그는 제일모직 안에서 흑자를 내는 중저가 브랜드를 기업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과감하게 접는 용단을 내리기도 했다.
“적자 브랜드도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사정하던 시절에 흑자 브랜드를 접겠다고 하니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죠.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는 일은 그만큼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흑자 브랜드도 기업가치와 안 맞으면 퇴출
그리고 10년. 빈폴은 폴로를 제치고 국내 캐주얼 부문 1위 브랜드로 우뚝 섰다. 그 사이 빈폴은 ‘빌 게이츠 룩’으로, 또 ‘히딩크 패션’으로 그 가치가 계속 높아졌다.
그는 ‘패션 전문 CEO’라고 불릴 정도로 이 분야에서만 30년간 몸담아왔다. 그의 명언 중에는 ‘패션(Fashion)은 패션(Passion)이다’라는 말이 있다. 패션에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패션업계에 종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사장 시절, 직원 채용 지침을 내릴 때 “출신 학교·전공을 불문하고 패션에 얼마나 열정이 있는지만 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현업에서 물러나 2002년부터 SADI 학장을 맡고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창출하고 디자인할 수 있도록 그간 쌓은 노하우를 전달하고 열정을 북돋워주는 일이 그의 역할이다. 이곳에서 한국을 대표할 디자인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 그의 목표다. SADI는 현재 300여 명의 학생에 70여 명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을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SADI는 “21세기 경쟁력의 핵심은 디자인”이라고 강조해온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의지에 따라 1995년 설립됐다.
그는 한국패션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그동안 사양길을 걸었던 한국 섬유산업에 창조의 빛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