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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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 행세 3년이 한계

여론 외면한 채 명분에만 집착하다 몰락 자초 … 정치개혁도 변죽만 울린 셈

  • 양정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입력2006-11-15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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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불장군 행세 3년이 한계

    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100년 정당’을 기치로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이하 열린당)이 창당 3년 만에 폐업 위기에 몰렸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당은 그간 꾸준히 국민의 외면을 ‘자초’해왔다. 국민은 17대 총선에서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 민생경제 회복을 내세운 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우리당은 실체도 불분명한 개혁-실용 논쟁으로 날을 세웠고 튀는 언행으로 국민을 화나게 만들었다. 반면 실질적인 민생해결 능력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주관적 이념의 과잉

    우리당의 대주주인 정동영 전 의장은 11월8일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과반의석을 줬으면 그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는 데 우선순위를 맞췄어야 하는데, 마치 4대 개혁입법이 당이 지향하는 전부인 것처럼 모자가 씌워져 안타깝다”고 했다. 또 “그간 실용, 개혁 같은 쓸데없는 공리공담을 해왔던 것이 통탄스럽다”고도 말했다.

    정치적 의도를 배제한다면, 그의 때늦은 후회는 최소한 우리당이 국민에게 외면받은 이유 중 하나는 정확히 짚은 것이다.

    “많은 국민이 경기침체와 치솟는 부동산 값으로 힘들어할 때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법 처리, 과거사 진상규명법안 제정에 목을 맸고, 결국 이념적 기반이 다른 여야 간의 물리적 충돌 때문에 수많은 민생법안이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문희상 전 의장)는 점에서다.



    사실 우리당이 앞세운 4대 법안의 처리는 당시 천정배 원내대표의 말처럼 “우리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지에 대해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에 참여했던 한 386 의원조차 “국정을 책임진 집권 여당으로서 이념논쟁의 휘발성이 큰 현안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주관적 이념의 과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5년 내내 지속된 ‘개혁 vs 실용’ 논쟁이 그것이다. 한쪽에선 실용진영을 수구·보수로 낙인 찍고, 반대편에선 개혁진영을 철부지로 폄훼했다. ‘난닝구’니 ‘빽바지’니 하는 낯뜨거운 용어까지 써가면서 내부 동력을 갉아먹은 결과는

    4월 재보선에서 국민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재보선 참패의 원인을 두고 동일한 논쟁이 계속됐고, 이 논쟁은 10월 재보선에서 또다시 0패의 수모를 당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변죽만 울린 정치개혁

    우리당의 위기에 대해 4선의 장영달 의원은 최근 “‘상향식 공천제=정당개혁=정치개혁’이라는 등식이 과도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당이 형식 논리에 매몰돼 창당 정신인 정치개혁의 실체가 왜곡됐다는 얘기다. 우리당 창당 이후 정치권에선 상향식 민주주의가 절대적 선(善)이었다. 또한 당원들이 당내 의사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명분’이 있었다. 기간당원제가 도입됐고, 공직 후보의 상당수가 이들의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됐다. “따지고 보면 중앙당과 원내를 분리해 이원화한 것에도 당이 몇몇 의원들의 독단(?)에 따라 운영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한 재선의원)

    한나라당도 책임당원제를 도입하고 원내대표의 위상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이는 정치권의 대세였다. 하지만 이 정치실험은 출발부터 모순덩어리였다. 이기우 의원은 이를 “유럽식 기간당원제 모델과 미국식 원내정당화 모델의 기계적인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토양과 정치체제가 전혀 다른데도 명분만 앞세워 두 가지를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얘기다.

    당연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당직·공직 후보가 되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와 무관하게 기간당원 확보가 일차적인 관건이었고, 이에 따라 종이당원·대납당원 같은 폐해가 재연됐다. 전당대회를 전후로 수십만 명의 당원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최근 법안까지 제출한 오픈프라이머리의 제도화는 사실상 기간당원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잡탕 정당의 태생적 한계

    정당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조직한 결사체’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우리당은 특히 올해 들어 정당의 기본적인 책무조차 망각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정책적 현안에 대해 내부 이견을 조정하고, 필요할 경우 당론을 확정해 입법 활동에 나서거나 행정부를 지원 또는 견제해야 하는데 우리당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우리당은 올해 초 ‘사학법 재개정 불가’를 당론으로 결정한 후 민감한 각종 현안에 대해 당론을 확정하지 못했다. 정기국회 직후인 지난 2일 정계개편 문제를 논의하는 의원총회엔 120여 명이 참석해 당의 진로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지만, 이튿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 여부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민감한 외교안보 및 경제현안을 다룬 정책 의원총회에는 40여 명만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이인영 의원은 “이전엔 이견이 너무 커서 당론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통했지만, 이번엔 의원들이 제 살길 찾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을 거쳐온 한 당직자는 “이전에도 당내에 여러 의견그룹이 있었지만 지금 같진 않았다”며 “우리당은 태생적으로 이견이 좁혀지기 어려울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재선의원은 “당청 갈등, 당 의장과 원내대표 사이의 갈등, 계파 간 갈등은 시스템의 문제와 함께 여권 내부에서조차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 뒤 “우리당은 태생적으로 잡탕 정당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명분 없는 ‘헤쳐 모여’는 또 다른 패착

    지금 분위기로 보면 우리당이 조만간 문을 닫는 건 불가피할 듯하다. ‘헤쳐 모여식 신당 창당’을 위시한 정계개편 논의도 활발하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호남권의 한 의원은 “내년 대선과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살길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대의명분과 정치적 노선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의원들이 이합집산할 경우 또 다른 패착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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