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 노무현 후보인 듯하다. 처음에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예상을 뒤엎는 선전과 경선 결과에 대한 예상이 주된 이야깃거리였지만, 이제는 이념 논쟁과 그에 기초한 정계개편 논의로까지 화제의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선호 여부나 그의 이념적 입장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겠지만, 노후보의 등장과 함께 제기되고 있는 이념 논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치이념의 논쟁은 사실상 금기시되어 왔다. 한국전쟁과 분단상황 등 우리 사회의 특수한 경험이 정치적으로 허용되는 이념의 폭을 매우 협소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사회 내에는 현재의 질서와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좀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와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좀더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안정과 변화라는 상대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정치적 반영인 것이다.
이념 차이 있어야 정책도 차이… 선진 정치풍토 밑거름
정당이 어떤 이념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당선된 후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이전과 크게 변모되었음을 실감한 바 있다.
미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보수-진보의 입장 차이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안정과 변화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거 때가 되면 언론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당들이 정책대결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지만 이는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다. 우리 선거에서 정책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보다 지역주의의 경향이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정당간에 이념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 정책의 차이를 기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에서 보듯, 정당간 이념적 차별성이 뚜렷해진다면 그제서야 우리도 정책에 기초한 정치적 대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별화된 정책에 기초한 정치적 경쟁이 자리잡아야 그동안 우리 정치를 비생산적이고 분열적으로 만들었던 3김 시대와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념 논쟁에 큰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도 이것이 지역주의를 청산할 대안적 경쟁의 축으로 자리잡아갈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부상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의 이념적 입장이 너무 과격해 보인다는 것이다. 경선 상대인 이인제 후보 역시 TV 토론에서 이런 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을 마치 과거 냉전시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에 비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념 논쟁이 체제 수호나 빨갱이 때려잡기식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노무현 후보는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가 아니라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급진적 입장을 갖는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기초다. 급진 좌편향이었던 영국 노동당이 18년 동안의 야당 생활을 접고 권좌로 복귀한 것은 온건 중도 노선을 택한 토니 블레어의 노력 때문이었다. 노후보가 예비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본선거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자신의 이념이나 정책 노선에 대해 ‘물타기’를 시도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되든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우리 정치가 지역주의에 의존한 후진적 모습에서 벗어나 선진 민주주의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치적 경쟁의 틀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후보의 등장으로 제기된 이념 논쟁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건전한 정치이념의 폭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치이념의 논쟁은 사실상 금기시되어 왔다. 한국전쟁과 분단상황 등 우리 사회의 특수한 경험이 정치적으로 허용되는 이념의 폭을 매우 협소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사회 내에는 현재의 질서와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좀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와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좀더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안정과 변화라는 상대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정치적 반영인 것이다.
이념 차이 있어야 정책도 차이… 선진 정치풍토 밑거름
정당이 어떤 이념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당선된 후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이전과 크게 변모되었음을 실감한 바 있다.
미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보수-진보의 입장 차이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안정과 변화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거 때가 되면 언론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당들이 정책대결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지만 이는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다. 우리 선거에서 정책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보다 지역주의의 경향이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정당간에 이념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 정책의 차이를 기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에서 보듯, 정당간 이념적 차별성이 뚜렷해진다면 그제서야 우리도 정책에 기초한 정치적 대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별화된 정책에 기초한 정치적 경쟁이 자리잡아야 그동안 우리 정치를 비생산적이고 분열적으로 만들었던 3김 시대와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념 논쟁에 큰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도 이것이 지역주의를 청산할 대안적 경쟁의 축으로 자리잡아갈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부상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의 이념적 입장이 너무 과격해 보인다는 것이다. 경선 상대인 이인제 후보 역시 TV 토론에서 이런 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을 마치 과거 냉전시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에 비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념 논쟁이 체제 수호나 빨갱이 때려잡기식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노무현 후보는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가 아니라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급진적 입장을 갖는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기초다. 급진 좌편향이었던 영국 노동당이 18년 동안의 야당 생활을 접고 권좌로 복귀한 것은 온건 중도 노선을 택한 토니 블레어의 노력 때문이었다. 노후보가 예비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본선거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자신의 이념이나 정책 노선에 대해 ‘물타기’를 시도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되든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우리 정치가 지역주의에 의존한 후진적 모습에서 벗어나 선진 민주주의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치적 경쟁의 틀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후보의 등장으로 제기된 이념 논쟁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건전한 정치이념의 폭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