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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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편애’가 중동 피바람 부채질

샤론 총리, 미국 등에 업고 강공책 계속 … 팔레스타인 불가피한 저항 ‘보복의 악순환’

  •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27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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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은 지금 대폭발 전야(前夜)나 다름 없다. 아라파트의 집무실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파괴되고, 아라파트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지금처럼 팔레스타인을 압박해 간다면 한 달 안에 테러분자들을 싹쓸이할 수 있다.” 아라파트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리는 아랍연맹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정난 무렵, 이스라엘 법무장관 메이르 셰트리트가 이스라엘 언론에 흘린 말이다. 샤론과 그의 강경파 각료들은 전면전을 펼쳐 아라파트 체제를 완전 무력화한 후 항복을 받아내려는 분위기다. 여차하면 아라파트를 제거하고 좀더 온건한 인물로 갈아치운다는 발상까지 숨기지 않는다. 이스라엘 병사들 손에 쥐어진 무기는 ‘Made in USA.‘다. 미국이 무상원조한 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피를 흘린다. 샤론의 뒤엔 미국 내 강력한 유대인 압력단체들이 포진, 부시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친(親)이스라엘 편향정책 로비를 펼쳐왔다.

    부시 취임 후 샤론 백악관 초대 4회

    그칠 줄 모르는 유혈사태로 속이 타는 것은 그동안 샤론을 노골적으로 밀어준 부시 정권이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성공을 거두려면 이슬람권의 지지(또는 적어도 묵시적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도 고려할 수 있다”는 부시 발언도 9ㆍ11 테러 뒤에 나온 것이다. 탈레반 체제를 무너뜨린 뒤 2단계 테러전쟁이란 명분 아래, 부시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나 샤론은 부시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공 드라이브다. 그동안 중동 평화협상에 매달려온 미 퇴역장성 출신의 앤서니 지니 특사도 샤론의 옹고집엔 두 손 들었을 정도다. 부시는 ”이스라엘의 최근 행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본다면 부시가 지금껏 샤론의 후견인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 취임 뒤 샤론은 네 번이나 백악관에 초대받았지만, 아라파트는 거절당했다. 필자가 이미 두 차례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를 통해 확인한 바 있지만, 부시 정권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불신은 엄청나다.

    팔레스타인 정치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예루살렘 언론센터 소장인 가산 카티브는 최근 한 아랍계 매체에 발표한 글에서 부시와 그의 중동 특사인 지니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부시와 그의 특사 지니는 그동안 폭력적 긴장사태를 끝내는 부분과 관련해 이스라엘 샤론의 주장에 기울어져 있었다. 샤론은 보안문제(이-팔 보안당국이 손잡고 벌이는 테러범 단속)가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지니가 보안문제와 정치적 타결(평화협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우리 팔레스타인 쪽의 주장에 귀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겨우 요즘에 와서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의 강공작전을 지니 특사가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만하면 됐다, 이젠 철수하라‘는 재촉 정도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샤론의 강압책에 맞서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다. 팔레스타인과 샤론 정권은 이어질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



    강경파 이스라엘 지식인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제럴드 슈타인버그 교수(바르일란대ㆍ정치학)는 최근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샤론 수상은 지니 특사로 대표되는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고려해 상당히 참고 있다고 주장한다. 테러전쟁에서 아랍권 지지를 필요로 하는 부시 행정부의 요구대로 샤론이 라말라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병력을 뒤로 물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속담에 참는다는 뜻으로 ‘개구리를 삼킨다‘는 표현이 있다. 슈타인버그는 샤론이 ”개구리를 삼킬 정도로 극도의 인내심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샤론이 ”7일 동안 테러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휴전협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종전의 조건을 철회한 것도 인내심에서 나온 것이란 분석이다(샤론 내각의 두 강경파 각료가 샤론의 이런 태도 변화에 항의해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샤론은 삼켰던 개구리를 도로 뱉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지금껏 온몸으로 익혀온 생존술은 강공책이다.

    지난해 10월 극우파 각료 레하밤 지비는 ”팔레스타인은 (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와 같다”는 발언을 했다가 암살됐다. 샤론의 현실 인식은 그런 지비와 궤를 같이한다. 두 사람 다 군인이지 정치인은 아니다. 정치감각은 없고 탱크를 동원한 군사작전엔 능한 인물들이다. 샤론의 정치감각 수준을 보여주는 한 예. 그는 연금상태나 다름없는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레바논 아랍연맹회의에 무리해 참석할 경우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사우디의 평화안을 논의하겠다”며 샤론 자신이 베이루트로 갈 생각을 비치기도 했다.

    이토록 황당한 샤론의 발언들은 전적으로 부시 정권을 든든한 배후로 둔 오만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1년간 중동에서 숱한 희생자가 나온 1차 원인은 샤론의 강공책이지만, 결국 샤론이 주도하는 중동 살육의 ‘몸통‘은 부시의 친이스라엘 편향 정책이다. 최근 예루살렘을 방문한 딕 체니 부통령이 아라파트와의 회동을 거부한 것은 샤론의 입지를 강화해 주는 단적인 보기일 뿐이다. 미국은 그동안 유엔이나 유럽연합(EU)이 중동사태 해결에 개입하는 것도 달갑지 않게 여겨왔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강압 정책을 비판적으로 여기는 사실 때문이었다.

    ‘부시의 편애’가 중동 피바람 부채질

    이-팔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



    샌프란시스코대 스테판 주니스 교수(중동정치학)는 월간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에 발표한 ‘부시 행정부와 이-팔 교착‘이란 글에서 부시가 취임 이후 9ㆍ11 테러가 일어나기까지 이-팔 사태에 적극 개입하지 않아 유혈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강공 억압정책에 좌절할 대로 좌절하고 인내심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항(테러행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긴 불가능하다. 주니스 교수는 이스라엘이 평화협상에서 아라파트측이 시행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을 정착촌 건설 확대를 위한 시간 벌기라고 파악한다. 그럼에도 미 행정부와 의회, 언론들은 ”중동 평화협상을 저지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쪽”이라고 비난해 왔다는 게 주니스 교수의 지적이다.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대한 부시 행정부 관리들의 발언은 겉과 속이 다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샤론의 강공책을 비판하면 백악관은 곧바로 그 발언의 강도를 낮추는 식이다. 미 의회는 민주당, 공화당 모두 친이스라엘 일변도다. 미국 내 600만 머릿수를 앞세운 유대인 로비단체들의 강력 로비가 먹혀든 탓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의 대미 투쟁 이유의 하나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점사태를 꼽았다. 따지고 보면 부시 행정부의 친샤론,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이 9ㆍ11 테러라는 대형참사를 낳은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글을 마치려는데 이스라엘 북부에서 하마스 대원의 자살폭탄이 터져 20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샤론의 ‘피의 보복전‘이 펼쳐질게 뻔하다. 이스라엘이 말하는 ‘팔레스타인 야만(barbarism)‘과 팔레스타인이 말하는 ‘이스라엘 국가 테러리즘‘이 정면으로 부딪쳐, 날이 갈수록 희생자 수를 더하는 모습이다. 중동의 하늘은 먹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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