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일은 ‘숫자는 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숫자의 횡포’를 썼다. 그는 현대인이 어떻게 숫자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숫자란 객관 타당하기 때문에 시비를 걸 수 없다는 우리의 인식을 깨라고 이야기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꿈꾼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행복 공식’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쾌락과 고통의 강도, 지속 기간, 확실성, 속도, 풍부함, 순도, 반복성 등을 상호 비교해 계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의 저서 ‘도덕과 입법의 원칙서론’ 4장의 제목은 ‘쾌락 혹은 고통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였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의 행복을 제공하겠다는 공리주의자다운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분야를 측정한 통계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1차적으로 벤담을 좌절시켰다. 벤담의 계산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멕시코 사람들(최고로 가난하다)인 데 비해,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미국인들(최고 부자)이라는 모순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작곡가 조지 거슈윈은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원하지 않게 된다”는 말로 벤담주의자들의 헛된 노력을 비웃었다.
보일은 숫자의 횡포를 열 가지 ‘계산의 역설’로 요약한다. 1.사람은 셀 수 있지만 개인은 세지 못한다. 2.엉뚱한 대상을 계산하면 오히려 후퇴한다. 3.숫자는 믿음을 대체하고, 계산을 더욱 믿지 못할 것으로 만든다. 4.숫자가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많은 숫자를 수집한다. 5.계산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된다. 6.우리가 정확하게 계산할수록 숫자는 더욱 못 미더운 것이 된다. 7.세면 셀수록 수치를 비교할 수 없게 된다. 8.측정치는 그 자체의 기괴한 생명을 갖고 있다. 9.사물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10.대상이 복잡미묘해질수록 점점 더 계산을 할 수 없게 된다.
통계학자들이 만들어낸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할까. 평균적 신체조건, 평균적인 자녀 수, 평균적인 생활, 평균적인 범죄 성향…. 그러나 평균적인 인간이란 결코 있어본 적이 없는, 단지 숫자를 헤아리기 위해 만들어낸 인간일 뿐이다. 그 평균적 인간이 이상한 속옷을 입고 다닌다든지, 은하계를 붕붕 날아다니는 기이한 꿈을 꾼다면 그는 이미 평균적이지 않다는 데 계산의 역설이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숙제를 더 많이 내줘 학습 부진을 막겠다는 영국 정부의 발상은 결과적으로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만 양산했다. 병원의 대기자 리스트를 10만명으로 줄이겠다는 블레어 총리의 공약은 간단한 진료와 수술의 처리 속도를 빠르게 했지만 어려운 수술의 속도는 더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모두 엉뚱한 숫자에 집착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친 경우다.
저자는 ‘뉴이코노믹스’의 편집장답게 숫자놀음에 불과한 정부 정책을 자주 도마에 올려놓고 한껏 조롱한다. 그는 1980년대 말 전성기를 구가하던 대처 총리가 갑자기 ‘지구의 친구’를 자처하며 환경정책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후 유행한 환경경제학을, 건물 벽을 세게 발로 차봐야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멍청한 짓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지방자치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몇 %의 논리에 휘말려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발터 크래머의 ‘확률게임’은 ‘숫자의 횡포’에 비해 훨씬 더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우리의 허점을 찌르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카지노에서 룰렛을 하며 연속적으로 레드가 나오면 사람들은 다음에 블랙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돈을 건다. 그러나 실제로 복권과 룰렛에 사용되는 구슬은 ‘양심도 기억력도’ 없다. 즉 구슬은 레드가 열 번 나왔는지 열한 번 나왔는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레드가 100번이나 연속해서 나온 다음에도 레드와 블랙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2분의 1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이처럼 아주 간단한 확률조차 착각하는 것에 대해 크래머는 ‘지적 자살골’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도르트문트대학 통계학 교수인 저자는 ‘상식의 오류 사전’에서 보여준 유머 감각을 ‘확률게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확률게임’은 한마디로 재미있는 수학책이다. 두 책을 읽고 나면 ‘숫자에 마음껏 시비를 걸라’는 보일의 충고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숫자의 횡포/ 데이비드 보일 지음/ 이종인 옮김/ 대산출판사 펴냄/ 382쪽/ 1만2000원
확률게임/ 발터 크래머 지음/ 권세훈 옮김/ 이지북 펴냄/ 260쪽/ 8500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꿈꾼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행복 공식’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쾌락과 고통의 강도, 지속 기간, 확실성, 속도, 풍부함, 순도, 반복성 등을 상호 비교해 계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의 저서 ‘도덕과 입법의 원칙서론’ 4장의 제목은 ‘쾌락 혹은 고통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였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의 행복을 제공하겠다는 공리주의자다운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분야를 측정한 통계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1차적으로 벤담을 좌절시켰다. 벤담의 계산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멕시코 사람들(최고로 가난하다)인 데 비해,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미국인들(최고 부자)이라는 모순을 설명할 수 없었다. 작곡가 조지 거슈윈은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원하지 않게 된다”는 말로 벤담주의자들의 헛된 노력을 비웃었다.
보일은 숫자의 횡포를 열 가지 ‘계산의 역설’로 요약한다. 1.사람은 셀 수 있지만 개인은 세지 못한다. 2.엉뚱한 대상을 계산하면 오히려 후퇴한다. 3.숫자는 믿음을 대체하고, 계산을 더욱 믿지 못할 것으로 만든다. 4.숫자가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많은 숫자를 수집한다. 5.계산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된다. 6.우리가 정확하게 계산할수록 숫자는 더욱 못 미더운 것이 된다. 7.세면 셀수록 수치를 비교할 수 없게 된다. 8.측정치는 그 자체의 기괴한 생명을 갖고 있다. 9.사물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10.대상이 복잡미묘해질수록 점점 더 계산을 할 수 없게 된다.
통계학자들이 만들어낸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할까. 평균적 신체조건, 평균적인 자녀 수, 평균적인 생활, 평균적인 범죄 성향…. 그러나 평균적인 인간이란 결코 있어본 적이 없는, 단지 숫자를 헤아리기 위해 만들어낸 인간일 뿐이다. 그 평균적 인간이 이상한 속옷을 입고 다닌다든지, 은하계를 붕붕 날아다니는 기이한 꿈을 꾼다면 그는 이미 평균적이지 않다는 데 계산의 역설이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숙제를 더 많이 내줘 학습 부진을 막겠다는 영국 정부의 발상은 결과적으로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만 양산했다. 병원의 대기자 리스트를 10만명으로 줄이겠다는 블레어 총리의 공약은 간단한 진료와 수술의 처리 속도를 빠르게 했지만 어려운 수술의 속도는 더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모두 엉뚱한 숫자에 집착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친 경우다.
저자는 ‘뉴이코노믹스’의 편집장답게 숫자놀음에 불과한 정부 정책을 자주 도마에 올려놓고 한껏 조롱한다. 그는 1980년대 말 전성기를 구가하던 대처 총리가 갑자기 ‘지구의 친구’를 자처하며 환경정책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후 유행한 환경경제학을, 건물 벽을 세게 발로 차봐야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멍청한 짓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지방자치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몇 %의 논리에 휘말려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발터 크래머의 ‘확률게임’은 ‘숫자의 횡포’에 비해 훨씬 더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우리의 허점을 찌르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카지노에서 룰렛을 하며 연속적으로 레드가 나오면 사람들은 다음에 블랙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돈을 건다. 그러나 실제로 복권과 룰렛에 사용되는 구슬은 ‘양심도 기억력도’ 없다. 즉 구슬은 레드가 열 번 나왔는지 열한 번 나왔는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레드가 100번이나 연속해서 나온 다음에도 레드와 블랙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2분의 1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이처럼 아주 간단한 확률조차 착각하는 것에 대해 크래머는 ‘지적 자살골’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도르트문트대학 통계학 교수인 저자는 ‘상식의 오류 사전’에서 보여준 유머 감각을 ‘확률게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확률게임’은 한마디로 재미있는 수학책이다. 두 책을 읽고 나면 ‘숫자에 마음껏 시비를 걸라’는 보일의 충고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숫자의 횡포/ 데이비드 보일 지음/ 이종인 옮김/ 대산출판사 펴냄/ 382쪽/ 1만2000원
확률게임/ 발터 크래머 지음/ 권세훈 옮김/ 이지북 펴냄/ 260쪽/ 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