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차기 전투기)사업 1차 기종 평가 결과가 발표된 후 적잖은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후유증은 F-15K가 선정된 것에 반대하는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국방부는 1차 평가에서 F-15K가 선정됐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 국방부는 1차 선정에서 1위를 한 기종과 2위를 한 기종 간의 백분율 차이가 3%포인트를 넘지 않아 2차 평가에서 최종 기종을 선정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싫든 좋든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안정을 보장하는 주춧돌이다. 따라서 확실히 F-15K가 선정된 것도 아닌데, ‘반미감정’만으로 F-15K 선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한·미동맹을 해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F-15K 선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을 때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을 근거로 한 구체적인 증거와 논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FX 기종 선정은 각 기종을 1대 1로 붙였을 때 이기는 것을 고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30년간 사용했을 때 들어가는 연료비와 정비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장착할 수 있는 무기의 종류와 성능, 가격 등 수치화하기 힘든 여러 분야를 종합적으로 비교한 후 측정하는 것이다. 수십년간 공군에서 일해온 사람조차도 판단하기 힘든 작업이다.
F-15K는 4개 기종 중 작전 반경이 가장 넓고, 가장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 기종이다. 따라서 통일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무기라는 점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라팔과 타이푼을 지지한 사람 중 상당수는 두 기종은 스텔스 기능이 있는 반면, F-15K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라팔과 타이푼은 미 공군이 운용하는 F-117기와 같은 스텔스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F-117은 레이더파를 반사하는 엔진 등의 금속 물질은 모두 기체 안에 집어넣고, 기체 외부는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물질로 덮어버렸기 때문에 스텔스가 된다. 그렇지만 이 비행기에도 약점은 있다.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기체 일부를 열 때 기체 안에 있는 금속 물질이 레이더파를 반사해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 이런 이유 때문에 F-117기는 코소보전에서 두 대가 격추되었다. 라팔과 타이푼은 기체의 상당 부분을 스텔스 처리했지만, 레이더파 반사가 큰 엔진은 몸통 밑에 달려 있다. 따라서 라팔과 타이푼은 상대적으로 레이더파의 반사량이 적어, 레이더 화면상으로 F-15K보다 작은 점으로 보인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라팔과 타이푼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 못지않게 재평가해야 할 것이 한·미 군사동맹이다. 한국 공군작전사령부가 있는 미 7공군 영내에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위를 나는 모든 비행체를 추적하는 중앙방공통제소(MCRC)가 있다. 이 시설은 한·미 공군이 공동으로 운용하지만, 원래는 미 공군 자산이다. 중앙방공통제소 옆에는 KH-12 따위의 미국 군사위성이 찍은 사진을 수신하는 시설이 있다. 이곳도 한·미 공군이 공동으로 운용하는데 여기서 얻은 위성 사진은 국방부는 물론 국가정보원에서도 북한의 동태를 파악하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미 군사동맹이 아니라면 한국은 이러한 자료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FX 기종을 선정할 때는 각 기종이 갖고 있는 성능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소까지 고려해 종합 판단할 필요가 있다.
1차 평가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F-15K 40대의 가격은 44억5000만 달러(약 5조8000억원)다. 한국은 과연 이 돈만 지불하면 40대의 F-15K를 운용할 수 있는가?
전투기는 항상 하늘에 떠 있기만 한 무기가 아니다. 무기를 장착하고 연료를 주입하며 정비도 해야 하므로, 하늘보다는 오히려 지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도 고가 자동차는 별도의 차고에 주차하는데, 대당 1억 달러가 넘는 전투기를 아무 데나 ‘주기’(駐機)할 수는 없는 법이다. 노천에 주기된 전투기는 ‘적군의 밥’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공군들은 지상에 내려온 전투기를 ‘엄체호’라고 하는 격납고에 집어넣고 있다. 엄체호는 적군으로부터 미사일이나 포 공격을 받더라도 끄떡하지 않고 전투기를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두껍게 만들어져 있다. 엄체호를 만드는 데는 생각 밖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공군이 운용해 온 전투기는 F-4와 F-5, F-16이었으므로, 공군은 세 종류의 전투기에 맞는 엄체호를 지어 운용해 왔다. 세 기종 중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쌍발기인 F-4 팬텀이므로 팬텀의 엄체호는 다른 두 기종보다 훨씬 더 큰 편이다.
문제는 F-15K가 팬텀보다 크다는 데 있다. 따라서 F-15K를 도입한다면 한국 공군은 F-15K에 맞는 엄체호 40동을 별도로 지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계산은 지난해 여름 공군 내부에서 나온 것이므로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금액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F-15K가 선정되면 한국은 5조8000억원 외에 엄체호 건설로 500억원 정도를 추가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공군은 이 문제를 덮어버렸다. 이유는 F-4 팬텀이 쓰던 엄체호에 F-15K를 넣을 수 있다는 발상 때문이었다. 물론 F-15K는 F-4 팬텀의 엄체호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비행기는 모양이 다르다. 따라서 F-4용 엄체호 안에서 F-15K를 정비하려면 정비 장비의 운용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보잉측은 엄체호 건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보잉사의 릴리스 이사는 “미국 공군도 F-4가 쓰던 엄체호를 F-15가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F-4와 F-15는 모두 보잉(과거의 맥더널 더글러스)에서 제작한 것이라 같은 엄체호 안에서 정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4는 작전수명이 다했으므로 FX 기종이 도입되는 즉시 도태된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F-4 대수는 FX 대수보다 많으므로, F-4의 엄체호를 그대로 이용한다면 한국 공군은 500억원이 넘는 거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F-4는 후방 지역인 ○ ○비행단에 주로 배치돼 있다. 따라서 F-4의 엄체호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F-15기는 후방 지역에 배치되어야 한다. 영공 방어의 최일선에 투입되어야 할 F-15K기가 KF-16 비행단보다 훨씬 뒤쪽인 후방에 있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공군은 F-15K를 위한 별도의 엄체호를 지어야 할 것이다. 반면 라팔과 타이푼은 KF-16보다 약간 더 크므로 엄체호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방부와 공군이 FX 기종 평가를 꼼꼼하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4세대 전투기를 단 한 번도 운용해 본 경험이 없다. 따라서 평가 작업 초기에는 엉뚱한 요구를 해 4개 회사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했으나, 많은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4개 회사측에 상당한 주문을 해 오히려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다. 4개사를 궁지로 몰아넣은 공군과 국방부의 요구 중 하나가 FX 기종에 전자식 레이더를 탑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투기에 탑재하는 레이더에는 기계식과 전자식이 있다. 세계적인 추세는 기계식에서 전자식 레이더로 발전하고 있다. 평가 요원들은 이러한 추세를 알고 한국에 공급할 전투기에는 전자식 레이더를 장착해 달라고 ‘가외로’ 주문한 것. 이러한 요구를 맞춰준 것은 라팔뿐이었다. 반면 타이푼과 보잉은 “전자식 레이더는 개발중이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관심이 가는 것은 보잉측 태도다. 보잉측이 F-15K에 달아주기로 한 APG-63(v1)이라는 레이더는 기계식이다. 보잉측은 “일단은 기계식 레이더를 달되, 전자식 레이더가 개발되면 전자식 레이더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치를 미리 F-15K에 장착하겠다. 그러나 전자식 레이더의 비용은 한국이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40대의 F-15K에 장착되는 전자식 레이더 가격은 3억 달러(약 3900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한국은 IMF 경제 위기를 경계로 환율이 20% 정도 상승해, 애초 4조1000억원(40억 달러)으로 잡았던 FX 비용은 5조원대로 올랐다. 그런데 보잉사와 다소사는 목표액(40억 달러)보다 10% 정도 비싼 44억 달러대를 제시했으므로, FX 비용은 애초 계획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30%대의 비용 상승은 우리 국민이 1조2000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자식 레이더를 추가 장착하기 위해 3900억원을 더 지불해야 하고 여기에 엄체호 비용도 덧붙여보아야 한다. 과연우리 국민은 이러한 부담을 수용해 줄 수 있을까?
가격 협상 막바지 단계에서 다소측은 가격을 더 이상 내리지 않는 대신 연습기로 쓰일 수 있는 라팔 시제기 4대를 무상으로 한국에 제공하는 것을 검토했었다. 다소는 한국 시장을 차지하지 못하면 생존에 큰 위협을 받으므로 라팔 시제기 제공을 검토했던 것. 그러나 최종가격 입찰에서는 이 카드를 내놓지 않았다.
가격 협상 당시 50억 달러 선에서 시작된 가격을 44억 달러 선으로 낮추는 경쟁을 촉발한 것은 다소였고 보잉은 이러한 다소를 열심히 추격했다. 보잉은 한국 시장을 놓칠 경우 F-15 공장을 폐쇄해야 할 처지이므로 다소의 눈치를 살피며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소와 보잉의 이러한 움직임은 양사 모두 FX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전자식 레이더 설치 비용과 엄체호 건설 비용 등 가외의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가격 인하 여지가 있는 한 한국은 서둘러 기종을 결정하지 말고 두 회사간의 경쟁을 최대한 촉발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 대기업에서 오너의 영향력이 막대하듯 보잉과 다소에서도 그룹 회장의 결정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한국은 다소사 회장 세르주 다소와 보잉사 회장 필 콘디트가 가격 인하를 결정할 수 있도록 2차 선정 작업을 늦춰야 한다. 김동신 국방장관은 국제 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해 FX사업을 조기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노르웨이와 그리스는 FX 기종을 결정해 놓고도 사업을 연기했다. 국익이 걸린 사업에서 ‘신인도’는 무시될 수도 있는 것이다.
FX사업을 냉철히 추적해 온 전문가들은 “다소와 보잉은 기업의 사활을 걸고 격돌하고 있다. 따라서 두 회사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도록 2차 선정 작업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 세르주 다소와 필 콘디트 회장이 속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절묘한 경쟁을 유도해야, 최저 비용으로 최대 국익을 얻을 수 있다”고 권고한다.
싫든 좋든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안정을 보장하는 주춧돌이다. 따라서 확실히 F-15K가 선정된 것도 아닌데, ‘반미감정’만으로 F-15K 선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한·미동맹을 해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F-15K 선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을 때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을 근거로 한 구체적인 증거와 논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FX 기종 선정은 각 기종을 1대 1로 붙였을 때 이기는 것을 고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30년간 사용했을 때 들어가는 연료비와 정비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장착할 수 있는 무기의 종류와 성능, 가격 등 수치화하기 힘든 여러 분야를 종합적으로 비교한 후 측정하는 것이다. 수십년간 공군에서 일해온 사람조차도 판단하기 힘든 작업이다.
F-15K는 4개 기종 중 작전 반경이 가장 넓고, 가장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 기종이다. 따라서 통일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무기라는 점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라팔과 타이푼을 지지한 사람 중 상당수는 두 기종은 스텔스 기능이 있는 반면, F-15K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라팔과 타이푼은 미 공군이 운용하는 F-117기와 같은 스텔스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F-117은 레이더파를 반사하는 엔진 등의 금속 물질은 모두 기체 안에 집어넣고, 기체 외부는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물질로 덮어버렸기 때문에 스텔스가 된다. 그렇지만 이 비행기에도 약점은 있다.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기체 일부를 열 때 기체 안에 있는 금속 물질이 레이더파를 반사해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 이런 이유 때문에 F-117기는 코소보전에서 두 대가 격추되었다. 라팔과 타이푼은 기체의 상당 부분을 스텔스 처리했지만, 레이더파 반사가 큰 엔진은 몸통 밑에 달려 있다. 따라서 라팔과 타이푼은 상대적으로 레이더파의 반사량이 적어, 레이더 화면상으로 F-15K보다 작은 점으로 보인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라팔과 타이푼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 못지않게 재평가해야 할 것이 한·미 군사동맹이다. 한국 공군작전사령부가 있는 미 7공군 영내에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위를 나는 모든 비행체를 추적하는 중앙방공통제소(MCRC)가 있다. 이 시설은 한·미 공군이 공동으로 운용하지만, 원래는 미 공군 자산이다. 중앙방공통제소 옆에는 KH-12 따위의 미국 군사위성이 찍은 사진을 수신하는 시설이 있다. 이곳도 한·미 공군이 공동으로 운용하는데 여기서 얻은 위성 사진은 국방부는 물론 국가정보원에서도 북한의 동태를 파악하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미 군사동맹이 아니라면 한국은 이러한 자료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FX 기종을 선정할 때는 각 기종이 갖고 있는 성능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소까지 고려해 종합 판단할 필요가 있다.
1차 평가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F-15K 40대의 가격은 44억5000만 달러(약 5조8000억원)다. 한국은 과연 이 돈만 지불하면 40대의 F-15K를 운용할 수 있는가?
전투기는 항상 하늘에 떠 있기만 한 무기가 아니다. 무기를 장착하고 연료를 주입하며 정비도 해야 하므로, 하늘보다는 오히려 지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도 고가 자동차는 별도의 차고에 주차하는데, 대당 1억 달러가 넘는 전투기를 아무 데나 ‘주기’(駐機)할 수는 없는 법이다. 노천에 주기된 전투기는 ‘적군의 밥’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공군들은 지상에 내려온 전투기를 ‘엄체호’라고 하는 격납고에 집어넣고 있다. 엄체호는 적군으로부터 미사일이나 포 공격을 받더라도 끄떡하지 않고 전투기를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두껍게 만들어져 있다. 엄체호를 만드는 데는 생각 밖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공군이 운용해 온 전투기는 F-4와 F-5, F-16이었으므로, 공군은 세 종류의 전투기에 맞는 엄체호를 지어 운용해 왔다. 세 기종 중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쌍발기인 F-4 팬텀이므로 팬텀의 엄체호는 다른 두 기종보다 훨씬 더 큰 편이다.
문제는 F-15K가 팬텀보다 크다는 데 있다. 따라서 F-15K를 도입한다면 한국 공군은 F-15K에 맞는 엄체호 40동을 별도로 지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계산은 지난해 여름 공군 내부에서 나온 것이므로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금액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F-15K가 선정되면 한국은 5조8000억원 외에 엄체호 건설로 500억원 정도를 추가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공군은 이 문제를 덮어버렸다. 이유는 F-4 팬텀이 쓰던 엄체호에 F-15K를 넣을 수 있다는 발상 때문이었다. 물론 F-15K는 F-4 팬텀의 엄체호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비행기는 모양이 다르다. 따라서 F-4용 엄체호 안에서 F-15K를 정비하려면 정비 장비의 운용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보잉측은 엄체호 건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보잉사의 릴리스 이사는 “미국 공군도 F-4가 쓰던 엄체호를 F-15가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F-4와 F-15는 모두 보잉(과거의 맥더널 더글러스)에서 제작한 것이라 같은 엄체호 안에서 정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4는 작전수명이 다했으므로 FX 기종이 도입되는 즉시 도태된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F-4 대수는 FX 대수보다 많으므로, F-4의 엄체호를 그대로 이용한다면 한국 공군은 500억원이 넘는 거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F-4는 후방 지역인 ○ ○비행단에 주로 배치돼 있다. 따라서 F-4의 엄체호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F-15기는 후방 지역에 배치되어야 한다. 영공 방어의 최일선에 투입되어야 할 F-15K기가 KF-16 비행단보다 훨씬 뒤쪽인 후방에 있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공군은 F-15K를 위한 별도의 엄체호를 지어야 할 것이다. 반면 라팔과 타이푼은 KF-16보다 약간 더 크므로 엄체호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방부와 공군이 FX 기종 평가를 꼼꼼하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4세대 전투기를 단 한 번도 운용해 본 경험이 없다. 따라서 평가 작업 초기에는 엉뚱한 요구를 해 4개 회사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했으나, 많은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4개 회사측에 상당한 주문을 해 오히려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다. 4개사를 궁지로 몰아넣은 공군과 국방부의 요구 중 하나가 FX 기종에 전자식 레이더를 탑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투기에 탑재하는 레이더에는 기계식과 전자식이 있다. 세계적인 추세는 기계식에서 전자식 레이더로 발전하고 있다. 평가 요원들은 이러한 추세를 알고 한국에 공급할 전투기에는 전자식 레이더를 장착해 달라고 ‘가외로’ 주문한 것. 이러한 요구를 맞춰준 것은 라팔뿐이었다. 반면 타이푼과 보잉은 “전자식 레이더는 개발중이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관심이 가는 것은 보잉측 태도다. 보잉측이 F-15K에 달아주기로 한 APG-63(v1)이라는 레이더는 기계식이다. 보잉측은 “일단은 기계식 레이더를 달되, 전자식 레이더가 개발되면 전자식 레이더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치를 미리 F-15K에 장착하겠다. 그러나 전자식 레이더의 비용은 한국이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40대의 F-15K에 장착되는 전자식 레이더 가격은 3억 달러(약 3900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한국은 IMF 경제 위기를 경계로 환율이 20% 정도 상승해, 애초 4조1000억원(40억 달러)으로 잡았던 FX 비용은 5조원대로 올랐다. 그런데 보잉사와 다소사는 목표액(40억 달러)보다 10% 정도 비싼 44억 달러대를 제시했으므로, FX 비용은 애초 계획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30%대의 비용 상승은 우리 국민이 1조2000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자식 레이더를 추가 장착하기 위해 3900억원을 더 지불해야 하고 여기에 엄체호 비용도 덧붙여보아야 한다. 과연우리 국민은 이러한 부담을 수용해 줄 수 있을까?
가격 협상 막바지 단계에서 다소측은 가격을 더 이상 내리지 않는 대신 연습기로 쓰일 수 있는 라팔 시제기 4대를 무상으로 한국에 제공하는 것을 검토했었다. 다소는 한국 시장을 차지하지 못하면 생존에 큰 위협을 받으므로 라팔 시제기 제공을 검토했던 것. 그러나 최종가격 입찰에서는 이 카드를 내놓지 않았다.
가격 협상 당시 50억 달러 선에서 시작된 가격을 44억 달러 선으로 낮추는 경쟁을 촉발한 것은 다소였고 보잉은 이러한 다소를 열심히 추격했다. 보잉은 한국 시장을 놓칠 경우 F-15 공장을 폐쇄해야 할 처지이므로 다소의 눈치를 살피며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소와 보잉의 이러한 움직임은 양사 모두 FX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전자식 레이더 설치 비용과 엄체호 건설 비용 등 가외의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가격 인하 여지가 있는 한 한국은 서둘러 기종을 결정하지 말고 두 회사간의 경쟁을 최대한 촉발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 대기업에서 오너의 영향력이 막대하듯 보잉과 다소에서도 그룹 회장의 결정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한국은 다소사 회장 세르주 다소와 보잉사 회장 필 콘디트가 가격 인하를 결정할 수 있도록 2차 선정 작업을 늦춰야 한다. 김동신 국방장관은 국제 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해 FX사업을 조기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노르웨이와 그리스는 FX 기종을 결정해 놓고도 사업을 연기했다. 국익이 걸린 사업에서 ‘신인도’는 무시될 수도 있는 것이다.
FX사업을 냉철히 추적해 온 전문가들은 “다소와 보잉은 기업의 사활을 걸고 격돌하고 있다. 따라서 두 회사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도록 2차 선정 작업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 세르주 다소와 필 콘디트 회장이 속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절묘한 경쟁을 유도해야, 최저 비용으로 최대 국익을 얻을 수 있다”고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