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경제분야에서 남북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업체는 모두 23곳이다. 그러나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중 녹십자와 평화자동차, 삼성전자 등 3∼4개 기업을 제외하면 최소한의 사업조차 제대로 벌이고 있는 곳이 전혀 없다. 경제분야 남북협력사업은 1992년부터 승인되기 시작해 1997∼98년에는 무려 29건이나 승인되는 등 절정을 이루었고 지난해에도 6건이 승인된 바 있다(도표 참조).
그러나 승인이 이렇게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사업 내용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분야 남북협력 승인 사업 중에는 대우가 남포공단에 세웠던 의류공장 같은 사업들도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95년 협력사업 승인을 받았던 고합의 의류봉제사업, 한일합섬의 봉제·방적사업, 국제상사의 신발사업 등은 각각 해당 기업의 부실화 또는 부도로 사업 자체가 중단되어 버린 경우. 게다가 한화, 코오롱 등 재벌급 대기업에서 합영투자한 사업이든 소규모 수산업체 등에서 수산물 가공사업 등을 위해 투자한 사업이든 간에 승인만 받아놓고 실제로는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KOTRA 북한실 김삼식 과장은 “남북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사업들 중 경수로 건설사업과 현대의 금강산사업을 제외하면 순수 민간의 투자승인액이 수천만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대북 투자기반은 취약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98년 평양에 초코파이 공장을 설립할 계획으로 575만 달러 규모의 남북협력사업을 승인받았던 롯데제과 역시 5년째 아무런 진척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경우. 광명성총회사를 사업 파트너로 합영사업을 구상했던 롯데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초코파이가 갖고 있는 인기를 북한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으나, 결과적으로 공수표만 날린 셈이 됐다. 롯데 관계자는 “당시 경쟁 업체인 동양제과와 중국 시장 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황에서 장기적 안목에서는 북한 시장 선점에 대한 욕심이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남북 경협 열기를 타고 너도나도 대북합작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일부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참깨가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데도 북한에 참기름 공장을 세우겠다고 협력사업 승인을 받은 업체도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합영·합작 사업이 부진하다 보니 최근 들어 협력사업 승인 업체들이 승인 신청 당시의 계획을 모두 수정해 대부분 단순 임가공사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단순 임가공은 정부로부터 협력사업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 임가공이 남북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들어 30%를 넘어섰다. 상업적 성격을 띠는 거래성 교역만 놓고 보면 단순 임가공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임가공 방식은 지금과 같이 남북 경색 상태가 지속되는 한 당분간 남북 교역의 중심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남북간 기술자 교류 문제가 해결되고 경의선 연결을 통해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OTRA 김삼식 과장은 “지금은 단순 임가공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설비를 직접 반출해 위탁 가공하는 설비제공형 임가공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그나마 경제분야 협력사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정보기술(IT) 분야의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승인된 경제협력사업 6건 중 4건이 소프트웨어 공동개발을 포함한 IT 분야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중에는 최근 범태평양 조선민족 경제개발 촉진협회(범태)와 함께 조선복권 합영회사를 설립, 인터넷 복권 사이트를 개설해 화제를 몰고 왔던 ㈜훈넷도 포함되어 있다. 다산인터넷 등 벤처기업이 공동출자해 세운 하나비즈닷컴은 남북간 프로그램 공동개발을 내걸고 중국 단둥(丹東)에 프로그램 센터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 센터에는 지난해 8월부터 북한 견습생 30명이 나와 4개월 과정으로 IT 교육을 받고 돌아갔으며 오는 4월 2기생에 대한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다.

“북한이 IT산업을 내세우는 것은 IT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경제구조의 ‘전산화’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주판으로 계산하던 것을 개인용 컴퓨터로 대체하는 수준이라는 말이다. 중국 등에 교육센터를 만들어 IT 협력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여기에 따르는 부대 비용 등을 감안하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에서는 협력사업을 승인받은 사업자가 분기마다 사업 경과에 대한 보고서를 통일부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분기 보고를 받아 협력사업 승인 업체의 활동 내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꾸준히 진행되는 사업도 있지만 남북한 어느 한쪽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 활동 내용은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 경협 활성화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지난 2000년 12월 남북한 당국간에 서명한 경협 4대 합의서의 이행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 보장, 이중과세 방지, 청산 결제, 상사분쟁 해결 절차 등 4개의 경협 관련 합의는 기업들의 대북 투자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완장치로 꼽힌다. 그러나 임특보의 방북 과정에서도 경협 합의서는 아직까지 별 관심을 끌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5차 회의에서도 기대했던 경협 합의서 비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국회도 4대 경협 합의서를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