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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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보전하려면 1000만원 내시오”

교육계, 인사 청탁 등 각종 비리로 얼룩… 공사비 부풀리기 예사, 성 상납 구설까지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27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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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 보전하려면 1000만원 내시오”
    지난 1월 교원 승진 및 전보 인사작업이 한창이던 모 교육청 사무실에 국무조정실 감찰반이 급습했다. 감찰반은 인사 담당자들을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 뒤 양복 주머니를 뒤졌다. 한 장학사의 주머니에서 나온 흰 봉투. 해당 장학사의 이름까지 적혀 있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감찰반은 호주머니는 물론 책상서랍, 사무실 캐비닛, 승용차까지 샅샅이 뒤졌다.

    국무총리실에서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얼룩진 공직 기강을 확립하고, 특히 ‘공무원 줄서기’와 ‘공직 기밀 누설’을 집중 단속하기 위해 긴급 실시한 암행감사 결과 9개 시·도교육청에서 인사 담당 장학관과 장학사 20명이 인사 청탁과 함께 2215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이 적발됐다. 심지어 장학관이 자신이 교장으로 있던 학교의 여교사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성 상납’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실은 3월 중 국무조정실로부터 통보받은 결과를 가지고 자체 확인 작업에 들어가 현재 70% 정도 마무리한 상태. 감사관실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감사를 통해서는 받은 사실만 밝혀냈으나 교육부 자체 감사를 통해 금품 제공자까지 확인했기 때문에 징계 대상은 더욱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성 상납’ 부분은 당사자들이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더 이상 밝혀낼 수 없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대구시교육청에서 적발된 김모 과장의 경우 “500만원은 빌려줬던 돈을 받은 것이고 상품권은 결혼 주례에 대한 인사”라고 해명한 내용이 모두 허위로 밝혀져 더욱 망신살이 뻗쳤다. 김과장은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의 증·개축과 관련해 재단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이번 감찰로 인사철만 되면 5만~10만원씩 봉투에 넣어 돌리는 교육계의 관행이 철퇴를 맞았지만 일각에서는 ‘송사리’만 잡았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한 교육계 원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서랍이나 캐비닛에 돈봉투를 넣어두었다면 순진한 경우다. 케이스가 있는 책을 꺼내고 거기에 봉투를 넣어 돌려 꽂아둔다”면서 “인사 청탁이 워낙 광범위해 이번에 적발된 사람들만 억울한 심정일 것”이라고 한마디.

    줄줄이 이어지는 비리 사건으로 시·도교육청은 교육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는 경기도교육청에서 벌어진 조성윤 전 교육감의 처남 방연호씨의 교직 장사를 꼽을 수 있다. 방씨는 3년 동안 교육장·장학관 승진, 분당 등 신도시 교장 발령, 연고지 배정에 따로따로 가격을 매겨 장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방씨가 공무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었고,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50여명의 장학사와 교장들도 ‘뇌물공여’ 혐의는 인정되지 않은 채 징계만 받았다.



    충북교육청은 1년 내내 김영세 교육감의 인사비리, 매춘여인숙 소유와 관련해 교육감을 옹호하는 교육관료들과 퇴진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대립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결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교육감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아직 사표는 제출하지 않은 상태. 사실 명백한 물증이 없어 그렇지 교육계의 정실인사와 청탁비리는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최근 충남교육청에서는 교육감과 지연, 학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주요 고교 교장으로 전보되거나 교육청 내에서도 주요 보직을 차지하는 일이 잦아 직원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윗선과 줄대기에 실패해 외곽으로만 돈 한 장학관은 “그나마 이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계속 하려면 돈을 내라”는 요구를 받고 한숨만 쉬고 있다. 액수는 1000만원대.

    2001년 교육부가 학급당 학생 수 35명 감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7·20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발표하자 한숨부터 내쉬는 교사들이 많았다. ‘서울교육포럼’을 이끌고 있는 안승문 정책실장(장승중 교사)은 “교실의 평당 건축비가 40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20평짜리 교실 하나 짓는데 8000만원, 3개만 지어도 2억4000만원이다. 고급 아파트도 아니고 교실을 짓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이 드는지 묻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산발적으로 지역 교육청에서 공무원과 전·현직 교장들이 교육 기자재 납품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잇따랐다.

    결국 올해 초 울산에서 먼저 터졌다. 초·중·고교 공사비를 부풀려 차액을 가로채거나 수의계약한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울산지역 학교장 14명과 공무원 73명이 무더기로 적발됐고 그중 11명이 구속됐다. 특히 일부 교장은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면서 어떤 업체가 돈을 잘 주는지, 어떻게 돈을 받는지까지 가르친 사실이 알려져 다시 한 번 분노를 자아냈다.

    이어 3월에는 경남교육청에서 터졌다. 경남지방경찰청이 학교 공사와 납품 관련 비리를 2개월 동안 집중 조사한 결과 교육청 공무원과 학교 관계자 51명을 적발했다. 검찰이 최근 학교 공사와 납품이 잦은 업체들의 내사 과정에서 비자금 명부를 발견해 뇌물을 받은 공직자들이 속속 드러난 것. 교육행정의 공백을 우려한 검찰의 ‘배려’로 100만원 이상을 받은 7명만 구속되었다. 모두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진 부끄러운 교육계의 모습이었다.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비리에다 최근에는 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실이나 청와대 민원실 등에 허위 진정과 투서, 음해성 제보가 난발하고 있어 교육계의 혼탁상은 갈 데까지 갔다는 인상이다. 대구지역에서는 초등학교 교장 100여명 앞으로 부교재 채택 과정에서 교사들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고 있다는 협박성 편지가 배달되는 등 교사들이 ‘괴편지’로 시달리고 있다.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었던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 인사비리 개선책’을 마련하고 단위 학교별로 ‘인사자문위’를 설치하여 인사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는 등 인사의 투명성 확보에 노력하기로 했다. 교육청 인사 담당 장학관(4, 5급)도 의무적으로 재산 상황을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7·20 교육여건 개선사업’과 관련해 시·도교육청의 자체 감사에만 맡기지 않고 본부 감사관실에 ‘시설공사 특별 점검반’을 설치하는 등 특감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경남에서처럼 꼼짝할 수 없는 증거(비리 장부)가 발견되지 않는 한, 형식적인 감사로 비리를 밝혀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교육계에 만연한 ‘도덕불감증’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교육개발원 이종태 박사팀이 2000년 8월 발표한 ‘교육 분야 부패방지 대책’ 보고서를 보면,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일반직 공무원 인사와 관련해 전체 응답자의 29.8%가 100만원 이상, 12.5%가 50만원 이상, 11.3%가 30만원 이상의 금품수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당사자인 일반직 공무원조차 42.6%가 30만원 이상의 금품수수를 인정했다. 교장, 교사 중 사립학교 교원 임용시 비리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60.5%에 이르렀으며 그 밖에 학교 운영과 관련해 교육위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로부터 압력이 있다는 응답이 73.6%나 되는 등 부패는 이미 일상화돼 있다. 게다가 정권 말 누수현상까지 겹쳐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중이다.

    4년 전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교육비리 추방, 효율적 예산 운영, 인사개혁 등을 내걸고 ‘교육개혁 전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밀어붙인 교육개혁은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가. 시스템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구호만 남발한 개혁의 한계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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