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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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 지역 문화예술의 ‘쓸모’를 말하다

“언제까지 서울에서 순회공연 오기만 기다릴 텐가”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1-04-08 08: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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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시나리오도 썼고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했고 영화 제작자로도 살았고 공연 연출자로도 살았고 음반 기획자로도 살았고 소설가로도 잠깐 산 적이 있고 명리학자로도 살았고, 짧은 인생을 버라이어티하게 살았다. 나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을 뿐이다.”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 시절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같은 영화를 만든 강헌, 원고료에 넘어가 가수 김현식에 대한 글을 썼다 졸지에 음악평론가가 된 강헌, ‘자유’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같은 콘서트를 기획한 강헌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학창 시절 장래희망을 ‘월급 받지 않는 삶’이라고 써 교사에게 머리를 쥐어박히던 괴짜 강헌(59)이 2018년이 끝나갈 무렵, 나라 녹을 먹는 기관장(경기문화재단 대표)이 돼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을 때 이것이야말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2015년 그가 쓴 음악사 관련 책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어쩌면 2004년 대동맥박리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11년 만인 2015년 ‘명리(命理)’라는 사주 책을 들고 나타난 강헌을 마주할 때보다 더 놀라운 반전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프리랜서로 활동한 그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으로 월급 받는 삶을 선택하더니, 지난해 말 경기문화재단 대표 연임에 성공해 기관장 경력을 4년으로 늘렸다. 올해는 직함도 하나 더 얹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문화재단이 회원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한광연) 제5대 회장(임기 2년)이다.


    ‘집으로 배달되는 예술상자’ 빅히트 비결

    집으로 배달되는 예술상자. [사진 제공 · 경기문화재단]

    집으로 배달되는 예술상자. [사진 제공 · 경기문화재단]

    지난해 경기문화재단이 기획한 ‘코로나19 예술백신 프로젝트’가 야구로 치면 사이클 히트(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치는 것)를 했다. 경기도 내 1010명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최대 200만 원의 예술 활동 자금을 지원한 ‘백만 원의 기적’, 취소되거나 연기된 공연과 다양성 영화를 야외무대에 올려 2000여 명 도민에게 감상 기회를 제공한 ‘드라이빙 시어터’, ‘코로나 의료진 버스킹’ ‘한 사람을 위한 연주’ 등 아이디어와 디테일이 빛나는 프로그램마다 도민들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예술재료가 담긴 상자가 배달되고 체험자는 이것을 가지고 비대면으로 전문가 강의를 들으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집으로 배달되는 예술상자’는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입소문이 나면서 3차 때는 개시 10분 만에 소진되기도 했다. 그 결과 경기문화재단은 지난해 경기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비결을 묻자 강 대표는 ‘감동’이라는 두 글자를 꺼냈다. 



    “문화재단은 정부출연기관이다. 재단 직원은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다. 직장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다. 그만큼 문화재단 위상이 명확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 지역의 문화부 구실을 한다. 문화행정 특성상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료주의 병폐로부터 벗어나려면 민간의 창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 직원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여기로 출근하는가. 당신은 왜 월급을 받는가. 예술은 우리에게 빵을 주지도, 직장을 주지도 못하는 데 왜 존재해야 하는가. 사회는 왜 예술을 수호해야 하는가. 답은 감동이다. 감동은 곧 ‘예술의 쓸모’다. 우리 고객은 경기도민과 예술가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장으로 가니 문화적 야성 회복

    강 대표는 재단에 부임하면서 경기(京畿)라는 이름부터가 숙명적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지명이 ‘도성의 경계’이니 영원히 주변부일 수밖에 없다. 경기도는 위로는 접경지 연천에서 아래로는 대부도까지 도·농·어·산촌에 서울보다 많은 1370만 인구가 산다. 여기엔 101개국 출신 다국적 시민들도 있다. 경기도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기도의 문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 재단이 수원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경기 북부지역으로 발령 나면 사표를 쓰겠다고 야단이다. 그런 사표는 1초도 고민 안 하고 수리했다.” 

    그는 문화행정이라는 보편성에 경기도라는 특수성을 추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문화적 야성 회복’이라고 명명했다. 

    “재단 직원들에게 ‘우리는 경기문화재단이다’를 강조했다. 수원이 아니라 경기도 전체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부임 첫해 수원 도심 한복판에 있던 재단을 수원 외곽 옛 서울대 농대 교정에 조성된 상상캠퍼스로 옮겼다. 그것도 기존 작가들이 있는 건물 사이사이 빈 공간을 찾아내 4개 동에 걸쳐 입주했다. 업무 효율성? 물론 떨어진다. 그 대신 문화예술 창작인과 그것을 향유하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문화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문화적 야성 회복의 시작이다.” 

    최근 5년 사이 기초자치단체에까지 문화재단 설립 붐이 일어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22개에 지역문화재단이 만들어졌고, 올해 안에 3~4개가 추가로 설립될 예정이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광역재단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경기문화재단은 도내 재단들을 네트워킹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이른바 ‘컬처로드’다. 

    “문화재단으로 출범했지만 정작 문화행정이 무엇인지, 회계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기초적인 업무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곳이 허다하다. 그건 우리가 교육하고 지원해주면 된다. 나아가 규모가 너무 작아 독자적인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기 어려운 재단들끼리 공동으로 콘텐츠를 개발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뮤지컬 한 편 만드는 데 20억 원이 들면 재단 5곳이 3억 원씩 출자하고 경기도가 5억 원을 보태 공동콘텐츠로 개발한 뒤 순회공연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컬처로드’다. 언제까지 서울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오기만 기다릴 텐가.” 

    한광연 회장이 된 후 그는 ‘컬처로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문화재단 종사자 수가 정규직만 5000명이 넘는다. 새로운 문화 생산 및 유통의 테크노크라트들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지역별 예술인 데이터베이스가 없다. 강원, 경기, 광주에서 하고 있으나 표준화되지 않았다. 예술인 데이터베이스를 표준화하는 사업과 지역별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스 연계 운영, 로컬리티를 바탕으로 한 공연상품 개발 등 한광연을 통해 할 일이 무척 많다. 2년 내 서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상품이 전국으로 유통되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 나는 성과주의자다.”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는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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