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살 길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 24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5·18단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김 위원장은 재보궐선거 다음 날인 4월 8일 국민의힘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후 재추대론이 제기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떠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 전 총장을 지렛대로 삼아 범야권 정계개편을 이루려는 의도로 보인다. ‘왝 더 독(wag the dog)’ 전략이다. 꼬리를 잡고 몸통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몸값이 훌쩍 뛰었다. 입당하겠다고 하면 감지덕지해야 할 국민의힘이지만 구(舊) 친이계와 구 친박계 출신이 대부분인 국회의원들이 떨떠름해 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김 위원장은 이들과 결별해야 국민의힘 집권의 길이 열린다고 본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직후의 광주행도 같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호남 공략 행보인 동시에 당내 반대세력을 제압하려는 움직임이다. 야당이 살 길은 여기에 있다는 강한 암시다.
단일화 협상이 이뤄지던 3월 18일 김무성 전 의원,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김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이 단일화를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3월 25일 사퇴 주장 대열에 합류했다. 모두 국민의힘 대표를 하고 싶을 법한 이들이다. 김 위원장은 이들을 압도하길 원할 것이다.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윤 전 총장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윤 전 총장과 함께하며 국민의 뜨거운 지지라는 파도를 타려할 것이다.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오른 뒤 윤 전 총장 입당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으나 제3지대에서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윤 전 총장과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편이 훨씬 극적이다. 김 위원장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총의로 대표 추대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대표로 추대되지 않더라도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나는 파리가 아니다”
3월 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 전 장관 역시 최근 윤석열 띄우기에 열심이다. 김 위원장과 킹메이커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윤 전 장관은 3월 17일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 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강연에서 “안철수는 국민이 정치인으로 보지 않았지만 윤석열은 검찰총장이 정치를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현실 정치에 휘말렸다. 총장으로 있으면서 법치와 헌법 정신, 국민 상식 등을 이야기했는데 메시지 내용과 타이밍을 볼 때 정치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결론은 같다. 윤석열은 안철수와 달리 정치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윤 전 총장의 선택만 남았다. 김종인이냐, 윤여준이냐, 김종인+윤여준이냐.
다른 선택지도 있다. 킹메이커를 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도 있을 것이고 ‘찐 책사’도 있을 것이다. 차기 국민의힘 대표를 맡을 인물 역시 윤 전 총장에게 입당을 제안할 것이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모든 대표 후보자가 윤 전 총장 영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국면 때 김 위원장의 반대편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이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힘 대표 자리를 노리는 인물만 10명 이상이다.
윤 전 총장은 선택해야 한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오히려 애로를 겪을지 모른다. 선택의 기준은 명확하다. 대통령에 당선시켜 줄 인물이다. 전적 면에서는 김 위원장이 우세하다. 판세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고 목표 달성을 위해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정치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이를 다시 증명했다. 그가 손을 먼저 내밀었다. 윤 전 총장은 그 손을 잡을까. 정치권에 들어선 이후 내릴 첫 정무적 판단이 될 이 결정도 윤 전 총장의 정치력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