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솔솔 불 때 따끈한 커피 한 잔만큼 좋은 것도 없다. 커피 대신 코코아도 좋고, 은근히 우려낸 녹차나 홍차도 좋다. 술 마신 다음 날 달달한 꿀물 한 잔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서 온 비싼 보이차를 탐하거나 비싼 루왁 커피를 탐하는 이도 있지만, 따끈한 보리차 한 잔으로도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한다. 그러고 보면 우린 추울 땐 춥다고 마시고, 더울 땐 덥다고 마신다. 내용물이나 온도 차이만 있을 뿐 사시사철 우리는 물을 마신다.
기껏 비싼 원두를 사놓고 수돗물로 커피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물로 커피를 내려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문제없는 좋은 물이지만 평소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적어도 물을 곧바로 마실 때는 생수를 찾는다. 카페에서 물을 따로 주문하는 것도 낯설지 않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리스트와 함께 워터리스트를 주는 경우도 종종 본다.
과거엔 손님을 접대할 때 물 한 잔은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이젠 다르다. 고급 생수는 어떤 음료수보다 더 비싸고 귀하다. 이제는 좋은 물 한 잔이 더 좋은 손님 대접이 된 시대다. 오늘의 작은 사치는 물이다. 늘 마시고, 누구나 마시지만, 싸고 흔해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빙하수부터 해양심층수까지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 생수 중에선 에비앙(Evien)이 유명하고 가장 많이 팔린다. 에비앙은 프랑스 브랜드이지만 스위스 제네바 지역 광천수다. 국내에 들어오는 프랑스 물로는 볼빅(Volvic)이 대표적이다. 노르웨이에서 온 빙하수라는 보스(Voss)도 있고, 영국에서 온 티난트(Ty Nant), 독일에서 온 게롤슈타이너(Gerolsteiner)도 있다. 수입 생수는 물맛도 물맛이지만 병이 예뻐서 사는 이도 꽤 있다. 원가로 따지면 물값보다 병값이 더 비쌀 거다. 미네랄 워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빙하수나 해양심층수 등 별의별 물을 다 찾는다.
프랑스의 천연 탄산수 페리에(Perrier)나 이탈리아의 산 펠레그리노(San Pellegrino) 같은 스파클링 워터도 즐겨 마신다.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마시고픈 욕구를 달랠 때 찾게 된다. 특히 한여름 짜릿한 목 넘김과 청량감에선 스파클링 워터만한 게 없다. 목을 타고 넘어가며 탄산이 쏘는 그 맛이 스파클링 워터를 찾는 이유일 거다. 국산으로는 초정탄산수나 트레비 등이 있다. 아예 맹물에 탄산을 직접 집어넣을 수 있는 기계도 판다. 이 기계는 홈쇼핑에서 히트상품이 될 정도로 지난해와 올해 꽤 팔렸다.
화산섬에서 나오는 물도 있다. 피지 섬에서 온 피지(Fiji)워터와 제주에서 나는 삼다수다. 같은 화산섬이지만 물값은 좀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는 삼다수를 참 좋아한다. 국산 생수 중에선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수요는 많다. 국산 생수도 종류가 다양한데, 대형마트의 PB상품도 있고 수원지도 강원, 경기, 충청 등으로 다양하다.
과거에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우리나라 생수 역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생수 개발은 75년 9월부터 시작됐지만 공식적으로 생수를 처음 판매한 건 1988 서울올림픽 때부터다. 정부는 서울올림픽 당시 선수용으로 공급하고자 처음 생수를 판매했고, 올림픽이 끝나고 생수 시판이 자칫 ‘수돗물 정책의 포기’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근거 법률을 폐지했다. 돈 있는 사람만 생수를 사 먹게 돼 국민 간 위화감이 조성되고 지하수 고갈과 환경오염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는 논리로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내려져 94년 3월부터 생수 국내 시판이 허용됐다.
이제는 물을 사 먹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대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라, 좀 더 좋은 물, 좀 더 귀한 물, 좀 더 비싼 물을 가려가며 마신다. 한 병에 수만 원을 호가하는 물도 있다. 비싼 게 좋은 거라는 프리미엄 제품 선호 심리도 작용한다. 그래서 수입 생수는 수입 원가보다 최대 8배까지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쓰는 물은 넘치는데 마시는 물은 ‘글쎄’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 지하에 있는 워터 바(bar)에서는 수십 종의 수입 생수를 파는데, 워터소믈리에가 물을 골라주기도 한다. 롯데백화점도 최근 워터 바를 열었다. 내가 워터 바를 처음 본 건 7년 전쯤 프랑스 파리에서였는데, 바 전체에서 물을 전문으로 팔고 있었다. 선택한 물을 그냥 마셔도 되고, 워터 바에서 그 물로 커피를 내려주거나 음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직 국내에는 이런 형태의 워터 바가 없지만, 언제든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술도 커피도 많이 마신다. 술 먹는 건 세계적으로 손꼽히고, 가장 자주 먹는 식품 가운데 1위가 커피일 정도다. 물 대신 물 비슷한 걸 꽤 섭취하는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음료수라도 좋은 물만 못할 때가 많다. 과거에는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게 익숙지 않아 선뜻 물은 못 사도 음료수는 잘 샀다. 이젠 달라졌다. 정수기 시장이 커진 것도, 국내 생수시장이 커진 것도 다 마시는 물 덕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은 적다.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이니, 많이 마시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다. 특히 피부 관리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물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물을 대하는 태도는 자못 이중적이다. 주위에 늘 있어서인지 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물 아까운 줄도 모른다.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 기준 서울시민의 물 사용량 자료를 보면, 1인당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286ℓ였다. 이 양이 감이 안 잡힌다면 2짜리 페트병 143병을 쌓아뒀다고 생각해보라. 그 엄청난 양의 물을 우리가 하루에 쓴다는 거다.
물 소비량은 많지만 정작 물 섭취량은 적다. 인터넷 취업정보 포털 잡코리아가 조사한 ‘직장인 하루 물 섭취량’ 보고서를 보면, 1인당 평균 물 섭취량은 200㎖ 기준 5.5잔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성인의 하루 물 섭취 권장량은 200㎖ 기준으로 8~10잔(최대 2ℓ)이니 우리는 그 절반 정도만 마시는 셈이다.
하루에 2ℓ짜리 페트로 143병의 물을 쓰면서 그중 마시는 건 반 병 정도다. 이건 물 낭비로 봐야 할지 물 절약으로 봐야 할지 애매하다. 적어도 물 마시는 일에선 사치를 부려도 되지 않겠나. 하루에 2ℓ짜리 페트 1병만 마시면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스러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물을 골라 마시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게 아닐까.
기껏 비싼 원두를 사놓고 수돗물로 커피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물로 커피를 내려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문제없는 좋은 물이지만 평소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적어도 물을 곧바로 마실 때는 생수를 찾는다. 카페에서 물을 따로 주문하는 것도 낯설지 않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리스트와 함께 워터리스트를 주는 경우도 종종 본다.
과거엔 손님을 접대할 때 물 한 잔은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이젠 다르다. 고급 생수는 어떤 음료수보다 더 비싸고 귀하다. 이제는 좋은 물 한 잔이 더 좋은 손님 대접이 된 시대다. 오늘의 작은 사치는 물이다. 늘 마시고, 누구나 마시지만, 싸고 흔해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빙하수부터 해양심층수까지
국내 판매되는 수입 생수 중 가장 유명한 에비앙(왼쪽)과 탄산음료를 마시고픈 욕구를 달랠 때 찾게 되는 천연 탄산수 페리에.
프랑스의 천연 탄산수 페리에(Perrier)나 이탈리아의 산 펠레그리노(San Pellegrino) 같은 스파클링 워터도 즐겨 마신다.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마시고픈 욕구를 달랠 때 찾게 된다. 특히 한여름 짜릿한 목 넘김과 청량감에선 스파클링 워터만한 게 없다. 목을 타고 넘어가며 탄산이 쏘는 그 맛이 스파클링 워터를 찾는 이유일 거다. 국산으로는 초정탄산수나 트레비 등이 있다. 아예 맹물에 탄산을 직접 집어넣을 수 있는 기계도 판다. 이 기계는 홈쇼핑에서 히트상품이 될 정도로 지난해와 올해 꽤 팔렸다.
화산섬에서 나오는 물도 있다. 피지 섬에서 온 피지(Fiji)워터와 제주에서 나는 삼다수다. 같은 화산섬이지만 물값은 좀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는 삼다수를 참 좋아한다. 국산 생수 중에선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수요는 많다. 국산 생수도 종류가 다양한데, 대형마트의 PB상품도 있고 수원지도 강원, 경기, 충청 등으로 다양하다.
과거에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우리나라 생수 역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생수 개발은 75년 9월부터 시작됐지만 공식적으로 생수를 처음 판매한 건 1988 서울올림픽 때부터다. 정부는 서울올림픽 당시 선수용으로 공급하고자 처음 생수를 판매했고, 올림픽이 끝나고 생수 시판이 자칫 ‘수돗물 정책의 포기’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근거 법률을 폐지했다. 돈 있는 사람만 생수를 사 먹게 돼 국민 간 위화감이 조성되고 지하수 고갈과 환경오염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는 논리로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내려져 94년 3월부터 생수 국내 시판이 허용됐다.
이제는 물을 사 먹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대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라, 좀 더 좋은 물, 좀 더 귀한 물, 좀 더 비싼 물을 가려가며 마신다. 한 병에 수만 원을 호가하는 물도 있다. 비싼 게 좋은 거라는 프리미엄 제품 선호 심리도 작용한다. 그래서 수입 생수는 수입 원가보다 최대 8배까지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쓰는 물은 넘치는데 마시는 물은 ‘글쎄’
국내에서도 다양한 수원지의 물을 판매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 제주 ‘삼다수’, 농심 ‘백산수’.
우리나라 사람은 술도 커피도 많이 마신다. 술 먹는 건 세계적으로 손꼽히고, 가장 자주 먹는 식품 가운데 1위가 커피일 정도다. 물 대신 물 비슷한 걸 꽤 섭취하는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음료수라도 좋은 물만 못할 때가 많다. 과거에는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게 익숙지 않아 선뜻 물은 못 사도 음료수는 잘 샀다. 이젠 달라졌다. 정수기 시장이 커진 것도, 국내 생수시장이 커진 것도 다 마시는 물 덕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은 적다.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이니, 많이 마시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다. 특히 피부 관리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물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물을 대하는 태도는 자못 이중적이다. 주위에 늘 있어서인지 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물 아까운 줄도 모른다.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 기준 서울시민의 물 사용량 자료를 보면, 1인당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286ℓ였다. 이 양이 감이 안 잡힌다면 2짜리 페트병 143병을 쌓아뒀다고 생각해보라. 그 엄청난 양의 물을 우리가 하루에 쓴다는 거다.
물 소비량은 많지만 정작 물 섭취량은 적다. 인터넷 취업정보 포털 잡코리아가 조사한 ‘직장인 하루 물 섭취량’ 보고서를 보면, 1인당 평균 물 섭취량은 200㎖ 기준 5.5잔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성인의 하루 물 섭취 권장량은 200㎖ 기준으로 8~10잔(최대 2ℓ)이니 우리는 그 절반 정도만 마시는 셈이다.
하루에 2ℓ짜리 페트로 143병의 물을 쓰면서 그중 마시는 건 반 병 정도다. 이건 물 낭비로 봐야 할지 물 절약으로 봐야 할지 애매하다. 적어도 물 마시는 일에선 사치를 부려도 되지 않겠나. 하루에 2ℓ짜리 페트 1병만 마시면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스러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물을 골라 마시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