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존슨의 초상’, 조슈아 레이놀즈, 1772년, 캔버스에 유채, 75.6×62.2cm,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닥터 존슨은 일반인에게는 ‘영국인은 모였다 하면 날씨 이야기만 한다’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도 싫증난 것’ 같은 재치 있는 문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문학에서 존슨이 남긴 공적은 적잖다. 박학하고 다재다능한 문필가였던 그는 1755년 최초로 영어사전을 편찬해 영어를 현대 언어로 완성한 인물로 손꼽힌다.
물론 존슨 이전에도 영어사전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사전이라는 것들은 단어 뜻을 설명해놓은 핸드북 정도에 불과했다. 영국 런던 인쇄업자들은 잘못된 표기 때문에 인쇄비를 더 많이 부담해야 했고, 제대로 된 학술 논문은 라틴어나 프랑스어로만 쓰였다. 점점 더 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모여들고 최초의 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한 1700년대 초반 런던에서는 제대로 된 영어사전, 즉 용례가 풍부하고 어휘 수가 많으며 당대 영어를 집대성해놓은 사전의 필요성이 커져갔다. 다만 사전 편찬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누가 지휘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이 사전 편찬의 책임자로 지목된 이가 바로 존슨이다. 그는 당시 여러 주간지와 팸플릿에 글을 실어 생계를 유지하던 칼럼니스트였다. 대학을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고전학자 못지않은 박학다식함에 재치와 대단히 빠른 필력까지 갖춘 그는 사전 편찬 책임자로 알맞았다. 1746년 선금으로 1575파운드를 받고 작업에 착수한 존슨은 6명의 조수와 함께 9년 만인 1755년 사전 편찬을 마쳤다. 4만2773개 단어와 11만4000여 개 인용문이 실린 방대한 양이었다. 엇비슷한 규모의 프랑스어 사전은 편찬에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사전 작업 도중에도 존슨은 생계를 위해 잡지 기고를 계속했다고 하니, 그는 천재였음이 틀림없다.
사전은 무척 잘 팔렸지만 사전 편찬 사례비를 선금으로 받아 다 써버린 존슨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계속 글을 써야 했다. 이런 처지를 동정하는 이들의 도움으로 그는 1762년부터 영국 왕실 연금을 받게 됐는데, 이 소식에 존슨은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편찬한 사전에 ‘연금’의 뜻을 이렇게 써 넣었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반역을 막기 위해 국가가 고용한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지불하는 돈.’
어쨌든 연금 덕에 생활고에서 벗어난 존슨은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릴 수 있었고, 그 결과 1765년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인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간할 수 있었다. 존슨은 오늘날 영어권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인용되는 문필가로 손꼽힌다.
조슈아 레이놀즈가 그린 존슨의 초상화는 지독하게 많은 글을 쓰는 바람에 근시가 되고 등도 굽어버렸다는 존슨의 신체적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상화 속 존슨은 두툼한 입술에 큰 덩치를 가진 추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간다. 레이놀즈는 존슨의 사교 클럽, 당대 최고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였던 모임의 일원이었다. 그 속에서 언제나 재치 넘치는 존슨의 입담에 감탄했을 것이다. 레이놀즈는 이 외에도 사전 편찬 직후 좀 더 젊은 존슨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1756년 그렸는데, 이 작품은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