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 의원(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차기 지도부 임기는 2년. 2016년 총선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나아가 총선에서 주도권을 잡은 세력은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 경선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의원들은 물론이고 원외 인사까지 전대에 부쩍 관심을 갖는 이유다.
전대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는 지도부 체제와 선출 방식이 꼽힌다. 또 후보들의 합종연횡 가능성도 있다. 486(40대, 현재는 50대인 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정치인을 중심으로 ‘50대 기수론’이 부상할 기류도 보인다. 그런데 전대 판 자체를 바꿀 핵심 요소는 바로 문재인 의원의 출마 여부다. 그가 출마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전대 구도 자체가 흔들릴 전망이다.
#문재인, 프레임의 변수
전대 유력 변수로 문 의원이 꼽히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그는 유력 대선주자이자 ‘계파 구심점’으로 불린다. 문 의원은 전대에 출마하려는 다른 주자들과 ‘체급’이 다르다. 전대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 중 사실상 유일하게 문 의원만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된다. 그는 2012년 대선후보였고, 이후 올해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불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문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는 순간 전대는 단순히 야당 지도부를 선출한다는 의미를 넘어, 차기 대선을 향한 예비 레이스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럴 경우 다른 ‘선수’들이 아무리 당내 세력을 확보해 당원 선거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 해도, 인지도와 대중성을 반영한 여론조사 부분에서 문 의원을 뛰어넘을 개연성은 낮아진다.
따라서 전대를 앞두고 ‘당권·대권 분리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새정치연합 당헌 당규에 따르면 대선에 출마할 인물은 1년 전 당직을 그만둬야 한다. 이를 내세워 일부 정치인은 “유력 대선주자인 문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대선 출마를 위해 지도부 임기 도중 사퇴해야 한다”며 “아예 전대에는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선주자에게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투쟁과 양보 등 정치 최전선에서 뛰어야 할 야당 대표를 3년이나 남은 대선후보가 맡게 되면 안철수 전 대표처럼 상처를 받기 쉽고, 만약 대권후보가 당권에 도전하면 다른 대권후보들이 그대로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 역시 유력 대선주자인 문 의원의 불출마를 주장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선을 그었다. 11월 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이를테면 문재인 비대위원이 대권후보니깐 당권에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문 비대위원이 대권에 나간다는 보장이 있느냐. 반대로 정세균 비대위원은 대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느냐”면서 “당헌대로 1년 전 그만두면 된다. 2년 후 이야기를 미리 할 순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물리적 시간과 여론조사 지지율 등을 감안할 때 당권과 대권의 분리 명분만으로 문 의원의 전대 출마를 원천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강하게 등장한 기류가 바로 ‘친노(친노무현) 프레임’이다.
#다시 불거진 계파 논란
‘비노(비노무현)’ 정치인들은 ‘친노의 패권정치’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문 의원을 견제하고 있다. 문 의원이 당대표까지 되면 이런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전대에 문 의원이 나서는 순간 ‘친노 대 비노’의 전선이 그어지고, 그가 당권까지 잡으면 새정치연합이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주장은 당장 두 달 전 문희상 비대위 출범 초반부터 제기됐다. ‘비노’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은 문 의원과 정세균 의원의 비대위 합류 등에 대해 ‘친노 일색’이라고 비판했다. 주목할 점은 ‘비노’ 세력이 개별적으로는 힘이 약하나, ‘친노’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때는 느슨한 연합 전선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부산 출신이지만 ‘주류 친노’와 거리가 있는 조경태 3선 의원, 동교동계의 권노갑 상임고문, 수도권 4선 중도파 김영환 의원 등이 당시 목소리를 높여 문 의원의 비대위 합류를 비판했다. 이들은 비록 성향은 다르지만 전대에서 ‘친노 문재인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고리로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전대가 다가올수록 ‘문재인 비토 기류’는 노골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이른바 ‘문재인 필패론’과 ‘신당론’이 등장한 게 그것.
새정치민주연합 조경태 의원(왼쪽)과 정동영 상임고문.
호남 출신 일부 정치인도 유사한 논리로 ‘신당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전주 출신 정동영 상임고문은 “당내 특정 계파가 당권을 장악하면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게 호남 여론”이라고 주장한다. 당헌 당규를 적용해 문 의원의 전대 출마를 차단하기 어렵다면, ‘프레임 전쟁’을 통해 새로운 기류와 유리한 룰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선주자 없는 세력도 고민
‘문재인 비토론’에도 ‘문재인 구원투수론’ 기류가 여전히 존재한다. ‘비노’ 세력 중 문재인 대항마가 딱히 부상하지 않고,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문 의원의 지지율이 여전히 상위권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반기문 영입카드’도 당장 내년 2월 전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당 상황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에 비유하고, 이를 차단할 현실적 대안이 대선주자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전후로 비교적 높은 상황에서 제1 야당이 맞설 강력한 무기가 바로 차기 대선주자라는 분석이다.
친노 대 비노 프레임과는 별개로, 세대교체론도 물밑에서 꿈틀댄다. 기존 지도부나 대선주자에 비해 젊은 50대 인물을 내세워 새로운 야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50대 기수론’과 더불어 거론되는 인물은 박영선 전 원내대표와 우상호, 이인영 의원 등이다. 만약 50대 기수론에 탄력이 붙는다면 72세 박지원, 64세 정세균, 61세 문재인 의원 등은 상대적으로 노년층으로 재분류된다.
하지만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한 구도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세대교체론이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역으로 야당 취약층에게 정서적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젊은 세대 잡기에 골몰하다 50대 이상의 중요성을 간과했는데, 이번 전대에서 나이 논쟁만 너무 부각하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후폭풍이 불 수 있다”고 말했다.
당권 경쟁이 달아오르는 것이 ‘집안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범야권 지지층은 2012년 총선과 대선, 올해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줄줄이 패배한 야당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밀어주고 싶은 마음과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을 거라는 우려가 공존한다”고 지적한다. 당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후진 집안싸움이 아니라, 미래 희망을 볼 수 있는 멋있는 경기가 돼야 한다는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