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코리아 나라장터 엑스포 홍보관. 매년 우수 조달기업이 참여한다.
공공행정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 관리하는 조달청은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이다. 정부투자기관, 지방자치단체에 물자를 구매, 공급하는 일은 물론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시설공사 계약 등도 담당한다. 그중에서도 정보보안 솔루션, 데이터베이스 관리 등을 포함하는 소프트웨어를 조달하는 게 주요 업무다. 현재 조달청은 공공부문에 공급되는 소프트웨어의 약 70%를 발주하고 있다. 민간 영역의 입찰과 계약, 가격 정책, 사업 수행 등을 주도한다.
그동안 공공부문 소프트웨어 발주를 둘러싸고 불공정한 관행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첫 번째 논란은 발주기관이 제안요청서에 특정 규격을 명시하거나 특정 업체에 유리한 평가기준을 내세우는 일이다. 기획재정부 예규에 따르면 물품 구매 입찰 시 특정 제품명과 규격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은 공공연히 지속돼왔다.
공공부문 S/W 70% 발주
계약 대상자에게 부당한 사항을 요구하는 발주기관의 불공정한 관행도 문제였다. 수요기관이 갑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업체에게 무상으로 추가 장비 납품, 추가 인력 투입 등을 요구하는 것.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따르면 2012년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을 수행하는 업체 111개사를 조사한 결과, 약 57% 업체가 협상 과정에서 발주기관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업체가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정착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수요기관이 상용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때 하드웨어, 응용 소프트웨어 등과 함께 통합 발주하면 보통 시스템통합(SI) 업체가 거래 상대자가 된다. 소프트웨어 업체가 발주기관과 직접 계약하지 못하고 시스템통합 업체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 협상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소프트웨어 업체는 불공정 거래의 피해자가 된다.
조달청에 따르면 7억 원 이상(지방자치단체 5억 원 이상)의 소프트웨어 사업에 사용되는 5000만 원 이상 행정업무용 소프트웨어와 GS, NEP 등 인증을 취득한 소프트웨어는 분리 발주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공공정보화 사업의 분리 발주 실적은 39%로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또한 발주기관의 거래 담당자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점도 불공정 거래를 낳는 이유가 되고 있다. 제안요청서에 요구사항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해 계약 이행 과정에서 갑자기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사업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 조달청 관계자는 “건축 사업은 설계와 시공이 분리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사업은 기획(설계)과 구현(시공)이 혼재돼 추진된다. 동일 기업이 기획과 구현을 모두 수행하면 사업 부풀리기 등의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분야별 전문화와 다른 기업과의 역할 분배 균형이 깨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행이 되풀이되면 국가 정책인 동반성장의 흐름을 방해할 뿐 아니라 한국의 IT 산업 전체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달청이 이번에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은 이유도 바로 이런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먼저 상용 소프트웨어 업체가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조달청이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을 통해 소프트웨어 업체와 직접 단가 계약을 하는 사례를 늘려가는 것이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서 조달청과 소프트웨어 업체가 상호 협상을 통해 단가를 정하고 수요기관이 업체와 별도 계약 없이 온라인상에서 제품 구매를 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선 소프트웨어의 분리 발주를 의무화하기 때문에 시스템통합 업체의 횡포를 피해 일정 단가를 보장받을 수 있다. 나라장터에 등록된 소프트웨어 업체는 지난해 173개에서 10월까지 204개로 늘었고 조달청은 업체의 등록을 더욱 장려할 예정이다.
불공정한 거래 관행 개선
9월 2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열린 e-발주지원 통합관리 시스템 조달업체 담당자 워크숍.
10월 8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과 구매업무협의체를 구성해 워크숍을 가졌다. ‘공공기관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발표한 이 자리에서는 입찰 및 계약과정에서 공공기관 임직원의 비리행위가 발생한 경우 해당 공공기관의 계약 업무를 이사회 의결을 거쳐 조달청에 2년간 위탁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비리와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운영 중인 가상화 서버를 활용한 전자입찰, 사전 규격 공개, 심사위원 자동 교섭 시스템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또한 조달 제도와 관행에 비리를 유발하는 요인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조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했다.
불공정한 발주 관행을 고치기 위해 분리 발주도 강화하고 있다. 먼저 조달을 요청받은 5억 원 이상(지방청 40억 원 이상) 정보화 사업에 대해 사전조사를 실시한 후 분리 발주해야 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는데도 형식적으로 제외 사유서를 제출하거나, 조달청의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단가가 등록됐는데도 통합 발주를 하는 경우가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
조달청에서 운영하는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소프트웨어 업체는 이곳에 등록하면 제값을 받고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
정보화 사업과 관련한 협상계약 전 과정을 온라인에서 시행하고 발주 지원을 투명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e-발주지원 통합관리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그 아래에 △제안요청서를 쉽고 명확하게 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안요청 지원 △업체별 비교평가를 정확하게 하는 평가 지원 △별도 제작비 없이 제안서 작성을 가능하게 하는 제안 지원 △사업 이행과 관련된 세부 항목을 관리하는 사업 관리 △시스템 운영 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IT 종합정보 활용 시스템 등 하위 시스템 5개가 마련된다. 조달청은 2016년 이 시스템이 최종 구축되면 발주기관의 요구사항 명확화, 업체 제안 비용 절감을 통해 기술력 중심의 평가 체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 개선 기대
업계는 이 같은 제도 개선을 대체로 환영하는 반응이다.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 티맥스 관계자는 “국산 소프트웨어는 브랜드 인지도가 큰 외산 소프트웨어와 경쟁할 때 기본적으로 불리하다. 특히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대면 평가 진행을 보장하고, 부득이 온라인 평가로 진행해야 하는 경우는 평가위원들에게 정부의 국산 소프트웨어 육성 정책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조달 단가가 등록된 국산 소프트웨어를 먼저 구매 지원하는 정책도 건전한 IT 산업 생태계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IT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시스템통합 업체의 하도급으로 거래하면서 충분한 가격을 받지 못하고 납품하는 경우가 많아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조건이 지속될 경우 벤처 또는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저하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의욕도 상실하게 된다”며“투명하고 공정한 제도 개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에서 품질 좋은 국산 소프트웨어 사용을 확대하고 이들의 건전한 경쟁을 장려해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은 불공평한 거래 환경을 오히려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달청의 제도 개선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앞으로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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