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신해철 씨 사망사건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로 의심될 만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 측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사진)의 말이다. 신해철 씨를 잃은 것은 불행이지만, 의료사고로 생명을 잃거나 2차 상해를 입은 환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배울 게 있다는 뜻이다. 안 대표는 2011년 사망한 중견배우 박주아 씨 사건을 반면교사의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신우암 진단을 받고 로봇수술을 받은 박씨는 십이지장에 2.5cm 천공이 생겨 수술 직후부터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수술 종료 후 25시간이 지난 뒤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실시해 천공을 확인했고, 응급수술은 그로부터 5시간 후 이뤄졌다. 박씨는 수술 한 달 만에 세상을 떴다. 박씨 유족은 고인이 사망한 지 두 달여가 지난 뒤 의료진을 형사고소했지만, 검찰은 2012년 12월 의료진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했다.
의사들의 ‘제 식구 감싸기’
경찰청이 제출한 201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사고의 형사소송 건수는 2009년 393건, 2010년 492건, 2011년 522건, 2012년 588건, 그리고 지난해 569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민사소송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1101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하지만 이 중 일부라도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경우는 30% 미만, 사망 원인을 밝혀내고 승소한 경우는 2%도 되지 않는다. 안 대표는 이에 대해 “소송을 시작하면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환자 측이 입증해야 하는데, 의료 분야가 워낙 전문 분야라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의사들의 ‘제 식구 감싸기’로 진실 규명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불리한 환자 측을 돕고 의료사고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정부는 2012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을 설립했다. 환자 측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전 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의료분쟁조정제도를 활용하면 소송비를 절약하고 소송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해도 병원 측이 거부하면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경우 소송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중재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발로 뛰고 애쓰는 것은 환자 측 몫이다. 안 대표는 이를 위해 수술이나 병원 시술 등을 받은 뒤 이상 증세가 발생하거나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가장 먼저 의무 기록지를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의무 기록지는 진료 및 시술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병원에 요청하면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돼 있다. 안 대표는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의사도 경황이 없어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다 사고가 일어나면 의무 기록지를 조작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의무 기록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쪽당 100~200원의 비용이 드는데, 분량이 많아 비용이 부담될지라도 진실 규명에 필수 자료인 만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뒤엔 수술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찰에 증거보전신청을 해야 한다. 증거보전신청이 빠르게 이뤄지면 압수수색이 가능해 증거물 훼손 가능성이 줄어든다.
부검신청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시신을 훼손하는 부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밝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으면 장례를 치르지 말고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안 대표가 고 신해철 씨 사건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해철 씨 유족은 사망 후 빠르게 의무 기록지를 확보했고, 경찰의 압수수색도 발 빠르게 이뤄진 편이며, 장례 직전 부검을 실시해 천공 위치와 크기 등도 확인했다.
안 대표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 증상이 발생한 순간부터 병원에서의 처치 과정과 의문점 등을 상세히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록은 날짜별로 최대한 상세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환자 측 기록에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록이 남아 있으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좀 더 명확하게 앞뒤 정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관계자들도 이를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만약 기록이 없다면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즉시 기억을 최대한 모아 기록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뒤죽박죽되고 정황을 정확히 정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의사를 면담해 대화를 녹음해두거나 간병인 혹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 보호자 등을 증인으로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폭언, 협박 등 절대 금물
또한 그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뒤 바로 소송절차를 밟기보다 중재원, 한국소비자보호원 같은 기관이나 환자단체 등 관련 시민단체를 찾아 대처법에 관한 조언을 얻고 소송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의료분쟁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형사소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잘못에 대해 벌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민사소송에 비해 진행이 신속한 편이라 환자 가족이 소송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죄추정원칙’ 때문에 혐의가 100%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의료진이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또한 환자가 확보한 녹취물 등도 제작 과정에 불법이 있으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지식을 갖고 있고, 무죄 판결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의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가급적 민사소송을 권합니다.”
안 대표의 말이다. 그는 의료사고 발생 시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으로 의료진에 대한 폭언 및 폭행, 협박, 명예훼손적 발언 등을 꼽았다. 이는 상황을 환자 측에 불리한 쪽으로 몰 뿐 아니라 종종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케 하는 상황마저 초래한다고 한다. 실제로 의료사고 피해자이면서도 업무방해, 폭행, 명예훼손죄 등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가 적잖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망사건이 아니라면 병원 측과 실랑이를 하기보다 빨리 의무 기록지를 확보한 뒤 병원을 옮기는 게 좋다. 문제 발생을 알면서도 병원에서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머물러 있다 보면 병원 측에서 기록을 조작하고 책임을 피할 방법을 생각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병원을 옮길 때는 새로운 병원 쪽에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하기보다 치료가 잘 안 돼 새로운 진료를 받아보려 한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의료사고라고 밝히면 책임질 일이 생길까 봐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사진)의 말이다. 신해철 씨를 잃은 것은 불행이지만, 의료사고로 생명을 잃거나 2차 상해를 입은 환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배울 게 있다는 뜻이다. 안 대표는 2011년 사망한 중견배우 박주아 씨 사건을 반면교사의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신우암 진단을 받고 로봇수술을 받은 박씨는 십이지장에 2.5cm 천공이 생겨 수술 직후부터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수술 종료 후 25시간이 지난 뒤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실시해 천공을 확인했고, 응급수술은 그로부터 5시간 후 이뤄졌다. 박씨는 수술 한 달 만에 세상을 떴다. 박씨 유족은 고인이 사망한 지 두 달여가 지난 뒤 의료진을 형사고소했지만, 검찰은 2012년 12월 의료진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했다.
의사들의 ‘제 식구 감싸기’
경찰청이 제출한 201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사고의 형사소송 건수는 2009년 393건, 2010년 492건, 2011년 522건, 2012년 588건, 그리고 지난해 569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민사소송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1101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하지만 이 중 일부라도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경우는 30% 미만, 사망 원인을 밝혀내고 승소한 경우는 2%도 되지 않는다. 안 대표는 이에 대해 “소송을 시작하면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환자 측이 입증해야 하는데, 의료 분야가 워낙 전문 분야라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의사들의 ‘제 식구 감싸기’로 진실 규명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불리한 환자 측을 돕고 의료사고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정부는 2012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을 설립했다. 환자 측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전 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의료분쟁조정제도를 활용하면 소송비를 절약하고 소송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해도 병원 측이 거부하면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경우 소송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중재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발로 뛰고 애쓰는 것은 환자 측 몫이다. 안 대표는 이를 위해 수술이나 병원 시술 등을 받은 뒤 이상 증세가 발생하거나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가장 먼저 의무 기록지를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의무 기록지는 진료 및 시술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병원에 요청하면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돼 있다. 안 대표는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의사도 경황이 없어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다 사고가 일어나면 의무 기록지를 조작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의무 기록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쪽당 100~200원의 비용이 드는데, 분량이 많아 비용이 부담될지라도 진실 규명에 필수 자료인 만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뒤엔 수술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찰에 증거보전신청을 해야 한다. 증거보전신청이 빠르게 이뤄지면 압수수색이 가능해 증거물 훼손 가능성이 줄어든다.
부검신청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시신을 훼손하는 부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밝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으면 장례를 치르지 말고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안 대표가 고 신해철 씨 사건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해철 씨 유족은 사망 후 빠르게 의무 기록지를 확보했고, 경찰의 압수수색도 발 빠르게 이뤄진 편이며, 장례 직전 부검을 실시해 천공 위치와 크기 등도 확인했다.
안 대표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 증상이 발생한 순간부터 병원에서의 처치 과정과 의문점 등을 상세히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록은 날짜별로 최대한 상세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환자 측 기록에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록이 남아 있으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좀 더 명확하게 앞뒤 정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관계자들도 이를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만약 기록이 없다면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즉시 기억을 최대한 모아 기록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뒤죽박죽되고 정황을 정확히 정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의사를 면담해 대화를 녹음해두거나 간병인 혹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 보호자 등을 증인으로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폭언, 협박 등 절대 금물
10월 27일 사망한 가수 신해철 씨의 빈소. 신씨 유족은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규명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형사소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잘못에 대해 벌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민사소송에 비해 진행이 신속한 편이라 환자 가족이 소송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죄추정원칙’ 때문에 혐의가 100%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의료진이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또한 환자가 확보한 녹취물 등도 제작 과정에 불법이 있으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지식을 갖고 있고, 무죄 판결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의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가급적 민사소송을 권합니다.”
안 대표의 말이다. 그는 의료사고 발생 시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으로 의료진에 대한 폭언 및 폭행, 협박, 명예훼손적 발언 등을 꼽았다. 이는 상황을 환자 측에 불리한 쪽으로 몰 뿐 아니라 종종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케 하는 상황마저 초래한다고 한다. 실제로 의료사고 피해자이면서도 업무방해, 폭행, 명예훼손죄 등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가 적잖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망사건이 아니라면 병원 측과 실랑이를 하기보다 빨리 의무 기록지를 확보한 뒤 병원을 옮기는 게 좋다. 문제 발생을 알면서도 병원에서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머물러 있다 보면 병원 측에서 기록을 조작하고 책임을 피할 방법을 생각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병원을 옮길 때는 새로운 병원 쪽에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하기보다 치료가 잘 안 돼 새로운 진료를 받아보려 한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의료사고라고 밝히면 책임질 일이 생길까 봐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