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이 처음으로 병입한 1924년 빈티지 라벨.
작고한 전임 오너인 필리프 드 로쉴드는 1922년 약관의 나이에 양조장을 계승했다. 그는 파리에 거점을 두고 가끔씩 보르도에 내려오던 관행을 깨고 아예 보르도로 이주했다.
필리프는 와인 품질의 완벽성에 눈을 떴다. 종래의 와인 판매 방식에 수정을 가했다. 필리프 이전에는 와인을 통에 담아 팔았다. 샤토가 양조하고, 양조 과정이 끝나면 숙성과 상관없이 즉각 그 와인을 통에 담아 팔았던 것이다. ‘네고시앙’이라 부르는 중개상들은 그들의 창고에 와인을 쌓아두고 일정 기간 숙성시킨 다음 병에 담아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러니 와인의 숙성은 샤토가 아니라 중개상에게 달려 있었다.
와인의 숙성은 통 숙성과 병 숙성으로 구분된다. 병 숙성은 응당 소비자의 몫이다. 개봉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니까. 통 숙성은 창고의 조건에 달려 있다. 좋은 창고를 소유한 중개상들은 샤토만큼 품질 관리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모든 중개상이 샤토만큼 치밀하고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필리프는 방법을 바꿔 스스로 통 숙성을 마친 뒤 병에 담아 파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발효하고 숙성하고 일정 기간 샤토에서 와인을 저장한 뒤에야 비로소 병에 담았다. 그리고 라벨에 다음과 같이 인쇄했다.
‘Mis en bouteille au Chateau.’
이를 영어로 옮기면 ‘Put into bottle at Chateau’ , 즉 샤토에서 병입했다는 뜻이다. 1924년 빈티지부터 무통은 병에 담아 와인을 팔았다. 무통은 품질을 위해 들어가는 관련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매년 어떤 작가 어떤 그림 선정 궁금증
와인을 통으로 숙성하려면 창고가 필요하다. 병에 담으려면 기구도 필요하고 그에 따른 일손도 필요하다. 그런 일체의 비용과 시설을 들여서라도 우수한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다. 오늘날 샤토 병입의 선구자가 무통이다. 보르도 와인뿐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등의 와인도 지금은 거의 다 양조장 병입을 시행한다.
1945년은 무통 역사상 최고의 품질을 빚은 빈티지로 꼽힌다. 포도밭의 포도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잘 익었다. 필리프는 예외적으로 돋보이는 풍족한 빈티지를 축하하고, 또 승전을 기념할 목적으로 라벨의 도안을 새로이 의뢰했다.
승리의 브이를 크게 새기며 예술가로 하여금 디자인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아티스트 라벨은 오늘날 무통 와인 마케팅의 핵심이 됐다. 매년 어떤 작가의 어떤 그림이 선정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필리프가 헌정한 작가 명단은 걸출한 예술가로 가득하다. 그는 가문의 숙원이던 등급 상향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그해, 즉 1973년 빈티지에는 당대 최고 작가 피카소의 작품을 채택했다. 앤디 워홀, 타피에스, 후안 미로 등도 등장했다. 일본 작가도 두 사람이나 등장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작가는 아직 선택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때 파리에서 활동했던 김환기와 남관이 후보로 꼽힌다. 무통의 아트 마케팅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차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