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강기정 간사(왼쪽)와 한나라당 권경석 간사가 1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에서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뒤 악수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이자 당 대표 비서실장인 강기정 의원의 말이다. 재외국민에게 대통령선거와 총선 비례대표 및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권 등 참정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국민투표법, 주민투표법 개정안이 정개특위를 거쳐
2월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여야는 유·불리를 따지느라 비상이 걸렸다.
이번 법안 개정으로 투표권을 얻은 재외국민은 2007년 5월1일 기준으로 일시체류자 155만명, 영주권자 145만명 등 300만명에 달한다. 15대 대선 때 39만표 차, 16대 대선 때 57만표 차로 당락이 결정된 점을 감안한다면 재외국민의 투표권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법안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 여야 협의가 아닌 합의로 처리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 결과를 놓고 무척 부담스러운 눈치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은 여유로운 분위기다.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법률 개정안을 최초로 발의한 사람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다. 홍 원내대표는 17대 국회 때인 2004년 11월, 국적법과 함께 이번에 개정된 내용과 거의 유사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홍 원내대표 측은 2005년 9월에 발의한 재외동포법과 함께 이들 법안을 ‘홍준표 재외동포 3법’으로 칭했다. ‘재외동포(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해 2007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변호사가 바로 그다.
홍 원내대표가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에 이처럼 매달리게 된 것은 2004년 8월25일부터 9월12일까지 미국을 다녀온 직후부터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워싱턴 D.C, 애틀랜타 등 6개 도시에서 만난 재외국민들의 반응과 분위기가 홍 원내대표에게 뭔가 확신을 심어준 것. 정치인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한다. 특히 원대한 꿈을 꾸는 정치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 在美국민 한미 우호 바랄 것
홍 원내대표 측은 재외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할 경우 한나라당에 유리하리라는 확신이 있다. “재외국민 수가 가장 많은 곳이 미국이다. 미국에 체류 중인 국민 가운데는 아무래도 한미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나. 이는 정책적으로도 한나라당과 가깝다. 역대 대선을 보면 50만표 내외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향후 대선에서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홍 원내대표 측 관계자의 분석이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조사한 거주 지역별 재외국민 현황을 보면 미국에 체류 중인 국민은 46만명으로 해외 전체 일시체류자 155만명의 30%에 육박하며, 미국 영주권자는 73만명으로 해외 전체 영주권자 145만명의 절반에 달한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재외국민 가운데 미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 특히 미국 재외국민은 다른 국가의 재외국민에 비해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선거 투표율도 훨씬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만큼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대부분의 의원들은 홍 원내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다음은 정개특위 한나라당 간사 권경석 의원 측의 말이다.
“처음에는 한나라당에 유리하리라 생각하면서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법안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선거권을 부여할 재외국민의 범위를 축소하자는 견해였던 반면, 한나라당은 모든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보수성향의 재외국민이 많으리라는 논리에 근거가 미약하다. 재외국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호남향우회도 많고, 지역에 따라 성향과 관심 영역도 다르다.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실제 투표를 해봐야 알 것 같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보장해주는 법안에 반대하는 의원은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참정권 인정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 내 의원들의 전반적인 기류다.
재외국민 관련 법안이 통과됐지만 모든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외국 시민권자는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영주권자도 대선과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만 투표할 수 있다. 국내에 주민등록이 있는 해외 일시체류자와 국내 거소신고를 한 재외국민만 모든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 한인 차세대 대회’에 참석한 젊은 교포들.
“영주권자는 그 나라에서 5년 이상 장기간 체류한 사람들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우리나라를 떠난 사람들 아닌가. 그들 처지에서는 국내 정치나 선거에 관심을 갖기보다, 그 나라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지위 향상에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겠나. 당내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영주권자의 참정권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범위 제한하고픈 민주당의 답답한 속내
그는 “세금도 안 내고 국방의 의무도 지지 않는 영주권자에게 왜 투표권을 주느냐는 국민적 반감도 적지 않았다”며 “좀더 신중하게 논의해야 했는데,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난 상황에서 더 논의해봐야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안타깝지만 논의를 끝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과거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법안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던 전력을 굳이 재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차피 통과된 마당에 재외국민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유리한 분석도 내놓는다.
“일시체류자 155만명 중에는 깨어 있는 개혁적 성향의 유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영주권 소지자 145만명 가운데 선거권을 갖는 사람이 10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중에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민주당에 표를 던질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래도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 한 고위 당직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당이 향후 추진할 법안 개정 방향은 범위를 제한하는 쪽이다. 개정 법안을 보면 재외국민도 선거 19일 전까지 국내에 거소신고를 할 경우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도록 돼 있다. 민주당은 여기서 거소신고 기간을 강화해 최소한 거소신고한 지 6개월이 지나야 투표권을 인정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뻔히 불법 선거가 횡행하고, 투표율도 낮으며, 영주권자에게 국내 선거에 관심을 갖게 하면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을 텐데도 참정권을 인정해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는 강 의원의 말이 민주당의 답답한 속내를 대변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