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문파랑 펴냄/ 199쪽/ 8800원
그러나 일본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2006년 이후 몇 년째 베스트셀러 행진을 하고 있다. 재산 다툼과 한 여자를 둘러싼 갈등으로 친부 살해에까지 이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욕정 등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천착한 이 소설이 왜 뒤늦게 높은 판매율을 보이는 걸까. 이러한 사실이 붕괴된 교양이 갑자기 복권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낮 길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묻지마 살인’ 같은 실존적 범죄가 대중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현상과 연결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또 다른 소설 한 권이 새로운 고전 붐을 이끌고 있다. 통조림 가공용 게를 잡기 위해 캄차카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하쓰코호(號)라는 배의 어업노동자의 삶을 그린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문파랑)이다.“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를 타는 것이 목숨을 건 고행길을 암시하기에 이 한 문장만으로도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한다.
게공선을 타게 된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열네다섯 살짜리 하코다테 빈민굴의 아이들, 홋카이도 유바리 탄광에서 7년 동안 일하다가 가스 폭발로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서 하산한 광부, 봄이 되면 일이 없는 고무신회사 직공, 홋카이도 오지의 개간지나 철도시설 토목공사장 노동자로 팔려갔던 사람, 나무뿌리처럼 정직한 농사꾼 등 그야말로 막장에 이른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워낙 개성이 강해 한 덩어리로 뭉쳐질 것 같지 않은 이들 모두다.
하지만 현실의 동병상련은 그들을 결국 하나로 묶어놓는다. 노동자 한 사람의 가치를 담배 두 갑, 수건 한 장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자본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는 감독은‘인간 대여섯 마리’가 사라지는 것은 눈 깜짝하지 않지만 똑딱선 한 척은 매우 아까워한다. 지친 나머지 잠시 숨어 있던 학생을 선반 기계 쇠기둥에 묶어놓고는“이놈은 불충을 저지른 꾀병 환자이므로 포승줄 풀어주는 것을 금함”이라는 글을 적어 가슴에 걸어놓기도 한다. 급기야 각기병으로 앓다가 죽은 어부를 마대에 넣어 캄차카 바다에 수장해버리자 같은 처지가 되고 싶지 않은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태업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한때 선상을 점령하지만 자본권력과 결탁한 일본 해군에 의해 처절하게 제압당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두 번째 태업이 성공했다는 것, 태업이나 파업을 한 배가 하쓰코호뿐이 아니었다는 것, 두세 척의 배에서 ‘불온 선전’의 작은 책자가 나왔다는 것, 충견 노릇을 했던 감독은 회사로부터 땡전 한 푼 받지 못하고 해고됐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다양한 노동 계층으로 각각 파고들었다는 내용으로 정리된 ‘덧붙이는 말’로 끝난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다. 일본은 모더니즘 소설, 프롤레타리아 소설, 사소설이 3자 정립하다 산업화 과정에서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한때 중간문학이 발흥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 문학이 만개하고 있는데 새삼스럽게‘철 지난’프롤레타리아 소설이 상종가를 치는 셈이다. 사실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이 소설은 그리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 공산당 입당자가 1만명 넘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산주의가 새롭게 재평가받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젊은이의 대다수가‘신빈곤층(워킹푸어)’으로 전락해가는 현실과 연결해 생각한다면 소설의 인기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일본에서도 고용 삭감은 젊은 비정규직 사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경제위기 여파가 주로 젊은이들에게 몰아닥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위축된 젊은이들은 안정지향 성향을 드러내고 소비 또한 적은 편이다. 그래서 기업, 사회보장, 가족, 교육 등에서 젊은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의 재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현실은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나처럼 대학 졸업을 앞둔 자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슴이 무척 답답할 것이다. 이런 심정이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이 소설을 집어들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도 젊은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