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6

2012.02.27

결정적 한 방 없지만 음악은 합격점

뮤지컬 ‘닥터 지바고’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2-27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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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 한 방 없지만 음악은 합격점
    올 상반기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인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막이 올랐다. 개막 열흘을 앞두고 주연 배우가 주지훈에서 조승우로 바뀌면서 엄청난 기대와 우려를 낳았다. 160분간 공연되는 뮤지컬이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다 다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실체를 드러낸 ‘닥터 지바고’는 모든 걱정을 단번에 씻어낼 만한 ‘결정적 한 방’은 없었지만, 탄탄한 원작과 수준 높은 음악을 바탕으로 다수의 인상적인 장면을 탄생시킨 준작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원작에 ‘면피’정도는 한 수준이랄까.

    러시아제국이 무너지고 소비에트연방이 들어서는 격변기. 다섯 남녀의 사랑이 엇갈린다. 원작 ‘닥터 지바고’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입체감 있는 주인공 덕분이다. 사적 감정이 사치가 되는 혁명과 투쟁의 시기, 시와 인간을 사랑하는 유리 지바고와 그의 ‘뮤즈’이면서도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라라를 통해 사랑 그 이상의 감동을 전달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내면을 모두 표현해내기에 뮤지컬 공연시간 160분은 너무 짧았다. 작은 그릇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니 음식이 넘쳐흘러 오히려 식욕을 꺾는 불상사를 낳았다. 다섯 남녀의 엇갈린 사랑에만 방점을 찍다 보니 원작의 웅장함을 잃고 말았다. 특히 라라의 남편이자 혁명가인 파샤는 지바고의 인생을 격정에 휩싸이도록 하는 인물로, 원작은 그의 고뇌와 열정도 무게감 있게 다룬다. 하지만 무대 위의 파샤는 관객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피의 일요일’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내전’ 등 수많은 공간 전환을 효율화하려고 무대를 단순화한 지혜가 줄거리 구성에서는 발휘되지 못해 아쉽다.

    수준 높은 음악은 합격점이다. 지바고가 극 속에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시로 표현하듯, 감성적인 선율에 상징적인 언어를 얹어 갈등과 고뇌를 극대화했다. 특히 라라와 지바고의 부인 토냐가 마주하고 부르는 ‘It comes as no surprise’는 두 여인의 갈등과 안타까움을 잘 표현했다. 또한 지바고가 부르는 ‘Now’ ‘On the edge of time’ 역시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강렬했다.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 루시 사이먼의 진가가 발휘된 부분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국 뮤지컬계의 보물 조승우가 합류한 이상 ‘닥터 지바고’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갈지 기대된다. 2011년 세계 무대에 첫선을 보인 후 아직까지 많은 검증을 받지 못한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닥터 지바고’가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적인 뮤지컬 대작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아직 시간은 많다.



    6월 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문의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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