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실시된 커레이저스채널 훈련 당시 용산 미군기지에 마련된 대피통제소 모습.
이 무렵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했던 관계자들의 회고록에 따르면, NEO는 한반도에서 대형 재난이 발생하거나 무력분쟁이 벌어질 경우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도움을 받아 자국민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대피시키려고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1차 북핵 위기 이후 주한 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은 이를 숙달하려고 커레이저스채널(Courageous Channel·용기 있는 항로)이라는 이름의 정기훈련을 매년 두 차례 실시한다. 1994년 당시에도 이 프로그램을 과연 언제 가동하느냐는 국내외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이후에도 ‘유사시 미국 국민을 한국 밖으로 빼내는’ 이 훈련에 관해 주변국은 늘 주의를 기울여왔다. 천안함 사건 직후였던 2010년에는 5월로 예정됐던 정기훈련을 ‘불필요한 오해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격 취소했을 정도다.
fly-away와 sail-away
이처럼 민감한 성격의 훈련을 엿볼 수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이 지난해 8월 공개된 위키리크스 문서에 포함됐음이 확인됐다. ‘주간동아’가 찾아낸 문제의 전문은 미국대사관이 2009년 6월 18일 미국 국무부에 타전한 것으로, 그해 5월 14일부터 사흘간 실시한 커레이저스채널 훈련의 진행 상황과 결과, 시사점 등을 정리한 자료다. 4월 하순부터 3주에 걸쳐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해 훈련을 준비해온 미국대사관의 활동 내용을 꼼꼼히 담은 것. 그간 계획의 존재와 대략적인 얼개만 알려졌을 뿐, NEO 프로그램과 관련 훈련의 세부 내용이 공식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키리크스 전문에 따르면 민간인 대피계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나 후텐마 기지로 수송하는 ‘비행대피(fly-away)’ 계획이 하나고, 전국 각지의 미국 국민을 철도를 이용해 부산에 집결시킨 다음 선박을 이용해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운항대피(sail-away)’ 계획이 다른 하나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용산 등 미군기지에 총 18개의 집결지와 대피통제소(Evacuation Control Center)를 설치하고, 몰려든 대피 희망자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선별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14만 명이 넘는 한국 내 미국 국민을 일거에 대피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실제상황에서 우선 대피시켜야 할 인원을 내부적으로 정해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주한미군의 배우자와 자녀 등 직계가족과 군무원, 민간인 정부 관료가 1순위다. 이들은 대부분 미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는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대피 계획 대상이다. 다음으로는 기타 미국 시민권자고 마지막이 미국 시민권자의 직계가족으로, 이들은 한국군이 제공하는 열차를 이용해 부산으로 향한 뒤 배 편으로 일본으로 떠난다.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해 한미연합사령부가 작성해둔 작전계획 5027에는 이를 위해 수십 편의 열차를 마련하는 시나리오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2009년 6월 작성한 민간인 대피계획 관련 위키리크스 전문.
미군 측은 기지 내 대피통제소에서 자격을 승인받은 이들에게 식별용 바코드를 부착한 흰색 팔찌를 배부했다. 이후 비행장 진입과 수송기 탑승, 착륙 후 일본 입국 과정의 주요 관문마다 NTS(NEO Tracking System)라는 이름의 탐지장비를 설치해 누가 어느 단계의 대피과정에 있는지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자동화했다. 별도의 인원점검에 소요되는 시간낭비를 줄이려는 조치인 셈. 시스템 운영과 대피계획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주한미군 각 기지에는 NEO 프로그램만 전담하는 부서와 인원이 할당돼 있음을 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위기 증폭 효과 잘 알고 있다”
대피항로의 목적지가 일본이므로 NEO 프로그램과 훈련에는 일본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전문은 당시 훈련도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들이 미군 측 안내를 받아 참관했다고 전한다. 특히 50명의 인원이 실제로 대피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와 관련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난점도 확인했다. 한 필리핀 출신의 여성이 일본 비자가 없어 최종적으로 입국하지 못한 채 도쿄 요코타 기지에 머물러야 했다는 것. 전문은 “참가자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피자의 지참 문서를 꼼꼼히 점검해야 할 필요성과 일본 정부와의 사전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대피 대상자의 애완동물도 계획에 포함되느냐를 두고 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 사이에 혼선이 빚어졌다는 전문의 마지막 단락이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사전 논의 과정에서 애완동물 역시 포함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구체적인 범위를 놓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1년 5월 실시한 커레이저스채널 훈련에 관해 미국 국방부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는 용산 기지 대피통제소에서 강아지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장면이 포함됐다. 2009년 이후의 훈련에는 애완동물도 함께 대피하는 절차가 포함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억해둘 것은 이러한 NEO 프로그램을 실제로 가동하는 것은 상황이 매우 극단적으로 번졌을 경우에 한한다는 점이다. 1994년 당시 백악관과 국무부는 각국 대사관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공편을 예약해두던 시점까지도 NEO를 가동하지 않았다. 관계자들의 회고록에 따르면 섣불리 NEO를 가동할 경우 위기를 심각하게 증폭시킬 수 있음을 충분히 염두에 뒀다는 것. 이는 만에 하나 한반도 전쟁 발발이 현실적인 우려로 떠오르는 경우에도 미국이 자국민 소개계획을 먼저 가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프로그램 가동 여부로 한반도 위기상황의 심각성을 가늠해보려는 시도가 의미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