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제호(66) 교수는 젊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세상 풍경은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관하고, 젊은 의사들과 함께 책을 골라 읽으며 페이스북에서 감상을 공유한다. 외부 학회나 출장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회진 로봇을 통해 환자와 만난다. 2월 말 정년퇴임하지만 ‘노(老)교수’라는 표현을 쓰기엔 외모도, 생각도 무척 젊다.
1993년 삼성서울병원 설립 단계에서부터 관여하기 시작해 초대 산부인과 과장을 지낸 이 교수는 부인암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다. 우리나라 부인암 연구 및 치료 수준을 조직세포에서 분자와 유전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의대를 마치고 13년간 원자력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거의 매일 한두 건의 수술을 집도하며 쌓은 임상경험과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의 연구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연구뿐 아니라 의료 선진화와 인재 양성에도 열을 올렸다. 그는 “환자는 목숨을 걸고 의사를 가르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세상에 완성된 의사는 없으며 죽을 때까지 배우다 미완으로 죽는 직업이 의사지만, 목숨을 내맡기고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통해 발전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의사 또한 특전사에 버금가는 훈련을 통해 목숨을 걸고 환자를 대하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성격이 제각각 다른 ‘암의 다양성’
수없이 많은 환자를 접했을 그도 기적을 경험해봤을까.
“그럼요. 10여 년 전 자궁경부암 4기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었어요. 자궁에서부터 폐 등으로 암이 퍼진 상태라 방사선과에서도 치료가 어렵다고 선언해버렸죠. 결국 화학요법으로 치료하기로 결정하고 통상적으로 쓰는 가장 고전적인 항암제를 투여했는데, 3순환 만에 완치됐어요. 언제 재발할지 몰라 총 6순환을 투여했는데, 지금까지도 재발하지 않고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기적의 원리를 의학적으로 분석하고 치료에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의 중요한 임무다. 그는 ‘암의 다양성’에서 기적의 비밀을 찾았다.
“난소암은 나대는(빨리 자라는) 대신 약발이 잘 받아요. 이리저리 설치는 놈이 한번 으름장에 기가 확 죽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대신 재발을 잘해요. 반면, 자궁경부암은 서서히 꾸준히 자라는데 항암제가 잘 안 들어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똑같은 것 같아도 성격은 다 달라요. 그걸 암의 다양성이라고 하는데, 1980년대까지는 우리 의학계에서 그걸 믿지 않았어요. 같은 암이면 같은 치료법을 쓰면 되지, 특정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미국에선 이미 암세포가 무작위로 퍼지는 게 아니라 계획과 의도를 갖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연구한 종양생물학이 발달했어요.”
환자의 기적적인 쾌유를 통해 ‘암의 다양성’을 확인한 그는 의사의 책임을 더욱 막중하게 느꼈다.
“암환자를 대할 때 절대 의사가 먼저 포기해서는 안 돼요. 난소암은 3기 말이 돼서야 증세가 나타나는데, 교과서에는 그때 치료해봐야 5년 생존율이 15%라고 나와 있어요. 하지만 암과 함께 살면 어때요. 관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삶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죠. 5~10년이라도 살게 할 목표로 열심히 치료하고, 그래서 환자가 살다가 더 좋은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만나면 그때 다시 삶을 연장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모든 암은 의사의 역량과 환자의 역량, 보호자의 역량, 국가의 역량을 최대로 쏟아붓는 전면전으로 임해야 해요. 누구 하나 난치병이라고 포기해버리면 환자는 빨리 죽고 말아요.”
“좋은 의학정보가 곧 생명”
부인암은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난소암을 일컫는다. 자궁경부암은 자궁 입구에 암이 생긴 것이고, 자궁내막암은 자궁 체부에 생긴 암이다. 과거에는 부인암 가운데 자궁경부암이 80%를 차지하고 자궁내막암과 난소암이 나머지 20%에 해당했는데, 점차 그 비율이 뒤바뀌는 추세다. 유두종바이러스가 원인인 자궁경부암은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이 증가해 줄어드는데 자궁내막암과 난소암은 서구적인 생활습관에서 비롯한 일종의 선진국병인 데다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궁경부암은 성행위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되기 때문에 불결한 성생활을 피하고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아요. 자궁내막암과 난소암은 비만이 가장 큰 적이죠.”
그는 “여성들이 자기 건강을 위해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가정의 건강관리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는 만큼 오래 살아요. 그러니 오래 살려면 공부해야 해요. 스마트한 식습관,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이 건강을 지켜주죠.”
그가 말하는 ‘스마트한 식습관’의 첫 번째는 아침 챙겨 먹기다. 아침은 꼭 먹어야 하지만 하루 세 끼를 진수성찬으로 배불리 먹기보다 가벼운 스낵 형태로 여섯 번에 걸쳐 나눠 먹는 게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성화한다. 토마토, 딸기, 블루베리 같은 과일과 채소는 하루 두 번 이상 먹어야 한다. 거기에 들어 있는 항산화물질이 암 발생의 원인 물질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견과류와 콩이 우리 몸에 좋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는 특히 세포 활성화 물질인 지질이 많고, 양질의 단백질과 식물성 섬유소를 밀도 있게 압축한 콩을 어려서부터 많이 먹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은 하루 30분 이상 걷기로 시작된다. 걸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혈압 조절도 잘될 뿐 아니라, 암 재발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임을 자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우울증을 피하고 생활의 활력을 높일 수 있죠. 정보를 얻고, 암도 덜 생깁니다.”
그는 건강을 지키는 데 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보는 생명이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제대로 된 의학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고, 좋은 병원 찾기나 좋은 의사 만나기는 더 어렵다. 이 교수가 퇴임 후 엄선된 의학 정보를 널리 알리는 일을 계획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을 잘 알아서다. 현재 그는 환자와 동료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의사를 직접 섭외해 무료 온라인 의료상담을 진행하는 웹사이트(besthospital.com)를 준비하고 있다.
“의학은 의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환자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있고, 친절한 의사가 좋은 의사죠. 뭘 알아야 친절할 수 있고, 많이 아는 사람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아요.”
그는 곧 병원을 떠나지만 더 많은 환자와 교류할 것이다. 인터넷이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길 기대한다.
1993년 삼성서울병원 설립 단계에서부터 관여하기 시작해 초대 산부인과 과장을 지낸 이 교수는 부인암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다. 우리나라 부인암 연구 및 치료 수준을 조직세포에서 분자와 유전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의대를 마치고 13년간 원자력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거의 매일 한두 건의 수술을 집도하며 쌓은 임상경험과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의 연구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연구뿐 아니라 의료 선진화와 인재 양성에도 열을 올렸다. 그는 “환자는 목숨을 걸고 의사를 가르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세상에 완성된 의사는 없으며 죽을 때까지 배우다 미완으로 죽는 직업이 의사지만, 목숨을 내맡기고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통해 발전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의사 또한 특전사에 버금가는 훈련을 통해 목숨을 걸고 환자를 대하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성격이 제각각 다른 ‘암의 다양성’
수없이 많은 환자를 접했을 그도 기적을 경험해봤을까.
“그럼요. 10여 년 전 자궁경부암 4기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었어요. 자궁에서부터 폐 등으로 암이 퍼진 상태라 방사선과에서도 치료가 어렵다고 선언해버렸죠. 결국 화학요법으로 치료하기로 결정하고 통상적으로 쓰는 가장 고전적인 항암제를 투여했는데, 3순환 만에 완치됐어요. 언제 재발할지 몰라 총 6순환을 투여했는데, 지금까지도 재발하지 않고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기적의 원리를 의학적으로 분석하고 치료에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의 중요한 임무다. 그는 ‘암의 다양성’에서 기적의 비밀을 찾았다.
“난소암은 나대는(빨리 자라는) 대신 약발이 잘 받아요. 이리저리 설치는 놈이 한번 으름장에 기가 확 죽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대신 재발을 잘해요. 반면, 자궁경부암은 서서히 꾸준히 자라는데 항암제가 잘 안 들어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똑같은 것 같아도 성격은 다 달라요. 그걸 암의 다양성이라고 하는데, 1980년대까지는 우리 의학계에서 그걸 믿지 않았어요. 같은 암이면 같은 치료법을 쓰면 되지, 특정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미국에선 이미 암세포가 무작위로 퍼지는 게 아니라 계획과 의도를 갖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연구한 종양생물학이 발달했어요.”
환자의 기적적인 쾌유를 통해 ‘암의 다양성’을 확인한 그는 의사의 책임을 더욱 막중하게 느꼈다.
“암환자를 대할 때 절대 의사가 먼저 포기해서는 안 돼요. 난소암은 3기 말이 돼서야 증세가 나타나는데, 교과서에는 그때 치료해봐야 5년 생존율이 15%라고 나와 있어요. 하지만 암과 함께 살면 어때요. 관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삶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죠. 5~10년이라도 살게 할 목표로 열심히 치료하고, 그래서 환자가 살다가 더 좋은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만나면 그때 다시 삶을 연장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모든 암은 의사의 역량과 환자의 역량, 보호자의 역량, 국가의 역량을 최대로 쏟아붓는 전면전으로 임해야 해요. 누구 하나 난치병이라고 포기해버리면 환자는 빨리 죽고 말아요.”
“좋은 의학정보가 곧 생명”
이제호 교수는 퇴임 후 온라인을 통해 환자를 계속 만날 계획이다.
“자궁경부암은 성행위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되기 때문에 불결한 성생활을 피하고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아요. 자궁내막암과 난소암은 비만이 가장 큰 적이죠.”
그는 “여성들이 자기 건강을 위해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가정의 건강관리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는 만큼 오래 살아요. 그러니 오래 살려면 공부해야 해요. 스마트한 식습관,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이 건강을 지켜주죠.”
그가 말하는 ‘스마트한 식습관’의 첫 번째는 아침 챙겨 먹기다. 아침은 꼭 먹어야 하지만 하루 세 끼를 진수성찬으로 배불리 먹기보다 가벼운 스낵 형태로 여섯 번에 걸쳐 나눠 먹는 게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성화한다. 토마토, 딸기, 블루베리 같은 과일과 채소는 하루 두 번 이상 먹어야 한다. 거기에 들어 있는 항산화물질이 암 발생의 원인 물질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견과류와 콩이 우리 몸에 좋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는 특히 세포 활성화 물질인 지질이 많고, 양질의 단백질과 식물성 섬유소를 밀도 있게 압축한 콩을 어려서부터 많이 먹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은 하루 30분 이상 걷기로 시작된다. 걸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혈압 조절도 잘될 뿐 아니라, 암 재발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임을 자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우울증을 피하고 생활의 활력을 높일 수 있죠. 정보를 얻고, 암도 덜 생깁니다.”
그는 건강을 지키는 데 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보는 생명이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제대로 된 의학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고, 좋은 병원 찾기나 좋은 의사 만나기는 더 어렵다. 이 교수가 퇴임 후 엄선된 의학 정보를 널리 알리는 일을 계획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을 잘 알아서다. 현재 그는 환자와 동료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의사를 직접 섭외해 무료 온라인 의료상담을 진행하는 웹사이트(besthospital.com)를 준비하고 있다.
“의학은 의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환자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있고, 친절한 의사가 좋은 의사죠. 뭘 알아야 친절할 수 있고, 많이 아는 사람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아요.”
그는 곧 병원을 떠나지만 더 많은 환자와 교류할 것이다. 인터넷이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