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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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상상해, 누군가 나를 껴안는

  • 입력2012-02-27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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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상상해, 누군가 나를 껴안는
    전기해파리

    내 몸에서 가장 긴 부위는 팔

    가장 아름답게 악행을 퍼트리는 것

    두 팔을 천천히 휘저으며 나는 수족관으로 간다

    해양 지도를 펼치면 두 팔이 늘어나는 느낌



    그의 오래된 수족관에는 입 벌린 가면들이 모여 있다

    물결 사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파리의 얇고 긴 털

    항해일지를 지우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끈끈한 혀끝에서 활자들이 번진다

    몸 안에 독을 숨긴 채

    바다의 심층에서 먼 나라의 심층까지 배달하는 마린보이

    그는 마지막 항구로 돌아와 수족관에 잠긴다

    나는 두 팔을 길게 뻗어 잠들지 못하는 그를 감싸 안는다

    이 찰나의 떨림으로 숨겨진 악행을 나눠 갖자

    해파리들이 몸을 대고 서로를 찌르고 있다

    조금씩 일렁이는 가장 어두운 심층에서

    우린 어린 시절이 달랐지만

    투명한 촉수가 입안에서 꿈틀거린다

    팔을 등 뒤에 붙이고

    두 개의 그림자가 한 몸으로 수영을 한다

    ― 이영주 ‘언니에게’(민음사, 2010)에서

    가끔 상상해, 누군가 나를 껴안는

    나는야 해파리. 맞아, 너희가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로 그 해파리. 나를 바다의 파리라고 생각해도 좋아. 바닷속에서는 파리처럼 성가신 존재가 바로 나니까. 새우나 따개비가 내 촉수 아래 붙어살기도 해. 그들은 공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힘주어 기생이라고 말하지. 내가 남긴 먹이를 먹고사는 게 바로 걔들이거든. 나는 걔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려고 “악행을 퍼트리는” 수밖에 없어. “두 팔을 천천히 휘저으며” 먹이에게 다가가지. 왈츠를 추듯, 최대한 우아하게.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대충 알 거야. 이미 기자들이 나를 많이 찍어 갔거든. 그런데 내 몸이 무엇으로 구성됐는지는 아니? 그건 아마 모를 거야. 나는 신비로운 존재여야 하거든.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어떤 비밀처럼 “몸 안에 독을 숨”겨야 하거든. 그래서 아무도 나를 들여다보지 않아. 호기심 때문에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막상 만지려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지. 나는 너무 미끈해 보이니까. 도무지 지구상의 생물처럼 안 보이니까. 내 몸의 99%가 물과 소금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았니? 내가 왜 “투명”할 수밖에 없는지 이제 알겠니?

    나는야 해파리.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하얗게 살 수도 있고 바닥에 달라붙어 까맣게 살 수도 있어. “해양 지도” 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유성이 돼 “가장 어두운 심층”으로 내려가곤 하지. 위로 올라가는 척하면서, 슬쩍 옆으로 이동하는 게 누군지 아니? 맞아, 나야 바로 해파리. 나는 오늘도 기품 있게 헤엄을 친다. 우산을 활짝 펴고 바닷속을 유유히 미끄러진다. 여기는 언제나 비가 내리거든. 그래서 나는 마르지 않아. 촉촉하고 미끄덩거리지. 가끔 내 몸에서 독이 발사되기도 해. 내가 독을 쏘고 싶어서 쏘는 것은 아니야. 내 몸에 뭔가가 닿으면 그냥 그렇게 돼, 반사적으로.

    가끔 상상해, 누군가 나를 껴안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 누군가 나를 껴안는 상상을. 해파리끼리 서로의 독을 나누어 갖는 상상을. 나와 그가 서로를 “감싸 안”은 채 “한 몸으로 수영을” 하는 상상을. 나는 그렇게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해. 잊지 마. 네가 볼 땐 가만히 있는 것 같을지라도, 그때도 내 속은 맹렬히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지금 또다시 내 몸이 부풀어 오른다. 우산이 펼쳐진다. 파도의 포말 속에서, “찰나”가 떨리고 있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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