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어수룩한 외과의사 다니엘은 장기 이식을 연구하는 데 살아 있는 장기가 필요하다. 그는 매춘부 글로리아를 통해 살인마 잭에게 접근해 싱싱한 장기를 구하려 한다. 다니엘과 글로리아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새로운 내일을 꿈꾸지만, 글로리아가 포상금을 얻으려고 잭을 경찰에 고발한 것이 드러나면서 글로리아는 끔찍한 화상을 입는다.
7년 후 다시 런던을 찾은 다니엘은 화상과 매독으로 죽어가는 글로리아를 만난다. 글로리아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장기 이식뿐이다. 다니엘은 글로리아를 살리려고 글로리아를 파괴한 장본인인 잭과 거래를 시작한다.
다니엘은 인간 본성의 극과 극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붉은 치마를 입은 거리의 여자’ 글로리아의 손을 부여잡고 사랑을 고백하거나, 술집 여자들의 섹시한 유혹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청정한 남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학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기 위해 그는 서슴지 않고 살인마와 거래한다. 본인이 파놓은 파멸의 덫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이중성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 해답이 없다.
형사 앤더슨은 또 어떤가. 그는 사명감을 갖고 사건을 추적하는 듯 보이지만 ‘런던타임스’ 먼로 기자의 유혹에 넘어가 돈을 받고 수사 내용을 넘긴다. 먼로 기자 역시 국민의 알 권리 대신 돈을 좇는다. 그를 위해 더 충격적인 사진, 충격적인 이야기에만 집착한다. 이들을 통해 악을 내재화한 인간 본성과 그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해 말부터 ‘엘리자벳’ ‘햄릿’ 등 동유럽권 원작 뮤지컬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동유럽권 원작 뮤지컬은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과 달리 원작 뼈대만 차용해 다채롭게 수정, 보완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 작품은 2009년 ‘살인마 잭’이란 제목으로 초연한 후 매년 앙코르 공연을 거듭하면서 변화하고 있는데, 올해 공연은 뮤지컬 넘버 3곡이 추가되고 세부적인 줄거리가 다소 수정됐다.
이번 공연에는 신성우, 유준상, 엄기준, 슈퍼주니어 성민 등 이전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왜 이미 출연한 작품에 다시 출연하느냐”는 질문에 신성우는 “내가 초연을 맡았던 작품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바 있다. 이번 공연의 성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탄탄한 구성과 기막힌 반전, 배우들의 완벽한 호흡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여름휴가철 볼만한 최고 뮤지컬’ 자리는 꿰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8월 25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문의 02-764-7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