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졌던 첫사랑 그녀가 17년 후, 그것도 남자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면? 2001년 개봉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 황당한 스토리에 풋풋한 첫사랑의 향수와 몽환적이고도 신비한 판타지를 가미한 한국 멜로영화의 역작이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단순히 영화 줄거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렬한 상징과 절묘한 음악을 더해 그들의 지독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큰 상징은 무대를 가르는 선이다. 마치 칠판에 분필로 찍 그어놓은 것 같은 흰색 선. 남자주인공 인우의 설명대로라면 이 선은 지구다. 이 지구 위 어딘가에 바늘을 꽂고, 나풀대던 씨앗 하나가 떨어져 그 바늘에 꽂힐 확률만큼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사람은 인연을 만든다는 것이다.
스무 살 여름, 태희가 그 많은 사람 중 하필 인우 우산 속으로 들어온 것은 인연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두 사람은 서툴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인우의 군 입대를 앞두고 태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서른일곱 살 인우 앞에 남학생 현빈이 나타난다. 열일곱 살 현빈은 하는 말과 행동, 생각 모든 면에서 태희와 꼭 닮았다. 인우는 고뇌한다. “이 아이는 정말 태희일까? 이 아이가 태희라면 내가 사랑해도 될까?” 이런 엄청난 우연 앞에 도덕적 잣대나 자기 제어는 통하지 않는다. 결국 인우는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 사랑하는 것”이라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흰색 선으로 무대 위아래가 명확히 갈리는 것처럼, 태희와 인우는 각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가 남자 몸으로 다시 태어난 태희와 이미 가정을 꾸린 인우는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이들은 운명을 거부하고 함께하려고 죽음도 불사한다. “어차피 우리 인연은 이번 생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인정하는 순간, 무대를 분리하고 엇갈리게 하던 선이 사라진다. 어느덧 두 사람은 하늘이 뻥 뚫린 산 위에 서 있다. 관객의 안타까웠던 마음도 뻥 뚫린다. 그러면서 이들의 사랑이 단순히 동성애나 판타지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임을 관객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왈츠를 추며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나 입대 전날 비 오는 밤길에 서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현빈이 태희라는 것을 인우가 확신해나가는 에피소드는 이미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를 토대로 뮤지컬을 창작할 때는 익히 알려진 그런 장면이 오히려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각 장면이 지닌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묘한 음악으로 작품 완결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나 밴드가 아니라 단출한 악기 구성, 특히 여린 피아노 음을 많이 사용했는데, 두 음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는 듯한 느낌이나 높고 날카로운 음을 이용한 곡이 주를 이뤘다. 불안한 듯 섬세한 피아노 왈츠 곡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를 통해 미숙한 첫사랑의 설렘, 내면 갈등, 엇갈린 운명의 안타까움 등을 극대화한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 줄을 잇는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들 중 ‘원작을 극복한 몇 안 되는 작품’이다. 9월 2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문의 02-744-4337.
가장 큰 상징은 무대를 가르는 선이다. 마치 칠판에 분필로 찍 그어놓은 것 같은 흰색 선. 남자주인공 인우의 설명대로라면 이 선은 지구다. 이 지구 위 어딘가에 바늘을 꽂고, 나풀대던 씨앗 하나가 떨어져 그 바늘에 꽂힐 확률만큼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사람은 인연을 만든다는 것이다.
스무 살 여름, 태희가 그 많은 사람 중 하필 인우 우산 속으로 들어온 것은 인연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두 사람은 서툴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인우의 군 입대를 앞두고 태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서른일곱 살 인우 앞에 남학생 현빈이 나타난다. 열일곱 살 현빈은 하는 말과 행동, 생각 모든 면에서 태희와 꼭 닮았다. 인우는 고뇌한다. “이 아이는 정말 태희일까? 이 아이가 태희라면 내가 사랑해도 될까?” 이런 엄청난 우연 앞에 도덕적 잣대나 자기 제어는 통하지 않는다. 결국 인우는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 사랑하는 것”이라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흰색 선으로 무대 위아래가 명확히 갈리는 것처럼, 태희와 인우는 각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가 남자 몸으로 다시 태어난 태희와 이미 가정을 꾸린 인우는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이들은 운명을 거부하고 함께하려고 죽음도 불사한다. “어차피 우리 인연은 이번 생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인정하는 순간, 무대를 분리하고 엇갈리게 하던 선이 사라진다. 어느덧 두 사람은 하늘이 뻥 뚫린 산 위에 서 있다. 관객의 안타까웠던 마음도 뻥 뚫린다. 그러면서 이들의 사랑이 단순히 동성애나 판타지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임을 관객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왈츠를 추며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나 입대 전날 비 오는 밤길에 서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현빈이 태희라는 것을 인우가 확신해나가는 에피소드는 이미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를 토대로 뮤지컬을 창작할 때는 익히 알려진 그런 장면이 오히려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각 장면이 지닌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절묘한 음악으로 작품 완결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나 밴드가 아니라 단출한 악기 구성, 특히 여린 피아노 음을 많이 사용했는데, 두 음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는 듯한 느낌이나 높고 날카로운 음을 이용한 곡이 주를 이뤘다. 불안한 듯 섬세한 피아노 왈츠 곡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를 통해 미숙한 첫사랑의 설렘, 내면 갈등, 엇갈린 운명의 안타까움 등을 극대화한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 줄을 잇는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들 중 ‘원작을 극복한 몇 안 되는 작품’이다. 9월 2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문의 02-744-4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