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2006.04.25

사정 복잡한 한나라당 경선 흥행 예고

  • 김동철 기자 eastphil@donga.com

    입력2006-04-19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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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서울시장만큼 서울시장 선거에 강한 집념을 보인 사람도 없다. 그의 도전기는 민자당 초선의원 시절인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당 총재인 김영삼 전 대통령(YS)과의 한판 승부가 첫 번째 관문이었다. 그는 YS가 “정원식 전 총리를 경선 없이 후보로 영입 추대하고 이 의원에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기로 했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자 의원직 사퇴와 탈당이라는 배수진을 치며 경선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와 당 지도부가 나서서 말렸다. 나중에는 YS까지 직접 설득에 나섰으나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선은 이뤄졌지만 그는 패배했다. 경선을 통해 본선에 나선 정 전 총리는 무소속 박찬종 후보에게도 밀려 3위를 하는 수모를 겪었다.

    98년 서울시장 선거에도 일찍 도전 의사를 밝혔던 이 시장은 선거법 위반혐의로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출마 자격을 상실했다. 시장에 대한 꿈은 세 번째 도전인 2002년에야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선거 출마를 준비해온 예비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 핵심부의 낙점으로 후보를 결정짓는 시스템은 강한 카리스마로 정치를 지배했던 김대중, 김영삼 양김 시대의 부산물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역시 서울시장 선거에 조순 전 경제부총리(95년)와 고건 전 총리(98년)를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지만, 그 방법은 ‘저돌적인’ YS보다 훨씬 전략적이고 치밀했다. 조 전 부총리는 후보 띄우기 차원에서 경선을 택한 반면, 98년에는 일찍이 경선에 나섰던 한광옥 국민회의 부총재를 민화협 상임의장으로, 노무현 부총재를 지방선거 직후 실시된 종로 보궐선거 후보로 교통정리하면서 DJ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고건 후보 추대대회로 변모시키는 수완을 보였다. 이런 덕택에 DJ는 두 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모두 이겼다.



    5·31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한나라당에 오세훈 전 의원이 예비 후보로 영입되면서 여야의 서울시장 후보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이계안 의원 홀로 경선을 준비해왔던 열린우리당의 경우는 당 지도부가 나서서 영입한 강 전 장관이 사실상 후보로 내정된 상태이지만,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이 오랫동안 양강 구도를 형성해왔던 한나라당은 사정이 복잡하다.

    오 전 의원을 경선 출마로 이끈 것은 당 지도부가 아니라 한나라당 내 소장 개혁파 모임인 수요모임이다. 과거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지 못한 당 지도부는 당 일각의 후보 영입 요구에 부정적 태도를 취했지만 수요모임이 적극 나서서 오 전 의원 영입을 성사시킨 것이다. 오 전 의원이 ‘오풍(吳風)’을 일으키며 높은 지지도를 보이는데도 당 지도부 일각의 반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풍이 거세지면서 맹 전 의원과 홍 의원은 ‘정책 대 이미지’ 구도로 오 전 의원을 협공하며 출마를 포기한 박진 의원이 포함된 연합전선을 구축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당내 중도세력 사이에서는 오풍을 등에 업은 소장파를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따라서 대의원 표의 흐름이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 간의 미묘한 힘겨루기도 감지된다. 과거와는 전혀 딴판인 이런 점 때문에 4월25일의 한나라당 경선 결과가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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