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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전쟁을 묵직하게 뛰어넘은 ‘말과 소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 호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전쟁을 묵직하게 뛰어넘은 ‘말과 소년’

전쟁을 묵직하게 뛰어넘은 ‘말과 소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 짐작했을 테지만 개다. 미국 영화의 흥행성적을 집계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가 역대 가족영화 중 실제 동물이 주ㆍ조연급으로 등장한 작품만 모아 순위를 매겼는데, 상위 20편 중 8편에 견공이 출연했다. 고래나 돌고래가 출연한 작품이 3편이고, 펭귄과 말이 출연한 작품도 각 2편이다.

그럼 돈을 가장 많이 번 동물영화는 무엇일까.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실제 동물이 출연한 작품 중에선 역시 개가 등장한 ‘스쿠비 두’가 으뜸이다. 미국에서만 1억5329만 달러(약 1713억 원)를 벌어들였다. 말이 등장한 영화의 성적도 꽤 좋은 편이다. 경주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씨비스킷(Seabiscuit)’이 1억2027만7854달러(약 1345억 원)로, 말이 출연한 영화로는 미국 내 가장 많은 흥행 수입을 올렸다. 개가 출연한 영화와 말이 출연한 영화의 편당 수입은 엇비슷하다. 1970∼80년대 이후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로 개봉한 영화 중 개가 주연급인 영화의 편당 수입은 4507만 달러(약 503억 원), 말은 주연급인 영화의 편당 수입을 4430만 달러(약 495억 원)였다.

말(馬)은 또 하나의 ‘무비스타’

말은 개만큼이나 인기 있는 ‘무비스타’여서 1980년대 이후 말이 비중 있게 등장한 미국 영화는 최소 27편. 어림잡아 매년 1편꼴로 제작한 셈이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경마산업이 인기를 끌면서 말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잇따라 선보였다. ‘각설탕’ ‘그랑프리’ ‘챔프’ 등이다. 한국마사회의 적극적인 투자와 제작 지원을 업고 만든 이 영화는 모두 경마용 말과 기수 간 우정 및 교감을 그린 드라마다.

미국의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말의 ‘흥행파워’에 동한 것일까. 외계인을 소재로 삼는 게 주특기인 그가 이번엔 말을 주인공 삼아 영화를 만들었다. ‘워 호스(War horse)’다. 말이 주인공인 영화는 대부분 경마나 승마용 말을 소재로 하는 데 반해 스필버그 신작은 제목 그대로 ‘군마’를 다뤘다.



스필버그 감독이 외계인 다음으로 선호하는 영화 소재는 전쟁이다. 이미 14세 때 8mm 비디오카메라로 40분짜리 전쟁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다.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41’ ‘태양의 제국’ 등 제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문제작을 연출했다. 전쟁영화에 대한 감독의 야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워 호스’는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이다.

19세기 말 영국 농장지대. 새끼 말의 탄생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는 한 소년이 있다. 험난한 세월을 넘고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이어진 말과 소년의 운명적인 우정, 그 위대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이다.

전쟁을 묵직하게 뛰어넘은 ‘말과 소년’
‘워낭소리’가 떠오르는 이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소년 앨버트(제러미 어바인 분)가 농장 일에서도 한몫하는 장정으로 자랐을 무렵, 아버지 테드(피터 뮬란 분)가 장에서 말을 한 필 사온다. 마침 쟁기를 끌고 짐도 실어 나를 말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말은 미끈한 몸매에 탄탄한 근육, 거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가죽까지 지녔고 누구나 한 번 마주치면 다시 돌아볼 정도로 아주 잘생겼다. 농장에 부릴 말로는 탐탁지 않았으나, 보어전쟁 당시 기마병이던 아버지 테드는 이 말을 본 순간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값을 후하게 쳐주고 데려왔다.

“이런 말을 뭐에 쓰느냐”며 “당장 물리라”라고 지청구하는 아내와 달리 앨버트는 이 말에게서 특별함을 느낀다. 어린 시절 이웃집에서 숨죽이며 탄생을 지켜봤던 바로 그 말이다. 앨버트는 말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큰 정성과 애정을 쏟는다. 조이 또한 앨버트의 사랑에 화답하듯 경작용 말의 임무를 훌륭히 해낸다.

그러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재정난을 겪던 소작농 테드는 조이를 영국군에 군마(軍馬)로 팔아넘긴다. 이후 영화는 조이를 중심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생생히 그린다. 퍼붓는 총탄과 포화 속에서도 앨버트에 대한 우정을 지키고자 살아 돌아가려는 조이의 발버둥이 영웅적으로 묘사된다. 영국군 군마로 젊고 신실한 장교를 태우게 된 조이는 프랑스 전선에 투입된다. 그러나 새 주인은 독일군 총탄에 숨지고, 조이는 적군에 생포된다. 이제 독일군 군마가 된 조이는 징집된 소년병 형제의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조이를 타고 탈영을 시도하던 소년병 형제가 독일군에게 사실되고, 조이는 또다시 주인을 잃는다. 그러던 중 조이는 우연히 한 프랑스 소녀의 눈에 띄어 ‘프랑스와’라는 새 이름을 얻고, 잠깐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얼마 뒤 다른 독일군 부대가 마을에 들어오고, 조이를 데려다 최전방에 내세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다.

‘워 호스’는 조이의 전쟁과 함께 앨버트의 또 다른 싸움을 보여준다. 조이가 전장에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 몇 년 동안 앨버트도 나이가 차 마침내 입대 자격을 얻는다. 조이와 앨버트의 여정이 과연 한 길에서 만날 수 있을까.

쟁기와 짐수레를 끄는 농장의 평범한 말로 앨버트와의 우정을 시작하는 순간, 한국 관객의 뇌리에는 우리 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영국군 장교를 태웠다가 적군에게 생포돼 독일 군마가 되고, 소년병 형제와 탈영을 시도했다가 프랑스 소녀를 새 주인으로 맞이하고, 결국은 다시 군마로 전장의 한가운데를 내달리는 조이의 운명은 ‘마이웨이’ 속 장동건의 그것과 꼭 닮았다.

전쟁을 묵직하게 뛰어넘은 ‘말과 소년’
공교롭게도 조이가 마주쳤던 독일의 소년병 형제는 형과 동생이 한 부대에 배속됐다가 동생이 전선으로 파병되면서 헤어지고, 형이 동생을 지켜주려고 탈영을 결심하는 대목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리게 한다. 스필버그 감독의 쟁쟁한 작품 목록에 줄을 세우자면 ‘워 호스’는 비교적 평작에 가깝다. 하지만 소년과 말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이자 전쟁의 비극에 대한 우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뛰어난 이야기와 가슴을 적시는 정서가 “역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외계인’ ‘전쟁’과 더불어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소년과 아버지’다. 스필버그 감독의 많은 영화가 소년의 모험담이자 성장 이야기며,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 및 교감을 다룬 드라마다.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앨버트의 아버지 테드는 보어전쟁에서 영웅적으로 활약했지만 부상 탓에 낙오자로 살아간다. 아버지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아들은 전쟁의 비극을 몸소 겪으며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한다. ‘워 호스’는 영웅적인 군마의 오디세이자, 아버지를 떠났던 소년의 가슴 따뜻한 귀환기다.



주간동아 824호 (p70~71)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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