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부산 사상구 재래시장에서 문재인 고문(맨 오른쪽)이 시장을 찾은 행인과 대화하고 있다.
문 고문은 언론 등에서 총선 예비후보라기보다 대선주자로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2월 첫째 주 조사에서 문 고문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44.9%의 지지율을 기록해 44.5%에 그친 박 비대위원장을 0.5%포인트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대선 유력주자’로 달라진 위상
문 고문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대선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커졌다. 심지어 “(민주통합당) 독자적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더는 구애를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문 고문에 대한 대선 지지율은 아직까지 ‘사상누각’이라 할 수 있다. 총선이란 관문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굳건한 토대가 마련된다.
부산 민심을 살펴보려고 ‘주간동아’는 올 들어서 네 차례 부산을 찾았다. 그때마다 부산에는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쳤고,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선거 분위기도 썰렁했다. 다만 문 고문에 대한 기대감은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예? 의리도 있고 소탈한 사람 아입니꺼. 부산사람은 의리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카이. 한나라당(새누리당) 하는 꼴 보면 그 양반 밀어줘야 하는데…. 아, 근데 그 양반이 나서서 만든 당이 (민주)통합당 아입니꺼. 이 사람 저 사람 다 모으니까 옛날 열린우리당하고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더라꼬. 안 그렇습니꺼?”
2월 4일 오후 부산역에서 탄 택시가 중앙대로를 따라 남포동으로 향하는 동안, 40대 택시기사는 기다렸다는 듯 “요즘 문재인 얘기하는 손님이 많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문 고문에 대해 묻자마자 나온 반응이었다.
문 고문의 대선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고향사람들’의 관심도 그만큼 커졌다. 여기에 부산은 이미 4·11 총선 최대 격전지로 부상한 터. 1990년 1월 이른바 ‘3당 합당’ 이후 새누리당 텃밭이던 부산에 야권은 문 고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상륙 선단을 띄웠다. 문 고문과 문성근 민주당 최고위원(북·강서을),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부산진을) 등 이른바 ‘문·성·길’을 중심으로 총선 출사표를 던진 것.
부산과 경남을 가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문재인과 문성근 양문(兩文)이 북서풍을 타고,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경남 김해을)과 송인배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경남 양산)이 동남풍을 타고 부산 깊숙이 상륙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김정길 전 장관과 김영춘 전 최고위원(부산진갑)은 부산의 중심에 포진했고,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사하갑)과 조경태 의원(사하을)이 합세해 ‘민주당 부산 대전’을 준비 중이다.
젊은 이미지와 겸손함 어필
2월 7일 문재인 고문이 부산 사상구 주례2동 주민센터에서 행사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문 고문은 변호사 시절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고, 지금도 (노무현재단을) 지킨다. 부산사람은 한결같은 그의 모습, 특히 의리 있고 솔직한 모습을 좋아한다.”
동래시장에서 배달업을 하는 김정철(49) 씨는 “TV에 나온 모습을 보니 나이에 비해 젊은 사람과 편하게 소통하고 무척 겸손한 듯해 호감이 가더라. 딱딱하고 절제된 모습의 박 비대위원장과도 다르고, 권위를 앞세우는 기존 정치인과도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근 치솟는 지지도만큼 문 고문의 위상도 달라진 듯했다. 1월 초 부산시민에게 문 고문에 대해 물었을 때는 ‘호감 가는 인물’이라는 답변이 주류였다면, 2월 초에는 ‘차기 대선주자’라는 답변이 많았다. 동래시장에서 만난 오종환(45) 씨의 말이다.
“부산사람은 이것저것 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안철수 원장은 정치 참여를 저울질하지만 문 고문은 먼저 (총선 출마 선언을) 던져놓고 최선을 다하지 않나. 이런 모습이 부산시민에게 든든한 대선주자의 모습으로 비친다. 문 고문의 지지도가 급상승한 것도 이런 측면이 크다고 본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부산에서 해놓은 게 뭐냐’는 반여(反與) 정서도 문 고문의 지지도 상승에 한몫한다. 택시기사 최모(56) 씨의 말을 들어보자.
“부산저축은행 사태 때 힘 있는 사람은 (영업정지 전날) 밤늦게 예금을 다 찾아가고, 서민만 돈을 날렸다. 김해공항이 포화상태가 돼 신공항 지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갑자기 경남 밀양이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됐다. 그때 (새누리당) 국회의원 다 떨어뜨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아들 녀석은 부산에서 취직이 안 돼 울산으로 갔다. 여긴 일자리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부자, 군 미필자를 대거 요직에 앉히더니, 결국 ‘수도권 부자 공화국’을 만든 것 같다. 이번 총선, 대선에서는 부산을 대표하는 당과 인물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 문재인이 대안일 수 있다.”
부산은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MB) 한나라당 후보에게 101만 8715표(57.90%)를 몰아준 곳이다. 하지만 최씨의 말처럼 5년 연속 전국 최하위 고용률(55.9%,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과 낮은 취업률,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부산저축은행 사태, 지방채 발행 규모 전국 1위 같은 부산의 현실은 시민의 반(反)새누리당, 반MB 정서를 자극했다. 가야동에서 숯불갈비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54) 씨의 말도 비슷하다.
“투표권 생기고 지금까지 통일민주당과 한나라당만 찍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가야공원(부산진구 가야동) 산책로 정비 외에는 한 게 없다. 수출은 늘었다는데 우리는 ‘추워 죽겠다’. 손님도 줄어 (기장군) 정관신도시로 가서 장사하려고 한다. 새누리당은 정신 차려야 한다.”
‘부산일보’ 등 한국지방신문협회 소속 6개 회원사가 지난해 12월 29~30일 전국 2010명을 대상으로 RDD(유권자 비례 무작위 추출) 전화 면접조사를 한 결과, 부산에서 새누리당 지지도는 38.0%, 민주통합당은 28.2%였다. 과거 한나라당 지지도가 제1야당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격차가 좁혀졌다. ‘지지 정당 없다’는 응답도 37%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여 정서가 곧 ‘지지 철회’라고 볼 수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자식이 밉다고 호적에서 팔 수 있나’는 지역정서도 여전하다. 괘법동에 자리한 문 고문의 선거사무소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치우(61) 씨 말에서 이런 지역정서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문 고문 호감도가 표로 얼마나 연결될지는 의문이다.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일으킨다는데 사실 ‘노풍’이 부산을 대표하는 정서도 아니다. 부산이 야당의 새로운 전략지역인 것처럼 보도되고 최소 5석 이상을 가져간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런 얘기가 정통 보수층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다. 만약 박 비대위원장이 차기 대선전략 차원에서라도 이곳(사상구)을 전략 공천하고 집중 지원하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문성근 민주당 최고위원, 문재인 민주당 고문,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오른쪽부터)이 2011년 12월 2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4월 총선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손을 들어 결의를 다지고 있다.
특히 사상구 관내 노인정에서 확인한 문 고문에 대한 반응은 썰렁했다. “문재인? 그게 누꼬”라고 되묻는 어르신도 적지 않았다. ‘움직이는 여론 전달자’ 택시기사들도 “인물로 봐서는 문재인 씨가 나은데, 당 보고 찍는 투표 경향이 재현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상역에서 신모라사거리까지 택시로 이동하는 동안 택시기사 이모(58) 씨는 “분위기가 예전과 달라진 것은 맞는데, 그래도 투표날 돼 봐야 알낍니더”라고 말했다. 모라동에서 덕포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함께한 택시기사 손모(56) 씨는 지난해 10월 26일 치러진 부산 동구청장 보궐선거를 상기시켰다.
“그때도 신문과 방송에서는 (야권) 단일후보라고 야단들이었지예. 문재인 씨도 앞장섰고예. 그란데도 결국 안 됐잖습니꺼. 그게 부산 민심입니더. 아직 (민주통합당을) 대안으로 안 보는 사람이 더 많습니더.”
지난해 10·26 부산 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문 고문은 이해성 민주당 후보의 후원회장으로 나섰고 박 위원장은 정양석 한나라당 후보를 적극 지원했다. 개표 결과는 정양석 1만7357표(51.08%), 이해성 1만2435표(36.57%)였다. ‘박근혜 바람’은 일었지만 ‘문재인 후광’은 없었던 셈이다.
문 고문에 대한 호감에도 부산 유권자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는 주된 이유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였다. 사상구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회 간부는 “구의원부터 구청장, 시장까지 일체화가 돼야 지역 현안이 좀 해결됩니더. 안 그러면 될 일도 안 된다 아입니꺼”라며 몇 가지 경험담을 들려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던 정윤재 씨가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하라고 9억 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해 부산에 내려 보냈다 아입니꺼. 그런데 그 사업은 시행하지 못했심더. 중앙정부가 지방에 배정한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칭펀드로 사업비를 확보해야 하는데 자치단체에서 사업비 책정을 하지 않았던 기라. 그때 주민이 다 알았다 아입니꺼. 일이 좀 될라믄 손발을 맞춰서 일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을. 문재인 씨가 사람은 참 좋지예. 깨끗하고. 그런데 그것만 갖고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안 뽑아준다 아입니꺼.”
이른바 ‘문·성·길’로 대표되는 야권의 부산 상륙작전이 자칫 문 고문에게 역풍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대 교수의 분석이다.
야권 부산 상륙작전 역풍 될 수도…
2월 7일 부산 사상구 주례2동 주민센터에서 문재인 고문이 행사 참석자와 악수하고 있다.
부산 민심 취재를 마치고 김해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머리로는 문재인 고문을 받아들인 유권자가 많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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