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에 따르면, 김동진 전 부회장은 강원 춘천시 도민저축은행의 채규철(62·구속) 회장을 통해 이화영 전 의원을 소개받았다. 이 전 의원은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을 통해 채 회장을 알게 됐다. 채 회장을 통해 김 전 부회장을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1988년부터 이상수 전 장관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과 보좌관을 지냈으며, 이 전 장관의 지역구(서울 중랑갑)를 물려받아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김동진 전 부회장과 경기고 동창인 채 회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세 정치인과 친분이 깊은 사업가로 알려졌다.
검찰, 전 前 수석 소환 검토
‘주간동아’ 취재 결과 검찰은 최근 김동진 전 부회장과 채규철 회장으로부터 당시 현대차 측이 전해철 대통령민정수석에게 정몽구 회장에 대한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현대차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채 회장과 김 부회장은 전해철 수석에게 직접 선이 닿지 않자 그와 가까운 이화영 의원에게 먼저 접촉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이 의원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이다. 이후 두 사람은 이 의원과 함께 서울 시내 H호텔 등지에서 전 수석을 여러 차례 만나 정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검찰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전 전 수석 소환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분위기는 김동진 전 부회장과 채규철 회장의 진술에 구체성이 있어 이화영 전 의원이 현대차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신하는 쪽이다. 법원이 피의사실 소명을 인정하고도 이 전 의원의 총선 출마 준비와 당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치적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2006년 4월 28일 밤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정몽구 회장.
‘주간동아’는 현대차와 김동진 전 부회장, 채규철 회장이 거론되는 2006~2007년 정몽구 회장 구명로비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잘 아는 주변 인물을 두루 접촉했으며, 새로운 사실과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채 회장과 김 전 부회장 주변 인물의 목소리를 담은 여러 개의 녹취파일도 확보했다. 또한 채 회장이 현대차 사건 당시 현대차로부터 구명로비 대가로 30억 원가량의 현금과 각종 사업권을 받아냈다는 증언이 채 회장과 김 전 부회장 주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먼저 ‘주간동아’는 취재 과정에서 국회의원(재선) 및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지냈고 채규철 회장이 대주주 겸 회장으로 있는 경비 전문업체 씨큐어넷 회장과 고문을 지낸 김명규 전 의원이 최근 지인을 만나 나눈 대화 녹취파일을 입수했다. 김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김승규 변호사의 친형이다. 녹취파일에서 김 전 의원은 “채규철 회장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으로부터 고마움의 표시로 30억 원을 받았는데, 곧 반환했다. 그 대신 현대차 공장의 경비·청소 용역권을 받았다’는 말을 나에게 두 차례나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 지인의 최근 대화 내용(A는 김명규 전 의원, B는 김 전 의원의 지인).
B : (현대차가 이화영 전 의원에게 로비를 했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 보셨죠?
A : 중앙일보에 사진까지 크게 났네. 김동진 (부)회장이 (현대차를) 도와준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
B : 김동진 회장이 (현대차에서 정치권에) 돈 준 거 다 인정했다고 기사가 났어요. 근데 채규철 회장이 (구명로비에 대한 보상으로 현대차에서 받은) 30억 원을 정치권에 뿌린 건 아니겠죠. 현대차에서 따로 받았을 텐데.
A : 30억 원은 나한테 숨겼나? 채 회장이 나한테는 (정몽구 회장에게) 30억 원을 받았다가 다시 반환했다고 했거든. 우리한테 안 주려고 그런 건지도 모르지. 나에게는 정 회장에게 반환했다고 했어요. 우리야 (채 회장에게 돈을) 받을 생각도 안 했지만. 이거 말이야, 이러면 현대차, 김동진 회장 모두 어려워지잖아. 채규철이 ‘정 회장, 한번 엿먹어라’ 하고 그런 거 같은데, 채 회장이 ‘30억 원은 반환했다’면서 돈 줘야 하는 사람들한테도 하나도 안 줬다고.
B : 그럼 여권 실세들에게 그때 돈 한 푼 안 주고 일을 시켰단 말인가요?
A : 하하하(웃음). 하여튼 나한테는 반환했다고 했다고.
B : 김동진 회장도 자기 수행비서를 시켜서 그때 직접 정치권 여기저기에 돈을 좀 뿌리고 그랬다는 거 같아요.
A : 그런 거야 대기업 어디서나 다 하는 거지. 일부러 불지만 않으면 (문제 되지 않죠). 하여튼 30억 원을 정몽구 회장님께 반환했다고, 그리고 그 대가로 용역을 받은 거거든.
B : (현대차) 경비·청소·조경 용역 말인가요?
A : 그래, 그래.
B : 그럼 그 과실은 혼자서 다 먹은 거네요.
A : 그렇죠. (채 회장이) 머리를 많이 쓴 거죠. 사람들 하나도 안 주고. 반환하면서 인심 쓰는 척하면서 그랬다고.
B : 저한테는 채 회장이 누구한테 10억, 누구한테 10억씩 갈라줬다고, 전 그렇게 들었는데.
A : 아냐, 아냐. 30억 원은 돌려주고 용역을 받은 거야. 내 말이 맞아요. (채 회장이) 나한테 그 얘기를 두 번이나 했거든.
녹취파일을 확인한 직후인 2월 7일 ‘주간동아’는 김명규 전 의원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채규철 회장이) 30억 원을 받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정몽구 회장이 왜 그런 일을 했겠는가”라며 녹취파일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정몽구 회장 구명로비에 대한 보상으로 채 회장이 현대차의 경비·청소 용역 사업권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꼭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닌데…”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 전 의원은 “2006~2007년경 채 회장과 현대차 측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서승모 씨앤에스 대표, “채 회장, MK에게 현금 30억 받았다고 말해”

서 대표는 2월 초 두 차례에 걸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채 회장이 정몽구 회장 구명로비에 대한 보상으로 30억 원과 경비·청소 용역 사업권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자기가 어떤 일을 했는지,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도 여러 번 설명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30억 원을 정몽구 회장에게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김명규 전 의원의 증언에 대해서는 “돈을 돌려줬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채 회장과 잘 알고 지내는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도 “당시 채 회장이 현대차에서 경비·청소 용역 사업권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30억 원을 받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07년 현대차 경비·청소 용역 사업을 수주했다. 씨큐어넷은 2010년 말 현재 채규철 회장이 대주주(지분율 38.27%)로 있는 경비 전문기업으로, 전국 공항과 대기업의 경비·청소 용역을 수행한다. 현대차로부터 사업권을 수주하면서 이 회사 매출은 급증했다. 2005년 466억 원, 2006년 586억 원 정도였던 매출이 2007년 945억 원, 2008년 1086억 원으로 1~2년 사이 2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2010년 매출은 981억여 원이었다.
채규철 회장 주변 인물에 따르면, 2006년 검찰이 현대차를 수사할 당시 채 회장은 ‘현대차그룹 경영고문’이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며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서승모 씨앤에스 대표도 이를 기억했다.
“그 명함을 나도 받은 적이 있다. ‘현대차그룹 경영고문’이라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채규철 회장은 정몽구 회장 구명로비로 무척 바빴다. 종종 ‘나, 지금 정몽구 회장님과 붕어찜 먹으러 간다’며 전화하곤 했다. 당시 김동진 부회장과 채 회장은 거의 매일 붙어 다니면서 일했다.”
2006년 수사팀 관계자 “정몽구 구명로비 사실 알았다”
‘주간동아’는 이외에도 2010년 초까지 9년간 김동진 전 부회장의 수행비서 겸 운전기사를 맡았던 J씨가 지인과 나눈 대화 녹취록도 확보했다. 녹취록은 2006~2007년 당시 김 전 부회장이 직접 정관계 인사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고 수행비서가 김 부회장의 지시를 받아 돈을 날랐다는 증언을 담았다. 다음은 녹취록 내용 중 일부(C는 김동진 전 수행비서, D는 C의 지인).
C : 오늘 신문에 난 애(이화영 전 의원), 이름이 뭐야?
D : 어, (노무현 정부 때) 386실세였지. 근데 김 부회장님이 직접 움직이고 그러진 않았잖아요. 채 회장 통해서 하지.
C : 아니야. 채 회장은 다리만 놓은 거지. 채규철을 뭘 믿고 시켜. 김 부회장님이 직접 움직이지, 난 (돈을) 싣고만 다니고. 돌아가신 ○○○ 사장님하고 셋이서 다녔지.
D : 그게 정몽구 회장님 구명 때문에 그런 거죠?
C : 그래, 김 부회장이 처음에는 채규철 회장을 상대를 안 했지. 그러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들어서니까 (친해졌지).
…
C : 김 부회장이 ‘야, 너 차 가면 줘라’ 그러면 ‘예, 알겠습니다’, 차 넘버 보고 주는 거야. ‘차 뒤 트렁크에 실어줘라’ 그러면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D : 배달사고, 김 회장님이 오해한 적은 없어요?
C : 종종 떠보지. ‘너 뭔지 아냐?’ ‘너 혹시 아냐?’ 그러면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2007년도 일인데 (이미) 오래됐고요, 회장님 (그렇게 말하고).
‘주간동아’는 그간의 취재내용에 대한 현대차 측의 해명을 들으려고 2월 8일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현대차 측은 “이미 오래전 일이라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답변할 사안도 아니라고 판단된다”고만 밝혔다. 김동진 전 부회장에게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주간동아’는 채규철 회장의 해명을 들으려고 2월 7일 씨큐어텍에도 연락했으나, 회사 측 관계자는 “채 회장님의 해명을 전해줄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채 회장의 부인 김모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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