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 이후 북한 체제의 불안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한국 증시와 외환시장은 흘러나오는 크고 작은 루머에도 한시적으로나마 출렁거리는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과연 북한발(發) 돌발 안보변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영문 계간지 ‘세리 쿼터리(SERI Quarterly)’ 2102년 봄호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북한발 안보 충격이 한국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많은 연구자가 통계 분석을 통해 그 상관관계를 밝혀내려 애썼지만, 어떤 이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없다고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논쟁에서 이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정밀하게 확인하려면 먼저 충격 강도가 셀수록 주식시장의 반응도 역시 커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충격에 대해 주식시장이 반응하는 유형을 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10개의 주요 북한발 사건을 선정한 뒤, 사건별로 충격 강도와 주가변동 양상을 측정해봤다. 그 결과 8개의 사례는 충격 강도에 비례해 주가도 변동했지만, 다른 2개의 사례에서는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이렇듯 충격 강도와 비례하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충격이 주식시장에 전달되는 ‘경로’에 주목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충격을 완화시키거나 강화시키는 기제가 각각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모두 마치고 나면 북한 변수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998년 이전에도 북한발 악재로 주식시장이 요동친 사례는 많다. 그러나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1998년 5월에야 자유화됐으므로 그 이전과 이후의 주가변동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일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1998~2010년에 발생한 사건 중에서도 사건 발생 3~4일이 지나 주식시장이 개장한 경우나 사건이 장기간 지속돼 주가변동과의 관련성을 파악할 수 없는 사례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다음으로는 10대 사건 각각의 충격 강도를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용한 척도는 10대 사건 전체에 대한 언론보도 횟수에서 각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다(다양한 설정이 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한국 내 메이저 신문의 보도 횟수를 활용했다). 공식으로 설명하자면, 표에 등장하는 각 사건의 충격 강도(P)는 ‘(사건별 언론보도 횟수÷10개 사건 전체 언론보도 횟수)×100’인 셈이다. 이를 토대로 강도 6 미만의 충격을 ‘적은 충격(P0)’, 6~10의 충격을 ‘보통 충격(P1)’, 11 이상의 충격을 ‘강한 충격(P2)’로 분류했다.
10대 사건 각각의 충격 강도 설정
마지막으로 사건 발생 후 종합주가지수(KOSPI)의 하락폭과 사건 발생 직전으로 주가가 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을 기준으로 주가변동 유형을 분류했다. 반응이 없거나 소폭 상승한 경우는 무반응형(R0), 주가 하락폭이 30포인트 미만이고 주가 수준이 5일 이내에 원상회복한 경우는 소폭 단기반응형(R1), 주가 하락폭이 30포인트 이상이고 원상회복에 5일 넘게 소요된 경우는 대폭 중기반응형(R2)으로 분류했다. 이상의 지표를 종합해 각각의 유형을 분류한 결과가 바로 위의 표다.
이 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총 10개 사건 가운데 2개 사건에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즉, 주가가 사건이 미친 충격 크기에 비례해 반응하지 않은 경우다. 바로 2006년 대포동 2호 시험발사와 2009년 2차 핵실험이다. 대포동 2호 시험발사는 충격보다 주가변동이 적었던 경우고(P2→R1), 2차 핵실험은 반대로 충격보다 큰 주가변동이 일어난 경우다(P1→R2). 이러한 사례는 하나의 충격이 주식시장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 충격의 크기를 경감하거나 강화하는 어떤 기제가 있다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시스템사고기법(system thinking)을 통해 두 사례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봐야 했던 이유다.
먼저 대포동 2호 시험발사의 경우, 국민과 국내외 투자자의 체감 충격 강도를 낮추는 몇 가지 기제가 작동한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첫째, 남북관계가 북미 대립을 완충했다는 점이다. 2005년 9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사건 발생 당시 북미관계는 극도로 경색된 상황이었고, 미국에서는 대북 정밀폭격론(論)까지 회자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민이 느끼는 충격 강도는 실제보다 훨씬 더 컸어야 옳지만,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일관되게 중재 및 완충 구실을 하면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충격 강도는 약화됐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사건 자체가 벌어지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충격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시험발사 2주 전부터 로켓 연료 주입과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충격이 시간적으로 분산됐고(그림 속 s_B2·이하 번호만 표기), 또한 발사 직후 불과 40초 만에 로켓이 폭발해 실패한 실험으로 각인되면서 충격은 더 줄었다(s_B3).
셋째, 사회적으로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는 대미 협상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데다, 발사 초기 한국 정부가 군사용이 아닌 인공위성용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s_B3).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안보불감증 확대가 안보불안감 억제로 이어지는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서도 국내 투자자의 과잉반응(f_R1)이 없었고, 외국인 투자자의 과잉반응(f_R2) 역시 조기에 진정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P2급 충격이 발생했음에도 R1형 주가변동으로 귀착된 것이다. 국내 투자자는 사건 당일에는 690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다음 날에는 1608억 원을 순매수하며 주가를 지지했다. 외국인 투자자 역시 사건 당일과 다음 날까지 매도세를 보였으나, 이틀 후에는 561억 원 순매수로 전환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북 정밀폭격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외신이 미사일 실험이 실패했으며 직접적인 군사위협도 아니라는 데 초점을 두고 보도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림 1’은 이러한 흐름을 시스템사고 기법의 인과지도(causal loop diagram)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대북 정밀폭격 이야기에 ‘출렁’
2차 핵실험의 경우는 정반대다. 사건 자체의 충격이 컸다기보다 뒤이어 연쇄도발이 발생하면서 P1급 충격이 R2형 주가변동으로 귀결된 사례기 때문이다. 대포동 2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차 핵실험 당시에도 충격을 완화하는 기제가 작동했다. 먼저 2008년부터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모두 경색된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은 국민과 투자자가 충격을 더 강하게 느끼도록 만들 만한 변수였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틀 후 핵실험을 실시해 전반적으로 관심도가 분산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둘째로 대포동 2호와 달리 충격이 오랜 시간에 걸쳐 분산(s_B2)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두 나라가 모두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기조에 따라 핵실험에 대해 드라이하게 대응하면서 충격은 더욱 줄었다(s_B3). 마지막으로 이미 2005년 핵 보유 선언, 2006년 1차 핵실험 등을 거치면서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차 핵실험을 군사적 위협이라기보다 ‘대미 정치적 시위’로 파악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당시의 주가 역시 R1형의 경미한 반응을 나타냈어야 옳다. 그러나 2차 핵실험 다음 날 우리 정부가 그간 남북관계 악화를 고려해 미뤄왔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공식 참여를 선언하고, 그와 동시에 북한이 동해상으로 3발의 단거리미사일을 추가 발사한 것이 확인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서는 국내 투자자의 과잉반응(f_R1)과 외국인 투자자의 과잉반응(f_R2)이 동시에 발생했으며, 이는 곧 R2형의 심각한 주가변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전의 북한발 충격은 대부분 단발성으로 끝난 데 비해, 당시에는 과거와 달리 연쇄도발이 발생했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도발→강경대응→추가도발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조짐이 나타났다는 게 국내외 투자자의 심리를 급격히 냉각시킨 원인으로 분석된다. 예컨대 핵실험 당일에는 국내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매도세를 보였음에도 외국인과 국내 개인투자자의 순매수가 증가하면서 주가 하락폭은 2.9포인트 선에서 저지됐으나, 다음 날에는 기관 투자자의 매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외국인 순매수 역시 크게 하락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그간 북한의 도발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먼저 상대적으로 강한 충격이 발생한다 해도 이를 경감시키거나 시간적으로 분산하는 기제가 작동하는 경우에는 몸으로 느끼는 충격 강도가 낮아지면서 주가변동 역시 소폭에 그친다. 그러나 충격 강도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다 해도, 또 충격을 경감하거나 분산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해도 연쇄도발이 발생하거나 ‘도발→강경대응→추가도발’ 같은 악순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주가변동 폭이 커진다. 이는 곧 국민과 투자자의 의식 속에 이미 내재화된 기대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이 발생한 경우에는 주가폭락의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남북관계 안정적 관리가 중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재정위험 증가와 실물경기 재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면서 2012년 초 한국 금융시장은 변동성이 커졌다. 여기에 북한이 권력이양 과정에 돌입하면서 대남·대미 도발의 수위와 빈도 역시 커질 위험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이처럼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한 상황에서 북한이 기대수준을 넘어서는 도발이나 연쇄도발을 감행할 경우, 기존의 변동범위를 넘어서는 초대형(R3형) 주가 하락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증시를 고민한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실제로 북한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체감 충격을 시간적으로 분산시키고 물리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정부의 체계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확고한 대응과 효과적인 사후수습으로 연쇄도발을 막는 한편, 도발→강경대응→추가도발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고민이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를 북한이라는 존재를 안고 사는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지켜내기 위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북한발 안보 충격이 한국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많은 연구자가 통계 분석을 통해 그 상관관계를 밝혀내려 애썼지만, 어떤 이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없다고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논쟁에서 이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정밀하게 확인하려면 먼저 충격 강도가 셀수록 주식시장의 반응도 역시 커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충격에 대해 주식시장이 반응하는 유형을 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10개의 주요 북한발 사건을 선정한 뒤, 사건별로 충격 강도와 주가변동 양상을 측정해봤다. 그 결과 8개의 사례는 충격 강도에 비례해 주가도 변동했지만, 다른 2개의 사례에서는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이렇듯 충격 강도와 비례하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충격이 주식시장에 전달되는 ‘경로’에 주목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충격을 완화시키거나 강화시키는 기제가 각각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모두 마치고 나면 북한 변수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1998년 이전에도 북한발 악재로 주식시장이 요동친 사례는 많다. 그러나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1998년 5월에야 자유화됐으므로 그 이전과 이후의 주가변동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일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1998~2010년에 발생한 사건 중에서도 사건 발생 3~4일이 지나 주식시장이 개장한 경우나 사건이 장기간 지속돼 주가변동과의 관련성을 파악할 수 없는 사례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다음으로는 10대 사건 각각의 충격 강도를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용한 척도는 10대 사건 전체에 대한 언론보도 횟수에서 각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다(다양한 설정이 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한국 내 메이저 신문의 보도 횟수를 활용했다). 공식으로 설명하자면, 표에 등장하는 각 사건의 충격 강도(P)는 ‘(사건별 언론보도 횟수÷10개 사건 전체 언론보도 횟수)×100’인 셈이다. 이를 토대로 강도 6 미만의 충격을 ‘적은 충격(P0)’, 6~10의 충격을 ‘보통 충격(P1)’, 11 이상의 충격을 ‘강한 충격(P2)’로 분류했다.
10대 사건 각각의 충격 강도 설정
마지막으로 사건 발생 후 종합주가지수(KOSPI)의 하락폭과 사건 발생 직전으로 주가가 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을 기준으로 주가변동 유형을 분류했다. 반응이 없거나 소폭 상승한 경우는 무반응형(R0), 주가 하락폭이 30포인트 미만이고 주가 수준이 5일 이내에 원상회복한 경우는 소폭 단기반응형(R1), 주가 하락폭이 30포인트 이상이고 원상회복에 5일 넘게 소요된 경우는 대폭 중기반응형(R2)으로 분류했다. 이상의 지표를 종합해 각각의 유형을 분류한 결과가 바로 위의 표다.
이 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총 10개 사건 가운데 2개 사건에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즉, 주가가 사건이 미친 충격 크기에 비례해 반응하지 않은 경우다. 바로 2006년 대포동 2호 시험발사와 2009년 2차 핵실험이다. 대포동 2호 시험발사는 충격보다 주가변동이 적었던 경우고(P2→R1), 2차 핵실험은 반대로 충격보다 큰 주가변동이 일어난 경우다(P1→R2). 이러한 사례는 하나의 충격이 주식시장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 충격의 크기를 경감하거나 강화하는 어떤 기제가 있다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시스템사고기법(system thinking)을 통해 두 사례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봐야 했던 이유다.
먼저 대포동 2호 시험발사의 경우, 국민과 국내외 투자자의 체감 충격 강도를 낮추는 몇 가지 기제가 작동한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첫째, 남북관계가 북미 대립을 완충했다는 점이다. 2005년 9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로 사건 발생 당시 북미관계는 극도로 경색된 상황이었고, 미국에서는 대북 정밀폭격론(論)까지 회자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민이 느끼는 충격 강도는 실제보다 훨씬 더 컸어야 옳지만,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일관되게 중재 및 완충 구실을 하면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충격 강도는 약화됐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 사건 자체가 벌어지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충격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시험발사 2주 전부터 로켓 연료 주입과정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충격이 시간적으로 분산됐고(그림 속 s_B2·이하 번호만 표기), 또한 발사 직후 불과 40초 만에 로켓이 폭발해 실패한 실험으로 각인되면서 충격은 더 줄었다(s_B3).
셋째, 사회적으로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는 대미 협상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데다, 발사 초기 한국 정부가 군사용이 아닌 인공위성용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s_B3).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안보불감증 확대가 안보불안감 억제로 이어지는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서도 국내 투자자의 과잉반응(f_R1)이 없었고, 외국인 투자자의 과잉반응(f_R2) 역시 조기에 진정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P2급 충격이 발생했음에도 R1형 주가변동으로 귀착된 것이다. 국내 투자자는 사건 당일에는 690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다음 날에는 1608억 원을 순매수하며 주가를 지지했다. 외국인 투자자 역시 사건 당일과 다음 날까지 매도세를 보였으나, 이틀 후에는 561억 원 순매수로 전환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북 정밀폭격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외신이 미사일 실험이 실패했으며 직접적인 군사위협도 아니라는 데 초점을 두고 보도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림 1’은 이러한 흐름을 시스템사고 기법의 인과지도(causal loop diagram)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대북 정밀폭격 이야기에 ‘출렁’
2차 핵실험의 경우는 정반대다. 사건 자체의 충격이 컸다기보다 뒤이어 연쇄도발이 발생하면서 P1급 충격이 R2형 주가변동으로 귀결된 사례기 때문이다. 대포동 2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차 핵실험 당시에도 충격을 완화하는 기제가 작동했다. 먼저 2008년부터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모두 경색된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은 국민과 투자자가 충격을 더 강하게 느끼도록 만들 만한 변수였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틀 후 핵실험을 실시해 전반적으로 관심도가 분산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둘째로 대포동 2호와 달리 충격이 오랜 시간에 걸쳐 분산(s_B2)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두 나라가 모두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기조에 따라 핵실험에 대해 드라이하게 대응하면서 충격은 더욱 줄었다(s_B3). 마지막으로 이미 2005년 핵 보유 선언, 2006년 1차 핵실험 등을 거치면서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차 핵실험을 군사적 위협이라기보다 ‘대미 정치적 시위’로 파악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당시의 주가 역시 R1형의 경미한 반응을 나타냈어야 옳다. 그러나 2차 핵실험 다음 날 우리 정부가 그간 남북관계 악화를 고려해 미뤄왔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공식 참여를 선언하고, 그와 동시에 북한이 동해상으로 3발의 단거리미사일을 추가 발사한 것이 확인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서는 국내 투자자의 과잉반응(f_R1)과 외국인 투자자의 과잉반응(f_R2)이 동시에 발생했으며, 이는 곧 R2형의 심각한 주가변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전의 북한발 충격은 대부분 단발성으로 끝난 데 비해, 당시에는 과거와 달리 연쇄도발이 발생했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도발→강경대응→추가도발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조짐이 나타났다는 게 국내외 투자자의 심리를 급격히 냉각시킨 원인으로 분석된다. 예컨대 핵실험 당일에는 국내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매도세를 보였음에도 외국인과 국내 개인투자자의 순매수가 증가하면서 주가 하락폭은 2.9포인트 선에서 저지됐으나, 다음 날에는 기관 투자자의 매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외국인 순매수 역시 크게 하락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그간 북한의 도발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먼저 상대적으로 강한 충격이 발생한다 해도 이를 경감시키거나 시간적으로 분산하는 기제가 작동하는 경우에는 몸으로 느끼는 충격 강도가 낮아지면서 주가변동 역시 소폭에 그친다. 그러나 충격 강도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다 해도, 또 충격을 경감하거나 분산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해도 연쇄도발이 발생하거나 ‘도발→강경대응→추가도발’ 같은 악순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주가변동 폭이 커진다. 이는 곧 국민과 투자자의 의식 속에 이미 내재화된 기대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이 발생한 경우에는 주가폭락의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남북관계 안정적 관리가 중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재정위험 증가와 실물경기 재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면서 2012년 초 한국 금융시장은 변동성이 커졌다. 여기에 북한이 권력이양 과정에 돌입하면서 대남·대미 도발의 수위와 빈도 역시 커질 위험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이처럼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한 상황에서 북한이 기대수준을 넘어서는 도발이나 연쇄도발을 감행할 경우, 기존의 변동범위를 넘어서는 초대형(R3형) 주가 하락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증시를 고민한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실제로 북한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체감 충격을 시간적으로 분산시키고 물리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정부의 체계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확고한 대응과 효과적인 사후수습으로 연쇄도발을 막는 한편, 도발→강경대응→추가도발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고민이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를 북한이라는 존재를 안고 사는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지켜내기 위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