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책마저 이들 업체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다면 우리는 문화적 식민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2월 8일 한국출판콘텐츠(e-KPC)와 한국출판인회의가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개최한 ‘출판, 또 다른 시작-출판계 전자책 출시 본격화 선언’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 선언에는 출판계 주도의 전자책 사업에 유통사가 모두 협력업체로 참가했는데, 이런 사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리브로 등의 온라인서점과 네이버, 삼성전자, 신세계아이앤씨, LG전자, 텍스토어 등의 포털 및 콘텐츠몰은 물론 KT올레, LG070, SK네트웍스, 리디북스, Y2BOOK, 북큐브, 웅진 OPMS, 네모이북, 스캔북, 오이북 같은 통신사 및 이북스토어 등 모두 21개가 참가했다. 전자책 판매가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국내의 주요 단행본 출판사 300여 곳을 협력회원사로 보유한 한국출판콘텐츠는 창립 2년 동안 전자책이 성장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만드는 데 전념해왔다. 판매정산금에 대한 상호 불신 해소와 불법 다운 방지를 위한 ‘출판계 공용 DRM(디지털저작권관리)’ 및 ‘실시간 거래 종합 정산시스템’을 개발했다. 또한 ‘전자책 변환·제작 솔루션’과 한글을 제대로 구현하는 서체를 개발해 출판사 및 유통업체에 무료로 공급하는 일을 해왔다. 전자책을 생산한 저자와 출판사, 유통업체 모두의 이익을 보장하는 가격시스템도 마련했다. 한국출판콘텐츠는 전자책 정가를 종이책 정가의 70%로 정할 것을 권고한다.
부싯돌로 불을 붙이려면 마른풀과 발화시킨 불을 보관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전자책 업계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은 채 부싯돌로 불을 붙이려는 시도만 반복했다. 따라서 이번 선언은 전자책이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 공사를 어느 정도 마친 다음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이려고 출판사들이 직접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표준 DRM의 완성을 염두에 둔 교보문고가 아직 독자 행보를 고집 중이다. 따라서 교보문고와 한국출판콘텐츠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출판콘텐츠가 개발한 ‘전자책 변환·제작 솔루션’이나 서체도 아직 개선 여지가 많다. 3000자 미만이던 전자책 서체를 1만1700자로 늘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애플 ‘아이북스’에서 구매할 수 있는 책의 질에는 한참 못 미친다. 영세한 유통사의 ‘리더’ 수준도 하루빨리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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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