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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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잔혹한 인종차별 ‘거북이 단죄’

1993년 ‘흑인살인사건’ 19년 만에 유죄… 그나마 5~6명 백인 용의자 중 2명만 구속

  • 글래스고=김보경 통신원 plyooul@hotmail.com

    입력2012-02-13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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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경기 도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인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있은 후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수아레스에게 벌금 4만 파운드에 8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신경전을 벌이다 오고 간 언사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라운드에서 인종차별을 암시하는 듯한 언행을 철저히 금지하는 축구협회 방침에 따라 해당 선수와 소속팀도 징계 처분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인종차별 발언을 한 선수에 대한 진상 조사와 징계 수위가 결정되기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같은 영국에서 인종혐오 살해 용의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데 19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화제다. 2012년 1월 3일 영국 고등법원은 ‘스티븐 로렌스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개리 돕슨(36)과 데이비드 노리스(35)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돕슨은 최소 15년 2개월, 노리스는 최소 14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스티븐 로렌스 살인사건’은 1993년 18세 흑인 청년이 백인 인종주의자 집단에게 무차별적 테러를 당해 사망한 사건으로, 한동안 영국에서 인종혐오 범죄의 대명사로 언급됐다. 사회에 만연해 있으나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쉬쉬했던 아프리카계 이민자 차별 문제를 공론화한 사건이기도 하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의 인종차별적 태도가 집중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고등법원 수석재판관은 “사회적 양심에 타격을 입힌 사건”이라며 탄식했다.

    칼에 찔려 쓰러진 뒤에도 집단 구타

    사건은 1993년 영국 남동부 엘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스티븐 로렌스가 밤길을 가던 중에 일어났다. 한 무리의 사내가 몰려와 칼을 휘두르고 구타해 로렌스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로렌스는 가해자들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해가 될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로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탐문 수사 결과 6명이 넘는 무리가 한꺼번에 로렌스에게 달려들어 치명적인 자상을 두어 번 입히고는 차례로 급소를 가격했음이 드러났다. 로렌스가 칼에 찔려 쓰러지자 그를 둘러싸고 집단으로 구타했다는 목격자 진술도 확보했다. 법정에서 부검 전문가는 “13cm가 넘는 길이의 자상 두 개가 동맥을 끊어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현장 증거와 여러 정황으로 미뤄 보아 기소된 2명 말고도 대여섯 명의 공범이 폭행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의견도 밝혔다.

    목격자는 길 건너에 있던 갱단이 “뭐야? 뭘 봐? 깜둥이 주제에(What, what, nigger)”라고 말하며 로렌스에게 접근했다고 진술했다. 돕슨과 노리스가 평소 흑인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거리낌 없이 흉기를 소지하고 다녔다는 점에서 범행 대상은 무작위로 골랐지만, 갱단 단원이 함께 움직여 똑같은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범행에 대한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흑인에 대한 혐오가 동기가 된 이른바 ‘묻지마 공격’이었던 것이다.

    피고 측 변호사는 살해 의도는 없었으며 단지 상해를 입히려고 했다는 내용의 변론을 계속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피고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노먼 트레이시 담당 판사는 “칼로 위협하고 단체로 무차별 구타를 가했을 때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음이 너무나도 자명했다”는 논리로 로렌스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듯 용의자를 기소하거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데 필요한 논리적 근거가 충분했음에도 사건 발생 직후 수사당국은 용의자를 즉각 체포하지 않아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자가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2주 넘게 돌아다니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건 발생 당시 지역 갱단 단원들의 이름이 차례로 유력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이번에 유죄 판결을 받은 2명 외에 갱단 단원 3명이 더 범행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정황 증거만 있을 뿐 흉기를 쥐고 휘두른 자가 누구인지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가 취하됐다. 이후 20여 년간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로렌스의 죽음을 기억하고 법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단체도 생겨났다.

    유력 용의자 증거 불충분 기소 취하

    英 잔혹한 인종차별 ‘거북이 단죄’

    런던 서북쪽 밀힐 마을에서 열린 다문화 화합 축제.

    2006년 6월경 미해결 사건 재검토를 시작한 이래 법의학적 증거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2007년 11월 용의자 돕슨의 외투에서 로렌스의 미세 혈액 샘플을 발견한 데 이어, 로렌스의 옷에 묻은 섬유조직이 돕슨이 범행 당시 입었던 옷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새로운 증거도 확보했다. 익명의 경찰 관계자는 “과학수사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증거를 채택할 수 있어 기소 가능했다”고 말했지만,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과 비난은 피할 길이 없었다.

    로렌스의 아버지 네빌 로렌스는 유죄 판결과 실형이 확정된 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생각보다 형기가 짧으나 판사의 손발이 관련 법규에 묶여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판사가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2003년 도입된 형법 정의 법령에 따라 판결했다면 두 사람은 최소 25년형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판사는 범행 당시 형법대로, 범행 당시 가해자의 나이가 돕슨은 17세 10개월, 노리스는 16세 8개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미성년자 범죄의 최고형을 선고했다.

    트레이시 담당 판사는 판결문에서 “최소 14∼15년 형기를 채우고 나면 가석방 여부를 가릴 텐데 공공 안전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설 때나 가석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 안전을 언급하기엔 아직 이르다. 법의학적 증거가 돕슨과 노리스 외에 더 많은 가담자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살인자가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는 셈이다. 트레이시 담당 판사가 경찰에 “범인을 모두 색출하기 전까지 수사를 종결하지 말 것”을 주문한 터라 수사는 이어질 전망이다.

    영국에서는 2005년 조직 중범죄 법령이 생겨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밀고자를 검사가 만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돕슨과 도리스의 도움 없이 나머지 공범을 잡아 법적 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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