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고 했던가. 40∼50대 중년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한 광고음악(CM송)이 재탄생했다. 동아오츠카는 1971년 전파를 탄 ‘오란씨’의 CM송을 리뉴얼해 7080세대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음료시장뿐 아니다. 최근 문화계도 그야말로 복고가 대세다. 2011년 1월 설특집 ‘놀러와-세시봉 콘서트’ 편은 심야시간대에 방송했음에도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인 18.9%를 기록했다.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네 사람이 ‘추억의 보석상자’를 열어 먼지 쌓인 보석을 하나하나 꺼내 보이자, 40∼50대 중년의 아련한 추억도 소록소록 되살아났다. 이러한 복고열풍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7080세대는 암울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낭만을 찾으며 청년기를 보냈다. 군사독재에 강렬히 저항하는 한편, 음악다방에서 팝송이나 포크송을 들으며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를 즐기기도 했다. 7080세대의 정치적 투쟁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독재정권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1990년대 등장한 신세대문화에 밀려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다. 서태지의 랩과 힙합으로 대변되는 신세대문화에 동화하지 못한 7080세대는 한동안 문화 변방에 머물러야 했다. 그들의 통기타문화가 둥지를 튼 곳이 미사리 조정경기장 주변 카페촌이다.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부터 팔당대교에 이르는 2km 구간 일대가 카페촌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10월 무렵부터. 팔당대교를 통해 양평이나 가평으로 나갈 수 있는 길목인 데다 서울 강남에서 자동차로 20∼30분 거리라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자동차 보급이 늘어난 점도 한몫했다. 1997년 무렵 우리나라 자동차등록대수가 1000만 대를 돌파해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미사리를 찾으려면 자동차가 필요했고, 미사리 카페들은 자동차를 가진 30∼40대를 끌어내려고 그들의 대학 시절 향수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았다.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의 중심
1990년대 변방으로 밀려났던 7080문화가 2010년대 들어 ‘복고’라는 이름으로 거센 역습을 감행하고 있다. 미사리를 중심으로 한 7080문화와 지금의 복고열풍은 같은 듯 다르다. 기성세대의 향수를 되살려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7080문화가 미사리 등 특정 지역에 한정된 데 반해 지금의 복고열풍은 전국에서 불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7080문화가 통기타와 포크 같은 음악 장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복고열풍은 음악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7080문화와 지금의 복고열풍이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은 ‘세대 간 소통과 화합’에 있다. 7080문화가 1970∼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복고열풍은 신구세대가 소통하면서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방송하는 ‘불후의 명곡 2’는 1970∼80년대 전설적인 가수의 히트곡을 아이돌 가수들이 신세대감각으로 재해석해 불러 화제다. 방송을 즐겨보는 중년 중에는 아이돌 가수의 팬이 된 사람도 있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20대 시절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회상하는 것과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통해 젊음을 느끼는 것은 사실 똑같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영화 ‘써니’는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엄마의 얘기’라는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했다.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본 딸이 엄마에게 “엄마도 학생 때 정말 저런 옷 입었어?” “그때 선생님들이 정말 그랬어?”라고 물으며 세대 간 벽을 허문다.
추억을 소비하는 ‘사추기’ 세대
복고열풍의 배후에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자리한다. 현재 복고문화를 주도하는 베이붐세대 대부분이 속한 50대 인구는 2010년 말 70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0%를 차지한다. 7080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전인 1995년과 비교하면 300만 명이 증가한 수치다. 40대와 50대를 합치면 2010년 기준 159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1.5%다. 1995년(961만 명)과 비교하면 630만 명이 늘어난 것이다.
40∼50대는 단순히 인구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경제력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중심에 서 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이끈 이들은 다른 어떤 연령층보다 많은 부를 축적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조사를 통해 드러난 가계순자산 평균을 살펴보면, 40대가 2억4418만 원, 50대가 3억2633만 원으로 20대(7042만 원)와 30대(1억6124만 원)를 큰 폭으로 앞섰다. 이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문화 소비 활동에 나서면서 나타난 것이 복고열풍이다.
지금의 복고열풍에는 40∼50대가 겪는 심리적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대 후반과 30대에는 주어진 일과 소속 집단에 매몰돼 살다가, 40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적 여유와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도 잠시, 얼마 남지 않은 은퇴를 걱정해야 한다. 어느 날 문득 지금까지 다닌 회사가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지금까지 회사에 젊음과 정열을 바쳤던 것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사람이 성숙해져 처음으로 성에 눈을 뜨는 때를 사춘기라고 한다면, 중·장년층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변화를 겪는 시기를 ‘사추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려고 가장 행복했던 20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지금 40∼50대는 우리나라에서 대중문화를 즐긴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대학에 다니던 1970∼80년대는 20대가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을 이루던 시기다. 20대 때 라디오를 통해 또는 음악다방에서 팝송과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왔던 이들이 40∼50대가 되면서 추억을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복고열풍은 중·장년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문화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에서 삶으로 돌아온 중·장년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고 했던가. 40∼50대 중년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한 광고음악(CM송)이 재탄생했다. 동아오츠카는 1971년 전파를 탄 ‘오란씨’의 CM송을 리뉴얼해 7080세대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음료시장뿐 아니다. 최근 문화계도 그야말로 복고가 대세다. 2011년 1월 설특집 ‘놀러와-세시봉 콘서트’ 편은 심야시간대에 방송했음에도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인 18.9%를 기록했다.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네 사람이 ‘추억의 보석상자’를 열어 먼지 쌓인 보석을 하나하나 꺼내 보이자, 40∼50대 중년의 아련한 추억도 소록소록 되살아났다. 이러한 복고열풍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7080세대는 암울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낭만을 찾으며 청년기를 보냈다. 군사독재에 강렬히 저항하는 한편, 음악다방에서 팝송이나 포크송을 들으며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를 즐기기도 했다. 7080세대의 정치적 투쟁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독재정권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1990년대 등장한 신세대문화에 밀려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다. 서태지의 랩과 힙합으로 대변되는 신세대문화에 동화하지 못한 7080세대는 한동안 문화 변방에 머물러야 했다. 그들의 통기타문화가 둥지를 튼 곳이 미사리 조정경기장 주변 카페촌이다.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부터 팔당대교에 이르는 2km 구간 일대가 카페촌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10월 무렵부터. 팔당대교를 통해 양평이나 가평으로 나갈 수 있는 길목인 데다 서울 강남에서 자동차로 20∼30분 거리라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자동차 보급이 늘어난 점도 한몫했다. 1997년 무렵 우리나라 자동차등록대수가 1000만 대를 돌파해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미사리를 찾으려면 자동차가 필요했고, 미사리 카페들은 자동차를 가진 30∼40대를 끌어내려고 그들의 대학 시절 향수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았다.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의 중심
1990년대 변방으로 밀려났던 7080문화가 2010년대 들어 ‘복고’라는 이름으로 거센 역습을 감행하고 있다. 미사리를 중심으로 한 7080문화와 지금의 복고열풍은 같은 듯 다르다. 기성세대의 향수를 되살려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7080문화가 미사리 등 특정 지역에 한정된 데 반해 지금의 복고열풍은 전국에서 불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7080문화가 통기타와 포크 같은 음악 장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복고열풍은 음악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7080문화와 지금의 복고열풍이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은 ‘세대 간 소통과 화합’에 있다. 7080문화가 1970∼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복고열풍은 신구세대가 소통하면서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방송하는 ‘불후의 명곡 2’는 1970∼80년대 전설적인 가수의 히트곡을 아이돌 가수들이 신세대감각으로 재해석해 불러 화제다. 방송을 즐겨보는 중년 중에는 아이돌 가수의 팬이 된 사람도 있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20대 시절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회상하는 것과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통해 젊음을 느끼는 것은 사실 똑같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영화 ‘써니’는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엄마의 얘기’라는 콘셉트로 인기몰이를 했다.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본 딸이 엄마에게 “엄마도 학생 때 정말 저런 옷 입었어?” “그때 선생님들이 정말 그랬어?”라고 물으며 세대 간 벽을 허문다.
추억을 소비하는 ‘사추기’ 세대
복고열풍의 배후에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자리한다. 현재 복고문화를 주도하는 베이붐세대 대부분이 속한 50대 인구는 2010년 말 70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0%를 차지한다. 7080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전인 1995년과 비교하면 300만 명이 증가한 수치다. 40대와 50대를 합치면 2010년 기준 159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1.5%다. 1995년(961만 명)과 비교하면 630만 명이 늘어난 것이다.
40∼50대는 단순히 인구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경제력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중심에 서 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이끈 이들은 다른 어떤 연령층보다 많은 부를 축적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조사를 통해 드러난 가계순자산 평균을 살펴보면, 40대가 2억4418만 원, 50대가 3억2633만 원으로 20대(7042만 원)와 30대(1억6124만 원)를 큰 폭으로 앞섰다. 이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문화 소비 활동에 나서면서 나타난 것이 복고열풍이다.
지금의 복고열풍에는 40∼50대가 겪는 심리적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대 후반과 30대에는 주어진 일과 소속 집단에 매몰돼 살다가, 40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적 여유와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도 잠시, 얼마 남지 않은 은퇴를 걱정해야 한다. 어느 날 문득 지금까지 다닌 회사가 평생직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지금까지 회사에 젊음과 정열을 바쳤던 것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사람이 성숙해져 처음으로 성에 눈을 뜨는 때를 사춘기라고 한다면, 중·장년층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변화를 겪는 시기를 ‘사추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려고 가장 행복했던 20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지금 40∼50대는 우리나라에서 대중문화를 즐긴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대학에 다니던 1970∼80년대는 20대가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을 이루던 시기다. 20대 때 라디오를 통해 또는 음악다방에서 팝송과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왔던 이들이 40∼50대가 되면서 추억을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복고열풍은 중·장년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문화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에서 삶으로 돌아온 중·장년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