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과 노후 준비, 어느 것이 먼저일까.”
중년 세대에게 이런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져 주지도 못할 테니 사교육비로 쓸 돈을 모아 노후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테지만, 반대로 ‘자식 공부 제대로 안 시켰다가 취직도 못 해 계속 빌붙으면 노후엔 그게 더 골칫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둘 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요즘 은퇴한 어르신이 친구모임에서 큰소리 좀 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매달 먹고살 만큼 연금을 받거나 그에 버금가는 재산이 있고, 자녀가 모두 직장에 들어가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이다. 결국 노후 준비와 자녀교육은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항상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 급급해 나중 일은 외면해버린다. 그래서 늘 자녀교육이 먼저고, 노후 준비는 뒷전이다.
대졸 40대 이상 중산층 평균 105만 원 지출
요즘은 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구가 늘었다. 이른바 ‘에듀푸어(교육 빈곤층)’다. 혹시 우리 집도 에듀푸어가 아닌지 걱정스럽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1) 도시에 거주하며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는가.
2) 현재 빚을 졌는가.
3) 가계소득보다 지출이 많은가.
4) 자녀교육비가 다른 가구 평균(월 51만 원)보다 많은가.
위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한 사람은 에듀푸어다. ‘설마 빚을 지면서까지 교육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국 82만4000가구가 에듀푸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치원 이상 자녀를 둔 9가구 중 1가구꼴이다.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는 가구는 월평균 433만 원을 벌고 367만 원을 지출해 66만 원 흑자를 기록한 반면, 에듀푸어 가구는 한 달에 313만 원을 벌어 381만 원을 지출함으로써 68만 원 적자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듀푸어는 다른 가구보다 월평균 120만 원을 덜 벌면서 지출은 오히려 14만 원 더 많은 셈이다.
이렇게 적게 벌고 많이 쓰니 적자에 허덕이는 것은 당연한데,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는 가구들이 월평균 51만 원을 교육비로 쓰는 데 반해, 에듀푸어는 매달 약 87만 원을 교육비로 썼다. 교육비로 월평균 36만 원을 더 쓰는 것이다.
에듀푸어 주류는 ‘대졸 이상 학력의 40대 이상 중산층’으로, 전체 에듀푸어의 31.7%인 26만1000가구에 달한다. 이들은 월평균 387만 원을 벌고 교육비로 105만 원(27.2%)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교육 수준으로 보나, 소득 수준으로 보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들이 자녀교육에 ‘다 걸기’ 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그들이 지금껏 이뤄온 성공방정식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40대 중산층이 그나마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낸 부모의 높은 교육열 덕분이니 자신도 자녀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문제는 ‘교육에 투입한 돈과 자녀 성공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자녀를 망친 사례는 즐비하다. 예를 들어보자. 에듀푸어 자녀는 대부분 부모가 디자인한 삶을 산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가 짠 시간표에 맞춰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느라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할 틈이 없다. 대학에 입학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강신청을 대신해주는 것은 물론, 학점관리를 위해 지도교수와 통화까지 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녀가 입사 면접에 떨어졌다고 기업에 전화로 항의하고, 자녀가 다니는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전화해 고과에 불만을 토로하는 부모도 있다니 말 다했다.
자녀에게 돈보다 시간을 투자하라
모두 자식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라고 항변하겠지만,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가 계획한 대로 살아서는 자녀가 성공하기란 어렵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한 번도 자기 삶을 스스로 계획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과제는 잘해낼지 몰라도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시킨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많고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노후 준비를 포기하면서까지 무분별하게 사교육에 돈을 퍼붓기보다 자녀에게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는 편이 현명하다. 특히 아빠 몫이 중요하다. 험난한 사회와 맞닥뜨리거나 운명의 갈림길에 섰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를 아빠가 가르쳐줘야 자녀가 자립해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갈 지혜와 근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아빠는 엄마에게 이 몫을 전가하고, 엄마는 다시 가정교사나 학원교사에게 떠넘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신념이나 철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자녀가 인생을 살아갈 지혜나 근성을 기를 순 없다. 교육을 아웃소싱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교육=성공’이라는 신념에 빠진 에듀푸어에게 이런 얘기가 통할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런 얘기를 계속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런 현상을 ‘제멜바이스 반사(Semmelweis Reflex)’라고 한다.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184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산모들이 산욕열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접하기 전 염소소독제로 손을 씻으면 산모 사망률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은 별도로 의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아는 상식이지만, 당시만 해도 의사들은 제멜바이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손이 산모 사망의 원인일 수 없다고 굳게 믿은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결국 47세로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그의 통찰은 폐기됐다. 이 얘기는 한 사회가 오랜 기간 믿고 따른 규범이나 관념이 있을 때 그것에 반하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분명한 건 이후 의학계가 제멜바이스의 말대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중년 세대에게 이런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져 주지도 못할 테니 사교육비로 쓸 돈을 모아 노후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테지만, 반대로 ‘자식 공부 제대로 안 시켰다가 취직도 못 해 계속 빌붙으면 노후엔 그게 더 골칫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둘 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요즘 은퇴한 어르신이 친구모임에서 큰소리 좀 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매달 먹고살 만큼 연금을 받거나 그에 버금가는 재산이 있고, 자녀가 모두 직장에 들어가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이다. 결국 노후 준비와 자녀교육은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항상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 급급해 나중 일은 외면해버린다. 그래서 늘 자녀교육이 먼저고, 노후 준비는 뒷전이다.
대졸 40대 이상 중산층 평균 105만 원 지출
요즘은 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구가 늘었다. 이른바 ‘에듀푸어(교육 빈곤층)’다. 혹시 우리 집도 에듀푸어가 아닌지 걱정스럽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1) 도시에 거주하며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는가.
2) 현재 빚을 졌는가.
3) 가계소득보다 지출이 많은가.
4) 자녀교육비가 다른 가구 평균(월 51만 원)보다 많은가.
위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한 사람은 에듀푸어다. ‘설마 빚을 지면서까지 교육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국 82만4000가구가 에듀푸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치원 이상 자녀를 둔 9가구 중 1가구꼴이다.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는 가구는 월평균 433만 원을 벌고 367만 원을 지출해 66만 원 흑자를 기록한 반면, 에듀푸어 가구는 한 달에 313만 원을 벌어 381만 원을 지출함으로써 68만 원 적자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듀푸어는 다른 가구보다 월평균 120만 원을 덜 벌면서 지출은 오히려 14만 원 더 많은 셈이다.
이렇게 적게 벌고 많이 쓰니 적자에 허덕이는 것은 당연한데, 자녀교육비를 지출하는 가구들이 월평균 51만 원을 교육비로 쓰는 데 반해, 에듀푸어는 매달 약 87만 원을 교육비로 썼다. 교육비로 월평균 36만 원을 더 쓰는 것이다.
에듀푸어 주류는 ‘대졸 이상 학력의 40대 이상 중산층’으로, 전체 에듀푸어의 31.7%인 26만1000가구에 달한다. 이들은 월평균 387만 원을 벌고 교육비로 105만 원(27.2%)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교육 수준으로 보나, 소득 수준으로 보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들이 자녀교육에 ‘다 걸기’ 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그들이 지금껏 이뤄온 성공방정식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40대 중산층이 그나마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낸 부모의 높은 교육열 덕분이니 자신도 자녀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문제는 ‘교육에 투입한 돈과 자녀 성공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자녀를 망친 사례는 즐비하다. 예를 들어보자. 에듀푸어 자녀는 대부분 부모가 디자인한 삶을 산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가 짠 시간표에 맞춰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느라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할 틈이 없다. 대학에 입학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강신청을 대신해주는 것은 물론, 학점관리를 위해 지도교수와 통화까지 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녀가 입사 면접에 떨어졌다고 기업에 전화로 항의하고, 자녀가 다니는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전화해 고과에 불만을 토로하는 부모도 있다니 말 다했다.
자녀에게 돈보다 시간을 투자하라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그러니 노후 준비를 포기하면서까지 무분별하게 사교육에 돈을 퍼붓기보다 자녀에게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는 편이 현명하다. 특히 아빠 몫이 중요하다. 험난한 사회와 맞닥뜨리거나 운명의 갈림길에 섰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를 아빠가 가르쳐줘야 자녀가 자립해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갈 지혜와 근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아빠는 엄마에게 이 몫을 전가하고, 엄마는 다시 가정교사나 학원교사에게 떠넘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신념이나 철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자녀가 인생을 살아갈 지혜나 근성을 기를 순 없다. 교육을 아웃소싱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교육=성공’이라는 신념에 빠진 에듀푸어에게 이런 얘기가 통할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런 얘기를 계속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런 현상을 ‘제멜바이스 반사(Semmelweis Reflex)’라고 한다.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184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산모들이 산욕열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접하기 전 염소소독제로 손을 씻으면 산모 사망률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은 별도로 의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아는 상식이지만, 당시만 해도 의사들은 제멜바이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손이 산모 사망의 원인일 수 없다고 굳게 믿은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결국 47세로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그의 통찰은 폐기됐다. 이 얘기는 한 사회가 오랜 기간 믿고 따른 규범이나 관념이 있을 때 그것에 반하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분명한 건 이후 의학계가 제멜바이스의 말대로 변화했다는 점이다.